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이도 저도 아닌(2)

by 잠뽀

“권 집사님 때문이구나?”

“어떻게 아셨어요?”

“방금 나가시더라고. 귀찮게 하죠? 자꾸 치대고. 나한테도 그래요.기분 나빠하지 마.”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녜요? 저도 어린 나이가 아닌데.”

“매니저님 봉사하는 거잖아.”

“……?”

“최저 시급도 못 받고 일하는 거, 봉사하는 거 아니었어요? 마음 낸 김에 조금만 더 내봐요.”

“하지만…….”

“저 치들도 봉사하는 거니까.”


응? 동병상련, 동병상련… 하는 말이 이어졌다. 동병상련은 무슨 놈의 동병상련. 그리고 정말 동병상련이면 더 기본을 지켜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간사는 잘못이 없었다. 본인 또한 비슷한 일을 겪는다며 위로까지 해주고 있질 않나.


‘그래, 사회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지. 적어도 전 직장보단 낫잖아. 그땐 온갖 막말에 폭언…….’


절레절레 고갤 젖는 걸 알았는지, 간사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실은 이거 때문에. 공문이 내려왔어요. 요식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얀 종이 위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했다. 음식점이 이수해야 하는 강의에 대한 설명이었다. 시험도 보는 등 총 10개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인터넷으로도 받을 수 있었지만 여러모로 귀찮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자 간사가 어깨를 톡 쳤다.


“직원이잖아.”

“……?”

“수고해요.”


말을 마친 간사가 밖으로 나갔다. 딸랑거리는 종 소리에 실소가 터졌다.


“어떨 때는 직원이랬다가 어떨 때는 봉사자랬다가… 끼워 맞추기 쉽구만.”


쯧쯧 혀를 차다 피식 웃어버렸다.


그 후로도 봉사자 들과 나의 티격태격은 끝나지 않았다. 이상한 신경전을 하기도 하고, 서로 눈치를 주기도 했으니까. 결국 스트레스가 트라우마까지 소환하기에 이르렀을 즈음,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된 거, 아예 뿌리부터 뽑는 거다.’


손님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으므로 아예 종이에 써서 전시하기로 했다. ‘반말 금지’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직원은 또 다른 가족의 일원입니다. 존중해주세요’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땐 꼭지가 돌아서 어쩔 수 없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손님들은 꼬박꼬박 존대해주었다. 메뉴명만 말하려다가 뒤에 ‘요’자를 붙이기도 했고, ‘반말 금지’ 라는 펫말을 써붙인 이유를 묻기도 했다. 사정을 말하며 양해를 구하면 ‘사람들이 말이야…’라며 원성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주적이었던 봉사자 들은 끄떡도 안 했다. 몇몇은 조심하는 척이라도 했으나 최종 빌런 권 집사 아줌마는 얄짤 없었다. 결국 포기해야 하는가 라며 늘어졌을 즈음이었다.


“…좀 그러네.”


최 장로가 와서 반말금지 펫말을 톡톡 쳤다. 10명의 장로 중 가장 젊은 축으로, 장로들의 결정을 사방에 전하는 행동대장 역할이었다. 최 장로의 손짓에 거치대에 꼽아둔 펫말이 앞뒤로 흔들렸다.


“회의에서 말이 나왔어요. 치우는 게 좋겠다고.”

“…….”

“동생 같고 자식 같아서 그런 건데 이해를 좀 하지… 여튼 없애는 쪽으로 생각해봐요.”


쯧쯧 혀를 차던 최 장로는 내 말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어차피 치울 거였는데 심사가 뒤틀렸다. 동생 같고 자식 같아? 참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잠시 뒤 담임 목사도 왔다. 목사 또한 한 소리 할 것 같아 몸을 움츠리는데,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죠?”


틱틱대던 장로와 딴판으로 온화했다. 아.. 하며 고개를 숙이자 목사가 팻말을 향해 혀를 찼다.


“하여튼 직원 귀한 줄 모르고…….”


그래, 역시 목사님은 장로들과 달라. 괜히 교회 대표가 아닌 거야…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펫말은 치우자. 봉사자 들도 너무 미워하지말고... 훈훈한 자아성찰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목사가 팻말이 꽂힌 거치대를 끌어다 카운터 가운데를 탁탁 찍었기 때문이었다. 불쾌한 된소리가 카페를 날카롭게 울렸다.


“앞으로 여기, 여기에 둬요. 손님 들이 다 보게.”

“네?”

“그래야 확실히 알 거 아냐.”


목사가 다시 쾅쾅 찍었다. 뭐랄까. 말은 나를 위해주는 데 태도가 달랐다. 다짐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했고 경고를 주는 듯하기도 했다. 보통 위로할 땐 제스쳐도 부드럽지 않나?


그러는 사이에도 손짓을 이어나가던 목사는 마지막으로 미소지었다.


“잘해주고 있어요.”

“아,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


힘내요. 뒷말을 마친 목사가 문을 열고 나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치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차라리 장로들처럼 대놓고 뭐라 하면 욕이라도 할 텐데 이건 뭐 내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임자 맘대로 해, 라고 하던 박정희의 대사 같았달까.


좀 더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팻말을 치웠다. 수납장 구석에 깊숙이 밀어 넣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렵다, 어려워. 이도 저도 아닌 게 왜 이렇게 많을까. 인생이 힘든 건 노역이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 때문이 아니라 이 흐리멍덩한 경계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신병 타령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정상이란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일 들 때문이지 않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젖다가 노트북을 펼쳤다. 이럴 때일수록 뭐라도 하는 게 이득이었다. 여기서 글을 쓰며 출간 계약까지 마친 소설의 마감이 코앞이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데 김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도 저도 아닌 건 나도 마찬가지네. 카페 일하면서 이 일까지. 하긴 봉사인지 근로인지 모를 애매한 성격 때문에 지원도 할 수 있었던 거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들로 혜택받는 쪽은 나였던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불현듯 떠오른 성경 구절을 중얼거리며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정말 언젠간 모든 게 명명백백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장 확실한 건 마감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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