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아침이다. 당근을 칼로 자르는데 미끈거렸다.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냄새가 났다. 겉을 칼로 벗겨내고 다시 썰어 한 입 베어 먹었다. 시큼했다. 속까지 상한 것 같다. 요즘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 건지. 냉장고가 작아 넣지 못했더니 바로 상했다. 아깝지만 먹고 탈 날 수 있으니 버렸다. 이번에는 양배추를 꺼내 보았다. 역시나 양배추도 상한 것 같았다. 허연 액체가 흥건했다. 상해서 녹아내렸다.
아침식사로 먹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았다. 사과는 오늘 마트에서 사야 했기 때문에 없었다. 양배추와 당근 남은 절반을 버린 게 아까웠다. 평소처럼 보관했는데 상해서 더 속상했다. 냉장고는 냉장과 냉동이 구분이 안되어있다. 온도를 낮추면 모두 얼고 높이면 모두 녹아버린다. 중고 냉장고라도 사야 하나, 아니면 야채만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을 사야 하나 고민이다. 더 더워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할 텐데 결정을 못 하겠다. 이곳에서 오래 살 것 같으면 괜찮은 냉장고를 사고 싶지만 잠시 머무를 곳이라 그런지 내키지 않는다.
마트에서 당근과 양배추를 골랐다. 어떤 게 싱싱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야채를 고를 때 싱싱한지 그러지 못 한지 기준을 색으로 정했다. 야채의 고유한 색이 조금 더 확실한 것으로 고른다. 잘 모르니 어쩔 수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막상 사려고 하면 긴가민가 하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다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고유의 색이 확실한 것으로 정한 것이다.
이것저것 사 온 것들을 냉장고와 진열대에 정리하고 야채 정리를 하면 된다. 당근은 깨끗이 씻어 밀봉해서 보관하면 된다. 문제는 양배추다. 양배추는 씻어서 보관해야 하나, 아니면 겉껍질만 벗겨내면 되나 또 고민이다. 겉껍질을 벗겨내고 씻으면 속은 못 씻는다. 그렇다고 계속 껍질만 벗겨내면서 씻으면 먹을게 없어질 테다. 그냥 껍질만 벗겨내고 씻지 않기로 했다. 맞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식사는 사과, 당근, 양배추가 나의 주식이 되었다. 그런데 당근과 양배추 보관에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날씨가 추워 야채 보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잘 보관해서 싱싱하게 먹던지 아니면 빨리 먹어 없애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가전제품을 살 엄두는 아직 못 내고 있어서 간단하게 보관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매해야 하겠다.
오늘은 당근과 양배추를 특히 많이 넣은 카레를 해 먹었다. 벌써 상해서 버릴까 걱정되어 겁이 났나 보다. 양배추를 넣은 카레는 처음인데 카레의 특유의 강한 맛이 양배추가 들어간 것을 잊게 해 주었다. 뭐든 싱싱할 때 해 먹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