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배 Apr 28. 2019

샤가, 미치다[1장-1]

제 1장. 유랑자, 헤매는 자[1-1]


유난히도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던 빗소리가 애달프던 날이었다


.

그래서였을까

,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시리도록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일까

.

그래서 그들은 절대로 전해지지 않을 말을 전하려 애썼던 것일까

.

그래서 그들은 결코 닿지 않는 손길을 그만

,

거두었던 것일까

.

그래서 그 날 난 절대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보았던 것일까

.

그래서 난 당신을 결코 만나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

...


     

회색 후드티를 머리 깊숙이 눌러쓰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길을 걷던 한현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이 트려거든 아직 먼 한참의 새벽길. 사람의 기척은커녕 길고양이의 흔한 울음소리 하나들을 수 없는 모두가 깊이 잠든 때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여겼으나, 가만 생각해 보자,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애를 쓰고 있음이라. 그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가로등 하나 없이 유난히도 어두운 그곳으로 향했다.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어두운 벽 사이를 응시하자 두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한 인영의 손이 다른 인영의 얼굴에게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다.

     

“누구야!”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나는 보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한현은 급작스럽게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이 바닥으로 푹 쓰러져 정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감겨 가는 눈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정신을 차린 한현은 가물거리는 시야에 머리를 흔들다 곧 코를 찌르는 악취에 얼굴을 찌푸렸다. 쓰레기장? 그는 혀를 찼다. 아무리 인심이 박해졌다 해도 운이 좋다면 응급실에 누워 있을 것인데, 사람을 그냥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다니 해도 너무 한 것이 아닌 가 말이다. 그런데 사람을 그냥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그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몸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거대한 시체들의 산, 이었다. 그것은.

     

한현은 물컹거리는 느낌에 그만 시선을 거두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더기들이 파먹고 있는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아래에 있었다.

     

“아악!”

     

한현은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발아래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여긴 어디지? 화장터? 아니야...’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어째서 수많은 시체들이 쓰레기장의 쓰레기들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그 순간 어디선가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현은 두려움에 무덤 뒤로 몸을 숨기고서-높이가 아파트 3층만 했다-슬쩍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눈을 돌렸다.

     

“야! 너 나와.”

     

검은색 자동차에 탄, 마찬가지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왜소한 남자 한 명이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헉!’

     

놀란 한현은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키려 애썼다.

     

‘침착하자. 저 남자는 널 보지도 못 했잖아. 우연일 거라고.’

     

그의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의 찢어질 듯 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쓰잘 데기 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나와! 이것들은 꼭 내가 나서야 한다니까.”

     

뮈르뮈르는 차에서 내리고서는 시체더미 위를 걸으며 답답한 듯 왼쪽 손으로 셔츠와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한현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 봤지만 공포심에 이미 머리와 몸은 마비 상태였다. 그 때였다.

     

“이 놈의 자식... 어라? 이건 뭐야?”

     

한현 앞에 나타난 남자는 놀란 얼굴로 그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놀라긴 한현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안 걸까. 남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한참동안이나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냔 말이지...”

     

“저기...”

     

남자가 생각에 잠긴 사이 평정심을 되찾은 한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남자는 듣지 못 한 것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짝.’

     

한현이 그의 주위를 끌기 위해 박수를 치자 그 제서야 남자는 그를 쳐다보았다. 한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왜, 그러세요?”

     

그러자 뮈르뮈르는 정신이 든 듯 한현의 어깨 더미를 잡고는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한현이 소리쳤다.

     

“뭐에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힘이었다. 170cm에 60kg가 될까 말까 한 남자는 180cm에 80kg에 가까운 한현을 가볍게 잡아끌고 가고 있었다. 한현은 본능적으로 애써봤자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어딜 가는 거 에요.”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네?”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뒷좌석에 한현을 쑤셔 넣고는 핸들을 잡으면서 말했다.

     

“거기 조용히 숨어 있어. 그러는 게 이로울 거다.”

     

한현은 어떨 결에 뒷좌석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여기 남한 아닌가요? 전 그저 평범한 대학생인데요...”

     

엔진소리가 울리며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원래 인간이었단 말이지? 역시, 보통 일이 아니군.”

     

한현이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말했다.

     

“그게 무슨...”

     

그러자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테다.”

     

그러다 남자는 잠시 차를 멈추고서는 뒷좌석의 한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잠시.”

     

남자가 손가락을 탁 튕기자 한현은 그대로 기절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다시 뮈르뮈르는 고개를 저으며 엑셀을 밟았다.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떨쳐 내려는 듯이.

     

시리도록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지금의 깊고도 깊은 밤 같은 흑발을 한 여자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자신을 비추고 있는 달을 또 그리고 또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얼마 만이었을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여자를 보며 흑발의 여자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다가오던 가을 같은 갈색 머리의 여자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보고 싶었어.”

     

흑발의 여자는 생각했다. 언제나 말을 하지, 너는. 언제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며, 너는.

     

잠시 사이를 두고서 서로를 응시하던 둘은 점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한 발짝씩 서로에게로 다가섰다.

     

“너는 언제나 말이 없구나.”

     

흑발의 여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궁금한 적이 있었을까, 너는.

     

갈색 머리의 여자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

     

흑발의 여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너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건 또, 나겠지.

     

그 때였다. 몸을 숨기고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한현의 앞에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녀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