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진 세계에서 나를 묻는다
나는 내가 던져진 이 세속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본다.
왜 하필 그때, 이곳이었을까.
세속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 같은 인간들이 던져진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계와 구조, 그 복합적인 얽힘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우리가 ‘세속’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총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속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인간다워야 하는 걸까.
인간과 세속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규정하며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걸까.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있다.
윤리, 자유, 규범, 상식, 정의.
그것들은 과연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어떤 사유 끝에 만들어진 것일까.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평범함을 지향하게 된 우리의 사고는
언제부터, 얼마나 깊게 뿌리내린 것일까.
‘진리’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판단하고, 줄 세우고, 배제하고, 침묵하게 만드는 수많은 기준들 속에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것은 정말 진리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반복되며 굳어져, 우리가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고정된 틀은 아닐까.
결국 인간의 본질은 인간만이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순응하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며 비판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본질은, 오직 나만이 끝까지 묻고 살아내며 발견하고, 마침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있어 왔던 타인의 생각을 그대로 믿고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이 세속을 살아가는 내가 매 순간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결국 나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이데거의 사유를 읽을수록,
사르트르의 문장을 따라갈수록,
질문은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쌓여간다.
하나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 물음들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사유의 틈에 머물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한 정답이 아니라
‘나를 나이게 하는 것’에 대해 오래 머무는 시간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조용히 사유하고,
충분히 숙고하며,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부족하고 서툴고 엉성할지라도 나의 언어로 나를 묻는 시간.
아마도 그 시간이야말로
이 세속에서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정직한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