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이 꼬이지 않아야 바늘귀를 드나들 수 있다.
‘부부’라는 단어의 어감은 참 부드럽고 푸근하며 다정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부부들의 일상도 그 어감처럼 따뜻할까.
우리 부부는 대체로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따로 또 같이’를 지향하는 우리에게는 각자의 일과 취미, 그리고 그때그때의 관심사가 있다.
그래서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친밀한 거리 속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도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가끔 다툼이 생기면 감정이 크게 출렁이고, 그 출렁임의 흔적이 내 안에 쌓이고 있음을 나는 안다.
큰아이가 스물여덟이니 거의 30년이다.
같은 주제로 시작된 작은 다툼은 봄 산불처럼 번져
내 정신과 육체를 다 태울 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뒤틀린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단하다. 어쩜 30년 동안 그렇게 한결같아!”
잔뜩 틀어져 버린 마음에서 건져 올린 꼬인 언어는 나를 떠나 남편에게로 날아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남편이 문제일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남편에게 같은 언어와 같은 방식으로 응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문제일까.
이론적으로 보자면
남편의 확고한 신념과 나의 상처가 결합하여 생겨나는 결과일 수도 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상처를 인정하기보다
남편의 반응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 몸과 마음에 밴 생각들이 깊어졌다.
상처를 살피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내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비난이 아닌 요청의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 좀 하자”라는 나의 말에
남편이 긴장이 아니라 편안함을 느끼며 응할 수 있다면
그 여유로움은 슬기로운 부부 생활의 윤활유가 되지 않을까.
30년을 살아 보니 남편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기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폭풍 같은 싸움이 지나가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보며 웃어버린 적도 있다.
“또 우리가 이러네.”
그 웃음 속에는
어쩌면 서로의 어리석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마음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끔씩 고슴도치처럼 뾰족해지는 필요 이상의 예민함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는 일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관계는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난 원래 그래.”
“넌 늘 그래.”
이렇게 단정 지을 때
상대는 어느새 나의 지옥이 된다.
화가 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로 응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해도
감정에 매몰되어 관계를 어긋 내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원했었나.
나는 어떻게 되길 바라는가.
지난 경험으로 누적되어 올라온 감정보다는 내게 던지는 좋은 질문에 집중할 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부 사이가 말랑말랑해지길 원한다면
먼저 내 마음의 말캉함의 정도부터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