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사회나 역사적인 진보가 후퇴하는 경우는 없다

by 배상근

애들 교육에 할 게 있나

의사이기는 하지만, 전공이 한가지 특정 분야만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여러가지 일들도 해야 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는 해두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도 영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학위를 하면서 원서를 안볼 수가 없기 때문에 글을 읽는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어릴때까지만 해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공부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학은 공부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갈 대표로 뽑혀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1-2달 정도는 매일 2-3시간 정도를 공부한 것이 흥미를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 초등학생이 경시대회 1-2 문제를 풀겠다고 2-3시간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대단한데, 옆반 친구 선생님을 불러서는 평강공주로 만들어서 애를 보고 온달이라고 하면서, 지겨워지려고 할 때마다 찾아와서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도록 만든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때 풀었던 문제 중에 고등학교 때나 나오는 순열을 포함해서 학년 올라가면 배우는 문제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걸 얘기해주신 적이 없어서 나중에 학년 올라가서 책을 보고서야 알고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어리숙한 놈이 대회직전 여름방학 때 형들과 축구하다 뼈에 금이 가버려서 한달 동안 집에 누워버린 것이었다. 학교에 앉혀놓고 반 세뇌(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인가?)를 시켜야 하는데, 집에 누워있는 초등학생이 책을 준다고 어찌 공부를 하나. 기초공부 시킨 뒤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다리 아프다는 핑계로 책방에서 만화책이나 빌려서 읽고 있었으니, 대회의 결과는 입상은 고사하고 딱 전체 평균이다. 비슷한 점수에 잘하는 애도 있었는데, 학원도 안 다니고 집중도 잘 하는 거 같아서 가르쳐보려고 뽑으셨을 거로 생각하는데, 이놈이 마지막에 도움이 안되네. 어쨌거나 이 시절 덕분에 수학 문제 푸는 재미를 알아가지고 이후에 별로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다. 이론은 하나도 안 가르쳐주고 문제를 몇 개만 풀었던 거 같은데, 중고등학교 가서 문제풀이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

반면에 영어 공부는 너무 재미가 없었는데, 방법도 몰랐고 지금처럼 좋은 학원이 많았던 시절도 아니라 시험치기 위한 공부나 하고는 했다. 그런데 나보다 성적은 안 좋은 거 같은데 영어 공부에 부담을 안 가지는 애들도 있었다. 알고보니 중학교 1학년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던 시기에 선생님이 교과서를 통째로 쓰고 외우라고 시킨 것이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말하기를 충분히 반복해서 했으니, 영어를 배우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재미를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3 수능이 닥쳐서 급하게 하다 보니 그때서야 알겠던데.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문제집은 물론이고 교과서에 있는 문제도 다 풀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 47점(?)인가를 맞은 적이 있다. 교과서에 공식을 증명하는 것은 혼자서 다 해보는데, 문제푸는 데는 시간이 부족하네. 어쨌거나 그 시절만 해도 수능 준비는 고3 가까이 되어서야 시작하고는 했고, 외부로 교육에 대한 비판은 많아도 어느정도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입시나 시험공부야 1년만 집중해서 하면 충분하지. 더 달라질 것도 없는데.

예나 지금이나 학교 교육에 대한 논쟁은 많지만, 관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시절만 해도 학교 공부만 충실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학원이나 과외가 입시에 도움이 되기는 해도 학교 공부가 우선이라고 인식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방송이나 언론을 보면 학교 교육에 대한 믿음이 없을 뿐 아니라 사교육에서 말하는 이상한 공식(?)을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그 시절에도 유사한 얘기들이 있기는 했지만, 성적이야 본인 하기 나름이고 1-2년만 하면 더 들을 내용도 없는 사교육에 무슨 공식이냐.


결과가 다 드러나는 스포츠도 이권이 걸리면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후배들 중에 특정 세대에서 자꾸 농구 대회가서 다치는 일이 생겨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우리 정도의 기술 수준에 절대 다칠 수가 없고 무리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다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런 일이 줄어서, 처음 유튜브 동영상이 나오던 시기에 어려운 기술을 따라하다가 그랬나 싶기는 했다. 그러나 다치는 이유는 결국은 기초 체력이나 기본기 부족인데, 흙바닥에서 뛰어놀던 것이 기초 운동 능력을 키우는 데는 더 낫기도 했고 운동 자체도 더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것도 시설이나 학교 프로그램이 좋은 것과는 무관하다.

2003-2004 시즌이었던 거 같은데, 결승에서 오리온스와 KCC가 경기를 했었는데, 오리온스가 이기고 있었는데 끝나가는 시점에 시간이 멈추었다. 결국 KCC가 역전해서 우승하는 바람에 KCC가 스타 플레이어가 많고 흥행을 위해 밀어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리온스가 기존 경기 스타일과 다르게 게임을 재미나게 해서 농구팬들한테 인기도 많았고 연속 우승하게 되면 흥행도 더 될 거 같았는데 뭔 소리야. 그때만 해도 팀별로 실력 차이가 별로 없어서 저런 오심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두고두고 남을만한 사건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심은 조금씩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심판 판정도 승부의 일부라 재미나게 보면 그만이다. 요즘은 비디오로 판독도 하지만 경기 운영이 더 잘되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에 보니 라인을 밟지도 않았는데 휘슬을 불지를 않나, 한번은 마지막에 상대편이 반칙 작전을 대놓고 하는데 불어주지를 않아 이기게 해주더니, 다음 경기에는 반대로 판정을 불리하게 하는 거 같기도 하던데. 선수도 항의를 안해, 감독도 항의를 안하니 보는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예전에는 야구장에 심판하고 감독들 싸우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였는데, 저 재미없는 스포츠를 왜 봐야 하나.

최근 농구 경기를 보면 예전에 비해 몸싸움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팀마다 전술 차이도 거의 없는데, 선수들 마다의 개성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판정 때문에 몸싸움이 줄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몸싸움 자체를 안한다. 신인 선수들이 오면 감독들이 일부러 기회를 주고 경쟁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그런 갈등이나 경쟁도 갈수록 줄어드는 듯하다. 요새 농구 경기하는 것을 보면 스포츠가 규칙이 있는 싸움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듯한데, 그런 경쟁에 재미를 못 느끼면 무슨 선수냐. 기술 차이가 있어도 치열한 아마추어 경기가 더 재밌겠다.

운동 능력이 떨어진 것인가, 정신 무장이 덜 된 것인가. 그런데 누구나 노력으로 익혀야 하는 기본적인 역량이란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예전에는 이상한 판정들이 있어도 선수들이 역량을 고르게 갖추고 있으니 판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 시절의 오리온스는 인기가 많기만 했다. 정 안되면 농구대잔치로 돌아가서 싹 다 없애버리고 다시 만드는 것이 방법이기도 한데.


법, 언론, 지식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제한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종이 빨대가 환경 보호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되어 법이 바뀌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서 샤워기 물 사용량을 제한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어떤 법이나 규정이 시행되면 종이 빨대같은 상품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이권과 관련되고, 사람들의 행위를 제한하여 생활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여 집단으로 가져가는 것인데, 이런 법이나 제도 시행이 문제 해결로 연결되지 않으면 이는 실패한 일이다.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나올 만한 해결 방법을 사람들의 행동을 제한하여 막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시간 낭비를 한 것이 된다.

언론이나 방송은 법이나 관습, 지식 등을 이용하여 홍보를 가장한 선전선동을 하고, 집단적인 방향으로 행동을 이끌어냄으로써, 특정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편가르기, 마녀사냥, 영웅놀이를 하면서 코로나를 감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초기 집단 공포가 나타났던 시점이라면 몰라도 정당화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 집단은 논문이나 보고서를 써서 건강 결과와 관련이 없는 지식을 권위로 정당화하고, 언론은 선전선동을 통해 사람들이 집단으로 경험하는 것을 제한하여 방법을 익히는 것을 막고 관련된 산업이 이를 자본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오미크론 이후에 어린이 예방접종, 중국이나 미국이냐 하는 이야기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미 방송에서 쓰이는 지식은 시장의 상품이든, 기업이나 국가 조직의 정책이든, 홍보에 쓰이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제한하여 사회 문제 해결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광고가 늘어나도 내 건강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운동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달리기, 수영 등 일반적인 운동이나 계단오르기, 슬로우 러닝 등 특정한 상황에 맞는 방법들을 얘기하지만, '누구나 건강을 위해 시간 투자를 하면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습니다'와 같은 집단적인 인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홍보 전략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감기 걸리면 병원가고, 운동하다 아프면 알아서 쉬는데, 어떤 약이나 식품이 좋다고 하거나 어떤 운동 장비가 도움이 되고 어떤 운동은 피하라고 하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제시할 만한 내용은 '어떤 운동이든 강도를 갑자기 높이면 다칠 수 있고, 너무 오랜시간 하게 되면 상할 수 있지만, 일정한 정도의 신체활동은 반드시 시간을 내서 해야 합니다' 정도인데, 여러가지 내용을 상품으로 홍보하면서 집단으로는 혼란을 조장한다. 맨발로 걷든, 산을 뛰어다니든 시간내서 하기만 하면 건강이 좋아지는데, 특정 집단의 이권에 유리한 방식으로 여론 몰이만 하고 다닌 결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행위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제한하여 사회 전반의 변화를 막는 것이다.


현실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지식은 집단적인 기준으로 쓰일 수 없다

학문은 독자적인 방법론이 있느냐에 따라 기초 학문과 응용 학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응용 학문의 효용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현실에서의 유용성에 있다. 언어, 수학 등의 기초 학문도 현실에서의 효과가 인정되어 있고 새로운 지식도 현실에서 쓰여지면서 함께 발전하게 된다. 지식은 작은 문제라도 완결성있게 제시하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권력이나 이권과 연관되어 법이나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언론을 통해 선전선동을 하는 데 쓰여져 특정 집단의 권력 추구에 사용될 수도 있다.

전문가 집단 내에서 합리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이라도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단적인 기준으로 쓰여지기 어렵다. 과거와 달리 정신과적인 문제도 자유롭게 얘기할 만한 분위기가 되고, 숨기지 않고 상담받을 것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정신과 진료나 상담이 개인의 정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된다면 몰라도, 진료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사람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만, 집안 생활의 스트레스를 일하면서 푸는 사람도 있듯이, 정신 문제는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고, 정신과 약물이나 상담은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요즘은 ADHD나 우울 증상으로 어린이들도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어린이들이 강제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관점의 기준을 통해 특정한 방향의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정상적인 성장이나 발달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 여러가지를 시도하면서 성장하고 갈 길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당연한데, 정신과 상담이 뭐그리 큰 도움이 된다더냐.

15-20여 년 전에 학교 내에서 체벌이 문제가 되더니 학교 선생님들이 훈육 목적으로 체벌하는 것이 금지가 되었다. 훈육 목적의 체벌 금지도 논란이 되었지만, 이상한 것은 그 이후에 늘 있었던 학교 폭력이 문제가 되더니 학교폭력 심의위원회라는 것이 생겨서 외부에서 학교 폭력 사건을 심의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몇몇 대학에서 입시에서 생활기록부에 학교 폭력 기록이 있으면 탈락시키기도 하고, 언론에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자주 보도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어린시절 싸움이 무용담처럼 얘기하기도 하였는데, 훈육 목적의 체벌이 사라지는 것은 시대 변화에 다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더라도, 학생들 사이의 다툼을 외부에서 개입하는 것은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성장의 중요한 요소임을 고려하면 명백하게 잘못된 정책이다. 어른들도 싸우는데, 싸우면서 커야 경쟁이나 갈등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데, 외부 사람이 그것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교육적 관점은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가질 것이고, 심각한 폭력에 대한 처벌은 법에 의해 경찰이 판단하면 되는데, 거기에 법이나 의료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한가.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길만한 일을 건드려서 학교 내에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것을 막아서 특정 집단의 이권 추구에나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 언론이나 방송은 서울 특정 주류 집단의 관점에서 움직인다. 민주화 이후에는 개인의 개성이나 혁신을 강조하며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이듯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경쟁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본인들이 받아들였으니 효과가 나타나지, 어쩔 수 없이 하면 무슨 효과가 있나. 게다가 정해진 틀 안에서의 경쟁에서 나타나는 효과는 한계가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혁신이 나오나. 코로나 이후에는 정반대로 사회적 책무니, 책임감이니 하는 얘기들을 강조하는데, 무슨 전근대 사회로 돌아간 거 같다. 코로나가 에볼라가 아니니, 하는 일에 책임감이 생길 수가 없는데, 프레임을 만들어서 끝날때까지 비슷한 얘기만을 반복한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시기에 우리나라 정치 문제를 공론화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유명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가 나와서 마치 정치는 더러운 일이라는 듯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정도 견제장치가 있어서 학생들도 나와서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는 의료계는 양반이구나.

쿠팡 사태가 터지니 야간 노동의 건강 영향,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모두 이슈가 되는데, 언론에서는 이미 알려진 문제를 시끄럽게 이슈로 만들어내지만 여러 해결 방법은 얘기하지 않는다. 야간 노동의 건강 영향이 밝혀진 것과는 별개로, 법이나 제도적 강제 규정이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없고 해결 방법은 만들어나가기 나름이다. 이미 개인 정보는 노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범죄에 이용될 수 없도록 피해를 막는 방법이나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일 거 같은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언론을 통해 여러 조직 홍보나 하고 싸움이나 만들어낸다고 해서 현실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데 도움이 된다더냐.


법은 절차에 의한 정당화에 쓰이는 도구이다

어느순간 전공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법도 생기지만, 수련을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야에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엄격한 기강 속에서 때로 폭력과 불합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이든 생활이든 질서는 목적에 따라 어떤 것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4년 동안 고생을 하고 난 뒤에, 도시든 시골이든 마음대로 선택해서 가는 시스템으로 갈 것인가, 이상한 규정이 있으니 수련받으면서도 온갖 참견을 받고 펠로우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시스템으로 갈 것인가. 힘든 과를 선택하고 말고는 본인의 선택이듯이, 차라리 하지를 말지 수련 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주장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근래에 노란봉투법, 차별금지법 등 여러 법규가 제정되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목적을 내세우지만 법 조항의 내용이 이런 목적을 현실에서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랜시간 착취당하는 어린 근로자, 남성에 의해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겪는 여성 보호라면 몰라도, 힘든 노동이나 가족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을 법이 만들어줄 수는 없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법이나 제도가 늘어날수록 이와 관련된 집단적인 이권이 부패를 만들어내면서 사회 질서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성매매 특별법, 청탁금지법 등이 사회 문화를 바꾸겠다고 하고 있으나 현실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오히려 사회 질서를 무너지게 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본래 법은 합의된 절차를 통해 집단의 의사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현실에서의 결과를 담보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지는 몰라도, 다수결이나 상사의 명령, 이웃의 의견,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같은 지식, 유명 인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를 진심으로 수긍하지 않는다. 다수가 합의한 법이나 제도에 의한 절차에 따라 어느정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되는 것이 사회적인 일을 받아들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법이나 제도, 정책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지, 범죄나 폭력을 막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일이든 생활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는데, 불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거나 위기 상황이 생기면 이러한 합의된 방법들에도 정당성의 위기가 올 수 있다.


부패는 자율성이 없는 개인에서 만들어진다

코로나 이후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섰더니 사소한 일에서 문제들이 생기고는 했다. 사무실 안의 키보드 다리가 부러져 있지를 않나, 발표 자료가 틀린 부분이 자꾸 나오지를 않나. 요즘은 컴퓨터로 처리하는 일들이 많은데, 먹통이 되는 것이 일상이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친구가 자기는 네비게이션 2-3개를 켜고 간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놈의 네비게이션은 같은 장소에 가는데 위치가 없어지지를 않나, 엉뚱한 주소가 나오지를 않나. 주소를 다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나온 뒤로는 사무실이 없으니 도서관에 가고는 하는데, 처음에는 노트북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을 가지고 옆에서 머라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하도 항의가 많아서 귀찮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용금지를 붙여놓기도 하고, 다시 없어지기도 한다. 그 뒤에는 물 먹는 것으로 시비를 거는데 커피 말고 물만 된다고 했다가 텀블러 가져오면 둘 다 된다고 했다가, 완전히 난장판이다.

코로나 정책이 전환되던 시절에 변화의 시기마다 담당 장관이나 부총리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오고는 했는데, 나도 오미크론이 끝나고 휴가로 제주도 가던 시기에 걸리기도 했다. 원래 검사를 안하면 모르는데,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해야 했는데 하필 그때 별 증상도 없이 양성이 나오네. 식중독에 걸려 고생한 것도 2번 정도 있었던 거 같다. 코로나는 감기이고, 식중독도 상황에 따라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 대처할 것도 없는데, 문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공항 직원도 주위에서도 나에게 알려주듯이 혹은 놀리는듯이 얘기하고는 했다. 집단 감염의 대처가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과 합리적인 방법들을 소통하여 대처방법을 익힐 수 있게 하는데 있듯이, 요상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애들을 잡든가, 아니면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서 사람들이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방법이다.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영웅놀이, 마녀사냥, 편가르기 등을 하면서 퇴폐 카르텔이나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목적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인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높이려는 것인가.

커피 전문점 앞에서 별 효과도 없는 키오스크 없다고 가게 욕이나 하고 다니던 애들이나 효과 없는 규정이나 만들라고 사고치고 다니는 애들이나 이권을 노린 계획된 행동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공짜로 먹고사는 부패 시장을 만드는 목적은 퇴폐적인 지배력을 높이기 위함인데,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 맘카페나 의료 광고 시장처럼 사람들의 시급한 마음을 이용한 시장에서 나온 홍보 전략이 난무하는지, 코로나 이후에는 영웅놀이, 편가르기, 마녀사냥 등의 집단 선동과 연결되어 더 심해진 거 같다.


법이나 제도, 자본, 사회 관습, 조직 어떤 것으로도 부패는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막아내는 것은 사람을 잘 길러내서 개인이나 조직이나 자율성이 잘 나타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이나 제도, 지식, 조직 문화 어떤 것으로도 자율성은 이끌어낼 수 없고, 여러 방법을 통해 스스로 시도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법이나 규정에 나타난 일을 잘 했는가, 특정 기준에서 누가 더 잘했는가로 처벌하고 줄세워서 자원을 배분하는 것으로는 자율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 기능이나 역할을 얘기해도 조직에서 시키는 것만 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주거나 돈으로 자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본래 자율성은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데서 나온다. 공공 기관에서 공적인 기능을 얘기하든, 기업에서 시장에서의 수익을 얘기하든 개인이 자율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를 극복하는데서 나온다.

요즘처럼 생계형 파시즘이 난무하고 사회 내부에 부패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개인이 자율성을 발휘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론적으로는 현실을 인정하고 공개된 방식으로 권력을 분산하는 수밖에 없다. 법이나 제도, 행정 조직은 공식적으로 분산된 권력을 보여주는 구조다. 공공 조직은 자율성이 구현될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자율성은 개인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고, 충분히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법이나 제도 자체가 필요하지 않고,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어도 생계형 파시즘이나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조직은 망하는 길로 간다. 조직 전반에서 자율성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인사나 예산을 잘 운영하는 것이 조직의 발전에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건강하려면 개인이나 조직이 자유롭게 여러 일들을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독립적으로 하게 되기까지는 10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일과 관련된 소통과 외부 영향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까지 포함하면 단순히 기술적인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인생의 가치에서 일하면서 얻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인데, 이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고 법이나 제도, 관습,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일하고 있지 않으면 어떠한 조직이나 사회라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특정한 이념이나 규정을 내세워 앵무새같은 말만 반복하고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조직은 없애야 하는데, 본래 개인이나 조직이나 변화없이 정체되면 자율성이 사라지면서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암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공공 조직이나 법조나 의료 등 공적인 일이기에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일들은 자율성이 나타나지 못하면,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언론도 공적인 기능을 하는데, 지금처럼 일부 집단과 연합해서 재판이나 질질 끄는 판사들, 이상한 수사나 하면서 사건이나 만들어주는 검사나 경찰들, 방송에 나와서 요상한 홍보나 하는 의사들처럼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면서 법이나 지식을 이용하여 사회 혼란이나 조장하는 일로 자신들의 퇴폐 카르텔이나 만들고 다니면 이를 정확하게 알리고 막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개인이면 몰라도, 자기들이 지배당하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퇴폐 카르텔을 만들어내는 집단이 바뀔 수가 있나.


계엄을 내란으로 만들어서 아직도 재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이 계엄이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검사 출신이라 범죄자를 잡아넣듯이, 한두 명 잡아넣어서 본보기를 보여주고 사회 변화와 연결되게 하려 한 것 같은데,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변화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던 거 같다. 계몽령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엄에 놀라서 자신들의 치부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는 정치, 언론, 사법 등의 퇴폐 카르텔의 행동이 알려지니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원화 가치가 바닥으로 가고 물가가 치솟는데, 주가 상승을 자축하면서 특검 정치를 하면서 놀고먹는 정치 세력은 방법이 없는 거 같은데, 같이 고생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 정치의 능력인데, 나는 고생할 생각이 없으니 대책이 있을 수가 없다. 누가봐도 반대편의 능력이 조금 나은 거 같기는 하다.

최근에 일하다 시간이 없어서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나 먹으면서 대충 떼우려고 했는데, 계산대 앞에 할인되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런데 점원이 자꾸 할인이 안된 가격을 보여주더니 기계가 이상하다고 하는데, 이런 사건이 워낙 많아서 시큰둥하게 바꿔달라고 하고 기다리니, 다른 점원이 와서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음식을 받으러갔더니 서비스도 작은 거 하나 더 준다. 예전에는 가게에 요상한 사람들이 다니고, 내부적으로 사건이 생겨서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나름 대처가 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나같은 꼰대 아저씨야 이런 사건을 보면 세상이 안타깝네 할 수도 있지만, 외부 환경이 어찌되든 자기 입장에서 대처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이런 일이 없어지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사람들의 역량이 높아지는 것이 사회 발전이나 역사의 진보도 이끌어낸다

우리나라 정치에 참여하는 자칭 주류 집단들은 정치를 철저하게 집단적인 이권 배분으로 귀결한다. 제도 변화나 여러 현실 문제의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고, 현실에 나타나는 사건이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집단적으로 이권을 배분하는 데만 노력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에서 기본적인 시스템이 잘 자리잡던 시기인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앞에서 만들어놓은 것을 잘 다듬기만 해도 사회가 문제없이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현재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정치가 사회 변화와 함께하면서 현실에서 나타나는 일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나타나는 사건이나 사람들을 잡아내서 특정 집단들의 이권 획득에 사용한다.

이는 의료계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주류 집단들의 행동방식과 유사하다. 법에서 신분이 보장되고, 직업 특성상 레지던트 수련 이후 경험만 쌓으면 일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어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언론에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놓고는 현실 변화와 관계없이 집단 이권을 적당하게 나누어 배분하는 데 써먹는다. 건강 문제의 특성상 결과가 뒤늦게 나타나고, 결국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의사나 전문가의 능력보다는 해당 사회의 전반적인 역량이 높아진 이후에나 되는데, 힘들게 일을 할 생각은 없고 이를 정치 소재로 써먹는다. 코로나처럼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4-5년을 써먹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의료 분야의 연구나 발전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사회 문제 해결을 막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이나 주류 세력의 행동은 북한 정권과 별 다를 바 없다. 정치 체제의 차이에 의해 행동방식이 다를 뿐이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맞게 정치 권력을 특정 집단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언론이나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전근대적 사고를 주입하면서 이권을 챙기려 하고, 개인의 자유나 사회적 가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이미 자유의 가치를 알고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할 만한 역량이 충분히 되는 국민들과, 전근대 사고에 젖어 법치를 허물고 국가 조직도 엉망으로 만들어 사회를 지배하려 드는 정치 세력이 만들어내는 모습들은 기괴하게 보인다.

그러나 개인이나 조직이나 한번 발전하고 난 이후에 퇴보하는 경우는 없고, 사람들이 경험으로 익힌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법치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는 개인의 자유에 기반하여 발전되어 온 것으로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이후에 그 가치가 부정되는 경우는 없다. 국가 조직이나 경제 제도에 의해 부패나 독점이 나타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지만, 개인의 자유가 조직의 운영이나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기반이 되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조직이나 사회는 생존이 어렵다. 법이나 제도에서 사회적인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행복이나 자아 실현을 위해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고, 자유로운 행동이 나타날 수 있어야 사회적인 가치도 실현될 수 있다.

정치 집단이 독재를 해도 나치가 되느냐, 양아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이런 일들을 극복할 정도로 자유를 향한 의지가 나타나면 양아치 취급을 받는 것이고, 권력이나 이권을 이용하여 지배하려 드는 집단에 정상적으로 대처를 하지 못하면 나치가 된다. 언론이나 법조계, 공공 조직에 노골적으로 부패 카르텔을 만들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헌재 판결 이후에 법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국가 권력을 통해 여러 이권을 나누어가지려 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저런 일을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오만함이 극에 달한 느낌인데, 개인이나 조직이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데 대처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나. 애들 싸움이 나쁘다는 식으로 학생들 세뇌시키듯이 자유로운 행동을 막아 사람들이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정보가 다 공개된 세상에 마음대로 되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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