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휴일
평화로운 휴일 아침이다.
게으른 사람과 사는 짝꿍은 오늘도 나를 위해 빵집을 다녀오고 토스트를 굽는다.
귀찮을 텐데 귀찮은 티도내지 않고 무엇이 기쁠까만 말이라도 기쁘다고 하며 늘 나보다 먼저 분주히 움직인다.
고맙다.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자신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그 마음이 귀하다.
오랫동안 그를 위해 내 모든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었고 그 조차 인식하지 못했었다.
당연한 거라 생각한 건 맞지만 마냥 행복하진 못했던 둣 하다. 내가 없었으니.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삶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짝꿍은 소중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와 나는 엄연히 다른 인격체인 것을 깨닫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부부 일심동체' 과연 그럴까?
솔직한 심정은 '말이 돼? 어떻게?'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서로의 동반자이기에 이심이체가 전제되어야 쓸데없는 오해가 덜 생긴다.
더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이 한 마음 한 몸처럼 움직이길 바란다는 건, 둘 중 누군가는 눈 감고 귀 닫고 마음은 타인을 위해 24시간 열어 놓아야 하고 내 생각보다는 상대의 생각을 예민하게 읽어 내고 그에 맞게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 때 가능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부 일심동체'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고 뭔가 불협화음에 대한 책임과 그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끼게 하는 관계는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표현하면 너무 과한 걸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또한 그렇게 길들여지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너무나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였다는 것이다.
부부가 긴 세월 함께 가기 위해선 아름다운 조율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행복과 서로의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
우리는 5년을 만났고 1년 동안의 정식적인 교제를 통해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난 취집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 스스로 전업주부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당당하지 못하다고 잘못 생각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맞춰야 하고 내가 참아야 하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 남편의 말을 만고의 진리인양 믿으며 순종적이지 못한 성품을 꾹꾹 눌러내며 지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기에 아직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부분도 흔쾌히 인정한다.
그렇지만 일방적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 한 결 같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자아'라는 아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생각과 마음은 나와 다를 수 있고, 아니 당연히 다른 것이고
남편의 일이 내일이 아니고
남편의 직장이 내 직장이 아니고
남편의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고
남편의 인생이 내 인생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늘 자신의 일과 취미 생활로 바쁜 남편은 표현되지 않는 나의 생각과 고민과 감정을 알리 없었기에 같이 있어도 외롭기 그지없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살아 가는데 집중하고 정성을 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 이후 그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고
가족들을 떨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상은 그들을 위해 살지라도
여행하는 시간들만이라도 누군가를 챙기지 않고 그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느끼는지 온전히 누리고 싶었고 여행이 끝나갈 즈음엔 늘 일상을 함께 살아내는 가족들에 대한 소중함과 내 존재의 이유를 깨치고 원래 나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주변인들이 말하는 나의 차이
현실 자아와 이상 자아의 경계에 대해 무던히도 애쓰던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랬기에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지인이나 내담자를 만나면 지식과 지혜가 스며있는 갹관적인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남편과 아이들의 삶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완전한 분리는 아니지만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틋함이 오고 갈 수 있을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관계도 변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찾고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건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내조를 받는데 익숙하고 집안일은 나의 일이라 여기던 남편도 바뀌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부부관계가
성평등한 부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엔 평화라는 두 글자가 자리하고 있다.
부부는 친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혹은 아래에서 보는 사이가 아니라
옆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손 잡고 걸어갈 수 있어야 같은 세상을 비슷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아침 토스트 한 상에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찾아 여행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이기적이고 바빴던 남편이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생각하니 그것 또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