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여럿 망친다.
첫 번째 공황발작은 21살 봄에 찾아왔다.
합격한 대학이 성에 차지 않아 2학기를 휴학하고 반수를 했다. 소위 말하는 ‘물수능’이라 원점수는 훨씬 높았는데 결국 다니던 곳을 계속 다니게 되었다. 학교로 돌아가기도 싫고 엇학기를 다니기도 싫어서 그냥 한 학기를 더 쉬었다. 쉬면서 알바도 하고 여행도 가고 좀 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첫 알바는 집 근처 영어학원의 데스크 관리였는데, 원장이 한 시간마다 와서 왜 일을 안 하냐며 잔소리를 해댔다. 방금 서류 정리 끝내 놓고 잠깐 화장실 갔는데 억울했다. 매일매일 사람을 엄청 쪼아대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한 달쯤 지나서, 고모가 운영하는 작은 학원에 보조교사 자리가 생겼는데 해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 탈출이야! 하고 바로 그만두고 보조교사 알바를 시작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나는 애들이랑 너무 안 맞았다. 처음에는 7세, 8세를 배정받았는데 5시간 일했지만 50시간은 일한 기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쉬는 날에 SNS를 보고 있으면 다들 즐겁게 학교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는데 나만 왜 이렇게 살지. 하는 자격지심도 마음속에 자라났다.
공황발작은 정말, 오랜만에 평화로웠던 어느 오후에 갑자기 찾아왔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엄마가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내용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시답잖은 잔소리. 그게 트리거(Trigger)였다. 살짝 짜증이 나서 대꾸를 안 하고 고기를 굽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 뭐야 왜 이렇게 답답하지. 생각하는데,
언니야,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얗노.
어.. 잘 모르겠다.
갑자기 체했나? 하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이불을 덮어도 춥고 숨은 계속 잘 안 쉬어지고,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처럼 무섭고 어지럽고 몸이 떨렸다. 아직도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는데, 나중에 공황장애가 심할 때는 공황발작이 무서워서 아예 아무도 안 만나고 싶었다. 그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엄마가 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 괜찮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고, 약 20분쯤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졌다.
부정맥인가? 남동생도 부정맥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심장내과를 찾았다. 지겨운 심전도 검사와 24시간 홀터 검사 끝에 부정맥 아님. 땅땅! 판정을 받고 의사는 신경과로 가보라는 조언을 했다.
신경정신과?
거기 가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안 갈래.
종종 숨을 쉬기 힘들 때는 있었지만,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첫 번째 공황발작은 잊힌 채 2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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