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인생

by 변송자

스스로 하루살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숨이 차다고 느끼던 어느 시점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고 열심히 살아온 나의 시간들을 인정해 주었다.

잠시 쉬어 가자.

더 멀리 가기 위한 쉼을 선택하고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며 긴장의 끈을 스르르 놓으며 무계획이 계획인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의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점심을 잘 먹는 것이었고 맛난 음식을 먹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는 소소한 기쁨을 아주 많이 누리는 것이었다.

하루살이처럼 살았던 나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짜릿함과 이완으로 온 세상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꼭 찬 느낌 덕분에 나의 일상에 만족과 감사가 저절로 찾아왔다.

지금도 큰 기조는 바뀌지 않았지만

어느 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너무 본능에 충실한 감각적인 인간은 아닌가?

다 좋다고 하더라도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성장이든 성숙이든 뭔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대로 직진해도 되는지 방향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쉰을 넘었으니 성장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구나!

상담은 심리로 심리는 철학으로 철학은 종교로...

결국 영적인 인간이 성숙한 인간의 표본인 것처럼 느껴졌다.

싯다르타처럼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보다는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허망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목표 덕분에 종교 서적을 읽고 철학 어딘가를 기웃거리다 보니 나의 생각과 관심은 결국 나 자신과 나의 일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문학을 읽고도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를 점점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준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그러한 활동을 하는 내가 꽤 괜찮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성숙한 인간의 기준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주는데 정성을 들이고 있기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어떤 길 위에서 걷고 있음에 의미를 둔다.

니체의 말처럼 모든 인간은 되어 가고 있는 존재이기에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그 누구도 아닌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진정한 승자가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

나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단순하게 살 수 있는 삶이다.

쓸데없는 영역에 전원을 내림으로써 쓸데없는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오늘 하루치의 기쁨을 온전히 누려 보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 즉 불안전한 생명성을 인정하면 천년만년 살 것 같던 욕심과 걱정은 조금씩 내려지곤 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이 시간에 하기 딱 좋은 단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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