지역 공공병원에서 일하면서 진료를 배우던 시절은 여러모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떤 시기라도 여러가지 일들을 배우는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 거 같은데, 무엇보다 자신이 스스로 발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거 같다. 인턴시절 이후에 근 10여년 동안 진료와는 담을 쌓고 살다가 다시 하려니 힘들었던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원래 힘들어도 아무 생각없이 배우던 시절이 행복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정리가 되던 시점에 갑자기 중앙 지역에서 높으신 분들이 병원으로 오시면서 나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시기에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한가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병원장이 교체되고 서울 유명 대학에서 경력을 쌓으신 분이 오신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좋은 분한테 일을 배우는 것은 기회가 될수도 있지만, 원래 누구한테 기대서 배우는 성격도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에 정부에서 어떤 일들이 생기고 있는지를 아는 나로서는, 그런 일에 휘말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현재 의료 정책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의 능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고, 더이상 그런 일에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지식은 직접적으로 특정 활동을 나타나게 할 수는 없는데, 내용이 적절하게 제시되지 못하면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보수적인 의료 분야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대부분 특정한 행위를 막도록 작용하는데, 목적은 이를 통해 현실에 필요한 행동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공공병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아무리 예산을 많이 따내도 이후에 공공병원이 약화되기도 하였듯이, 적절하지 않은 방향으로 지식이 쓰이고 여기에 권력과 자본까지 연결되면 필요한 행동을 막아 오히려 해당 분야가 약화될 수 있다. 법이나 규정과 마찬가지로 지식은 특정한 행동을 막는데 쓰이고, 현실에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은 개인이나 조직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다.
때로 유명인이나 전문가가 특정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 곧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행동 변화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엄격하게는 지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특정한 행동을 막고 방향을 전환하는 정도의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적으로 잘 발전한 나라에서는 유명한 전문가가 긍정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비추어질 때가 많지만, 이는 권력을 집중시켜 기업이나 정치 홍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현실에 효과는 거의 없다. 이후에 다른 과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 아무런 결과도 있을 수 없다.
공부하고, 일하고, 대화하는 여러가지 과정 속에서 지식이 쓰일 수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 현실 인식이 철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현실 참여를 빙자하여 정치권력이나 시장 수익 창출에 지식을 소비하면서 현실에서의 변화는 전혀 이끌어낼 수 없다. 지식을 통해 특정 행동을 막을 수는 있어도 안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공공의료를 강조하는 것은 민간 병원의 수익 추구 행위를 비판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기 쉬운 공공분야의 활동을 장려하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공공분야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민간병원의 수익 추구 활동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의 기본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간병원이나 공공병원이나 의료서비스 시장에 참여하는 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데, 자원통제 등의 기본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진료권이 확립되고 경쟁이 나타나게 되면, 의료전달체계가 운영되는 과정 속에서 진료 과정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의료도 마찬가지인데, 필수의료라 이름붙이고 다른 의료 행위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일시적인강조 효과는 있을 수 있어도 필수의료에 참여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병상 등의 자원 통제 제도나 건강보험 재정 분리 운영을 통한 진료권별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 내의 직접적인 개선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건강 보험 수가 조정이나 특정 사업에 대한 재정 투자는 의료이용 시점에서 세부적인 항목의 조정 효과는 있을 수 있어도, 전반적인 의료전달체계 개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의료전달체계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부터 운영되기 때문에, 동네의원에서 나타나는 네트워크의 수준이 의료전달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는 환자 문제에 기반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번 코로나나 의대정원 정책이 미친 혼란에 반응하여 병의원들의 활동이 자발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으나, 환자 문제를 다루어가면서 형성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도나 재정 지원으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보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병상 등의 자원통제 제도를 공식화하는 일이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부차적이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질병에 대해 진단하고 필요한 처방을 하는 것은 직접적인 시술이나 약물 처방 외에 지식을 교육하고 대화를 통해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픈 사람은 의사에게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는 아니고 환자-의사관계는 교육이나 상담을 넘어서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개념적인 지식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이후에 행동을 바꾸는 것은 분명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지만, 사람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차이는 있다. 그래서 예방의학이나 보건학에서도 환자 보는 것과 유사하게 혼자 재미를 느끼는 일들이 꽤나 있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닌 인구집단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일 중 가장 사람이 필요한 일이 급성기 감염 유행일 것이다. 기본적인 매뉴얼은 있지만, 급성기 혼란한 시기에 해야 하는 업무들은 정해진 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반드시 해보면서 익혀야 되는 일들이 많다. 환자의 특성에 따라 조정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듯이, 감염 유행을 포함한 집단을 다루는 대부분의 보건 관련 업무도 여러 지식을 활용하면서도 현장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리고 환자의 질병에 따른 의사 처방 외에 환자의 노력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지듯이, 보건 문제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코로나 시기에 직접적으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오미크론 시기에 글을 썼던 것은 재미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군것질이 하고 싶다', '이미 감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겠으나, SNS 등으로 반응을 봤을 때에 전공자들 일부는 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글을 썼는데, 방향 전환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코로나가 경증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야 하듯이, 감염 유행시 혼란이 생겼을 때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오미크론 이후에도 여러 글을 썼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다. 사람들에게 공포는 없고, 그저 감염 유행시의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사람들과의 지리한 말싸움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래 지식이나 글로 인구집단의 공포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권력이나 자본을 따라 나타나는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직접 일하고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의사결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어찌할 방법은 없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이나 필수의료패키지를 둘러싼 논쟁도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회에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직접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인데, 논쟁 방향이 이상하게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언론에서는 환자의 의료이용이나 병의원의 진료 행태만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으니 진행이 될 수가 없다. 저정도 예산을 받아놓고 세부적인 문제만 다루고 있는데,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저런 걸 따라 행동을 바꾸지는 않는다. 교수들이 파업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무도 정리를 안하는지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오미크론 이후의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지리멸렬하다.
어차피 저대로 가면 결과가 나올 것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오로지 관심이 가는 것은 전공의나 의대생들의 복귀 뿐이다. 그러나 지식을 얘기하고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교수들이나 의사단체, 정부는 비판할 수 있지만, 전공의나 학생들이 행동을 바꾸게 할 수는 없다. 교수들이나 전공의나 학생 대표자들을 비판해서 집단적인 압력을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요소들과 관계없이 선택은 본인들의 몫이다. 오늘도 서울대 교수들은 파업을 한다고 하고, 병원장은 이를 불허한다고 하고 있다. 의사 협회도 파업 투표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제 그다지 할 마음이 없다. 집단 행동을 하는 것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데, 보이는 바와 달리 결과적으로 이전과 다르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에 집단적으로 이끌려서 자기 인생도 선택하지 못하면 어차피 희망이 없다.
코로나 시기부터 지켜보니 친한 친구들은 저 인간이 지혼자 놀이에 심취해서 사는 놈이라는 것을 잘 아는데, 일부 가족 회원들은 내가 집단 놀이를 하는 사람인 줄 아는 거 같기도 하다. 원래 그런 거를 귀찮아 하는데다 하도 삽질을 많이 봤더니 이제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이후에 새로운 일들이 나타나는 기반이 될 수는 있지만, 집단 행동을 하든 유명인이 되든 결국 무언가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게 되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무슨 연예인이나 정치인도 아니고 특정 집단을 대변하거나 홍보하는 일은 없다. 나는 원래 작은 곳에서 작은 일이나 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인데, 이제는 혼자서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상황도 다 지난 거 같으니, 할 것도 없고 일이나 하러 돌아가야겠다.
뭐 어쩌겠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기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니 하든지 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