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를 안 본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자료 조사 겸 꾸준히 챙겨볼 법한데 징글징글하게 안 본다. 아마 호흡이 길어서인 것 같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짧고, 책이나 웹툰 등은 언제든 덮을 수 있지만 드라마는 열 편 정도 봐야 하니까. 그렇기에 만에 하나라도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쇼츠나 유튜브로 소개받은 경우이다. 오늘은 그렇게 알게 된 것 들 중 인상 깊었던 작품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넷플릭스를 통해 2023년 방영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다.
간호사 박보영의 성장일기이기도 한 그것은 다양한 정신질환자들의 회복 서사인데, 내 눈길을 끈 것은 공시생 이야기였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공시생은 머리도 식힐 겸 pc방에 갔다가 게임에 빠진다. 꽉 막힌 현실과 달리 시원하고 통쾌한 세계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다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극진한 치료 덕분으로 다시 현실감을 되찾지만, 사회로 던져지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박보영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기도 하기에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에 주목한 건 살아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살아낸 댓가, 라니. 이상한 말이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입원을 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삶은 퇴원 후 밀린 공부로... 저만치 앞서간 경쟁자들로 인해 다시 무너져버렸다. 견뎌보려 했으나 마음은 꺾여질 대로 꺾여진 후였다. 결국 공시생은 옥상으로 향한다. 차마 투신할 수 없어서 망설이던 순간, 땅이 갈라지며 게임 속 화룡이 나타난다. 그래, 자살이 아니다.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미소띤 공시생은 한 발자국 내딛는다. 영원한 판타지의 세계로.
나는 긴 시간 우울증을 겪었다. 원인을 몰라 땅굴을 파는 사람들과 달리, 이유도 명확했다. 문제는 그 원인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도망도 가보고, 대른 대안을 떠올리기도 했다. 무작정 몸을 힘들게도 해보았으며 병원도 다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더 깊은 미로에 갇혔을 뿐이다.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인형 뽑기처럼 공중에서 손이 내려와 날 들어올린 뒤 출구로 내려놓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천재일우의 기회로 용케 미로를 빠져 나간다 해도 문제였다. 방황하는 동안 놓쳐버린 것들이 너 잘 걸렸다며
드잡이를 할 것 같았다. 소진된 건강, 늦어버린 출산과 임신, 못 이룬 꿈 등을 한꺼번에 회복하라며 차압 딱지를 붙일 듯도 싶었다. 문제는 그 생각을 하는 지금도 여전히 미로 속이라는 거였다. 여기서 빠져나단 보장도 없는데 출구에서 진을 치고 있는 차압 딱지들은 어떡한단 말인가. 그만... 이제 그만 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도박, 로또 같은 한탕주의 아니면 조용히 삶에서 퇴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기적 같은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건 공감이란 이름의 사랑이다.
실제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속 공시생도 마지막 순간, 구조요청을 보낸다. 입원했을 때, 가장 큰 공감을 해준 간호사 박보영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박보영은 응할 수 없었다. 못 돼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러했다. 앞서 말한 박보영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은 이것이었다. 안타까운 부분이만 그만큼 공감이 중요하단 사실을 시사하기도 한다. 내가 갇힌 미로에 들어와 주는 것, 기꺼이 길을 잃어주는 것,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 아닐까.
<위대한 개츠비> 속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의 궤적을 밟고, 가치 없는 여자에게 목숨 걸었던 등신 짓을 이해해주며, 조롱하는 대신 위대하다고 치하해준 것처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마츠코 고모의 삶을 따라가고, 혐오스러움이 실은 사랑스러움이었단 걸 알아주며, 고모야 말로 신과 같다고 해준 테츠야처럼. <인간 실격>에서 역겨운 요조의 개인사를 다 들어준 마담이 요조는 실격이 아니라, 하느님처럼 착한 아이였다고 술회해준 것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그 공감을 몸으로 해주기 위해 2000년 전 이 땅에 온 신처럼. 죽은 사람을 살리고, 맹인의 눈을 트여준 것도 기적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와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는 지점이야말로 기적이며 예수가 신이 될 수 있는... 아니, 신인 이유가 아닐까.
살아낸 댓가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겨우 전쟁터에서 돌아왔는데 밀린 이자를 갚으라며 멱살을 틀어쥐는 아비규환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 또한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