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이면
어리석음으로 세속은 굴러간다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사랑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결혼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가 유지된다'
에라스뮈스의 말을 곱씹어 본다.
인간은 왜 어리석은가?
그 중심에 '욕망'이 있다.
인간은 욕망 때문에 어리석어지고 사회는 그 욕망을 이용해 구조를 만든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개인의 차원으로 볼 것인가 사회 구조의 차원으로 볼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말처럼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유지학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은 한바탕의 유쾌한 어리석음이라지요! 그것이 에라스뮈스의 광우현인만이 아는 바람 속의 이치이지요!'
미친 척 모른 척할 말 다하는 센스 있는 인간을 묘사한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인간을 볼 때의 유쾌함과 통쾌함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너무나 이성적인 척 도덕적인 척 고상한 척하느라 진심은 가면뒤에 숨기는 현명한 듯 어리석은 인간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게 무슨 대수냐?'라며 툭툭 던지는 배짱은 어쩌면 어리석음을 인정한 인간의 당당함은 아닐까?
인간의 어리석음은 곧 나의 어리석음이다.
나는 대부분 어리석지만 가끔 그 어리석음을 자각하고 성찰할 때도 있으니 찰나의 현인이 될 씨앗 하나쯤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꼼틀거린다.
현존재는 '어리석음-내-존재'라는 말은 어리석음은 내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읽히고, 나와 어리석음은 분리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듯하다.
그래서 그 어리석음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살 달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내 어리석음을 감당하는 가장 건강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내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살펴보다 보면
내 세계에 갇히기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어쩌면
관계로 인해 생기는 고민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