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처음으로 동네 공원에 다녀왔다.
꽤 큰 공원인데 이사 오고 석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들린 적이 없었다. 남자 친구는 공원 너머 도서관으로 종종 출석을 했기에 길을 잘 알고 있었는데, 괜히 내가 사는 곳에 무심했던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가는 길이 가파르다고 정말 갈 수 있겠냐고 몇 번을 되묻기에
응 나는 짱 쎄서 갈 수 있어!
했다.
물론 출발하고 10분 만에 기진맥진했다. 왜 이렇게 오르막이 많은지. 무릎도 안 좋은데 그냥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빙빙 돌걸. 그래도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올라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끝까지 올라오니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수다 떨며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원에 있었다. 그중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도 많이 계셨는데, 젊은 사람이 힘들다며 투덜투덜거리고 올라왔다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이번 주말은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는데 시간을 쓰는군.
공원에 도착한 기념으로 10분 정도 앉아서 아래쪽에 보이는 개 놀이터(?)를 구경했다. 큰 개, 작은 개, 하얀 개, 노란 개. 아주 많은 댕댕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쟤네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잘 어울려서 노네. 사회성이 좋은 친구들이구나.
남자 친구가 공원에 토끼가 있다고 해서 둘러봤는데 토끼는 못 찾았다. 그는 산책하는 개들이 공원 토끼를 몇 번 괴롭히는 것을 봤다며 아마 그래서 토끼들이 숨은 것 같다고 했다. 아쉽네... 하고 공원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저기 봐 딱따구리!
어디? 없잖아!!
저기 저기 나무에!
오 진짜 있네! 딱따구리는 구멍 낼 곳을 찾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나무 위를 총총 뛰어다니는 건지 계속 부산하게 움직였다. 가까이 가서 봐야지 하고 다가가니 이미 딱따구리는 다른 나무로 옮겨가고 없었다. 아쉽다 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고양이들이 우르르 뛰어가고 있었다.
저기 쥐라도 나왔나? 왜 고양이들이 떼 지어서 뛰어가지? 하고 시선을 옮기니 유모차에 물과 사료를 실은 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 이 공원에 고양이 밥 주는 분이 계시는구나 대단하시네. 캣맘은 익숙한 듯 고양이들을 불러 물과 밥을 주고, 고양이들은 아주머니를 따라다니며 바닥에 놓인 사료를 먹었다. 아마 공원이 넓어 밥그릇과 물그릇을 일일이 치우기가 힘드니 바닥에 주는 거겠지.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돌봐주는데 누가 볼까 눈치 보며 얼굴을 모자와 선글라스로 가리고 후다닥 움직이는 모습에 약간은 마음이 아팠다.
캣맘 아주머니 덕에 고양이들이 떼 지어 길가에 뒹굴뒹굴하는 장관을 봤다. 밥 주는 사람이 있어도 저렇게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경우가 드문데, 이 동네는 길고양이를 해치는 사람이 없나 보다. 유난히 빌라 사이사이 고양이가 많이 보이고 집 앞에 고양이 밥과 물이 놓여있더라니. 성남은 고양이 친화적인 도시였네. 나도 집 앞에 길고양이 밥자리를 만들어볼까 했지만, 전세 계약이 끝나 2년 후에 이사 가면 누가 또 고양이들 챙겨주려나.. 끝까지 책임 못질 일이면 시작하지 말자. 해서 생각만 하고 말았다.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고양이 밥을 마당에서 줄 수 있게 마당 있는 주택에 살아야지. 삶의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야옹아 야옹아!
하고 부르니 쪼르륵 오더니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를 감시했다. 왼쪽의 까만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로 보였다. 나머지 고양이들은 가까이서 보니 아직 덜 큰 캣초딩..보다는 큰 캣중딩이었다. 수풀 사이에서 자기들끼리 우다다 뛰어다니면서 장난치는데, 턱시도 고양이 하나가 우리 쪽으로 포르륵 뛰어왔다. 얘는 사람을 전혀 안 무서워하네?
야옹아! 하고 가까이가니 다시 후다닥 엄마 곁으로 도망갔다.
그래 앞으로도 사람 무서워하면서 살아라. 나쁜 사람도 많으니까!
고양이 가족을 뒤로하고 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까마귀를 만났다. 여기는 정말 동물이 많네. 다음에는 토끼도 보면 좋겠다.
좋아하는 공간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