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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일 Apr 26. 2023

반려동물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기나긴 밤이었다. 새벽동안 밥풀은 빈 속에 위액을 토하고, 남편은 등을 두들겨주고, 나는 바닥을 닦는 것을 수없이 반복했다. 거실은 토냄새로 가득했다. 우리 셋은 밤새 잠을 설치다가 결국 24시간 동물병원 응급실에 가서 밥풀을 입원시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텅 빈 우리 집에 혼자 있기 싫어져 방향을 틀어 동네를 하염없이 떠돌았다.

 

 만약 내 반려견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 아파요.“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다. 반려견을 키우기 전에도 반려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결과와 달리 ‘난 아파요.’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그 결과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을까. 막상 반려견을 키워보니 전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게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어디가 아프다고 제발 말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동물은 아픈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숨기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답답해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말도 못 하면서 티도 안 낸다.  밥풀도 아프면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쓰다듬고 만지려고 하면 피하고 거리를 둔다. 괜히 안 아픈 척 견디는 모습이 더 안쓰러워 죽겠다. 반려동물이 아프면 무조건 보호자 탓이 된다. 밥풀이 아프면 나는 죄인이 된다. 잘 돌보지 못한 죄로 스스로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지난 며칠 동안 있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뒤져가면서 내 잘잘못을 따진다.


 동물병원은 사람 병원보다 비싼 편이라 어쩔 수 없이 동물병원에 가는 것이 더 신중해진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야간 응급진료는 추가 비용이 들고, 체중에 따라서도 비용의 차이가 있어서 일반적으로 대형견의 병원비가 더 비싸다. 어렸을 때는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무작정 병원으로 뛰쳐갔지만 이제는 보통 증상에는 잘 놀래지도 않는다. 며칠 동안 경과를 지켜보다가 차도가 없다면 병원을 내원한다. 밥풀의 동물병원을 가는 기준은 ‘기력’이다. 팔팔하고 늘 배고픈 애가 힘이 없고 밥을 먹지 않는다? 무조건 병원행이다.


 나는 잠이 많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는 편이다. 그런데 안방에서 문을 닫고 자는데도 거실에서 자는 밥풀이 뒤척이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기가 막히게 벌떡 일어난다. 몸의 모든 신경이 무의식적으로 밥풀에게로 향한다. 밥풀이 아프면 하루종일 온통 밥풀 생각뿐이다. 일도 잘 잡히지 않는다. 비교도 안 되겠지만 이것이 바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일까.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이번에는 이틀 동안 계속된 구토, 혈변, 식욕부진 등의 증상으로 내원한 결과 상부 소장의 출혈로 인한 급성 장염으로 진단되었다.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아인슈페너 커피를 두 모금 몰래 훔쳐먹은 결과다.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대형견에게는 소량이라서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측을 했지만, 원인이 어찌 됐던 간에 결국 보호자인 나의 부주의다. 내 탓이오. 남편과 나는 이제 아인슈페너를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고 난 직후에도 밥을 곧잘 먹던 아이가 식음전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밥풀을 키우면서 밥을 안 먹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픈 아이가 밥을 안 먹다니. 증상 첫날은 동네병원에서 항구토제, 항생제 등의 내복약을 처방받았지만 속이 좋지 않아 약을 다시 토하는 바람에 통원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입원 후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등의 각종 검사, 장염 치료, 입원비 등으로 이틀 만에 돈백만원이 순식간에 깨졌다. 귀신 같이 월급날은 어떻게 알았는지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돈 버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살다가자 제발.



밥풀 인스타그램  |  @kimbobpurii

https://instagram.com/kimbobpu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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