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맨스 소설 작가다. 줄줄이 망하긴 했지만 출간했으니 맞을 것이다. 첫 번째 글을 쓴 건 3년 전이었다. 당시 내게 벌어진 이상야릇한 일들이 신병의 전조증상이 아닐까 의심하던 중, 굿당이라도 가봐야 하나 고민하다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교회에서 근로자를 구한단 소식이었다.
전 교인에게 뿌려진 문자는 내게 닿은 신의 손길이었다. 그래, 무당이 되길 바라시진 않는 거야. 성직자가 되기엔 깜냥이 안되지만 비스무리한 일을 하면서 맘을 추스르라는 뜻이 아닐까. 제멋대로 확신한 나는 지체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할게요, 하고 싶어요. 무슨 일인가요. 불도저 같은 들이댐에 담당자는 일단 와보시라고 답했다.
근로 내용은 카페 관리였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카페의 매니저를 하면 된다고. 학창시절, 비슷한 알바를 한 적이 있어서 대번에 오케이 했다.
그러나 나만 오케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상대도… 아니, 상대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과연 담당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듯한 여자는 깊은 고뇌에 빠진 듯했다.
‘…싫다는 건가. 맘에 안 든다고?’
교회 안이니까 좋게 말해 돌려보내려는 건가 싶어 크게 외쳤다.
“히, 힘세요!”
밀고 나갈 건 그거밖에 없었다.
“카페 알바할 때 무거운 거 잘 들었어요. 식자재는 물론, 테이블이나 의자도요.”
“아, 네…….”
“원두 포대도 쌀가마니처럼 번쩍번쩍.”
“…….”
“손도 빨라요. 한 번에 스무 잔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10분 만에…….”
필사적인 구애는 거기까지였다. 보다 못 한 담당자가 말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 보수 때문에요.”
“네?”
“경력이 있으시다니 저희야 좋죠. 일도 잘하시는 거 같은데… 다만 최저시급도 못 드릴 거 같아서요.”
교회가 어려워서… 라는 뒷말이 이어졌다. 어려워? 돈이 없단 뜻인가?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돈 벌려고 온 게 아니었다. 돈 때문이었다면 물류 창고나 공장에 갔을 테니. 내 목적은 오직 하나, '신병스러움 퇴치'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다. 좀 더 생각을 이어나가던 나는 분연히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미안해하는 담당자의 모습도 용기를 주었다.
“할게요.”
“백만원이 조금 넘어요. 주 6일에다가 일요일은 좀 일찍 나오셔야 하는데…….”
“일주일 내내 나와도 상관 없어요. 그럼 저 해도 되는 거죠?”
거듭된 호언장담에 담당자가 미소지었다. 안도한 듯한 표정이 귀여워 나도 함께 웃었다. 마음 붙일 곳이 생긴 순간이었다.
카페 생활이 시작됐다. 오전 10시까지 나가 오픈 준비를 하고 영업을 하는. 손님이 많진 않았다. 근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오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월 결제를 한 뒤 음료를 가져가는 정도? 첫 직장에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사회생활은 엄두도 못 냈는데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불안장애 약도 점점 줄었고 잠도 잘 수 있었다. 더 나아졌을 땐 소설도 썼다. 관련 학과를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도 전에 신병스러움이 덮쳐 놓아버린 꿈이었다. 손님이 없을 땐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담당자의 허락 또한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몇몇 빌런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이었다. 봉사, 라는 어감 때문에 천사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반말이 디폴트였다.
“차가운 거 둘.”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에 여기선 죄다 너나들이를 하는 줄 알았다.
"테이블로 갖다 줘."
내가 어려서 그런가. 그야 나도 서른이 넘었지만 봉사자들에 비하면 자식 뻘이었으니.
그래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이순대로 막대할 거면 직함은 왜 있고, 파트는 왜 분류했겠는가. 나이부터 까고 보지.
그러나 봉사자는 이미 홀 깊숙이 들어간 터였다. 태평스러운 뒷모습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앞으로 계속 이럴 거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그 후에도 무례를 이어갔으니.
"오늘은 속회실로."
처음 반말을 들었던 날로부터 보름이 지났을 때였다. 무슨 소리냐는 표정에 봉사자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이, 카페 문 열고 나가면 있는 방 중에서 첫번째 방으로 갖다달라구우."
나름 친한 척 너스레를 떤 거겠지만 하나도 좋지 않았다. 짜증만 날 뿐이었다. 말이 나간 건 그 때문이었다.
"배달 안해요."
"...?"
"서빙도 안 하고요. 이제부터 직접 갖다드세요."
"일 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는 구나? 전임자는 갖다줬었어."
"....."
"그게 룰......"
"여기 진동벨이요."
쌩한 기세에 봉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눈썹을 꿀렁거리는 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듯했으나 무시하고 커피를 만들었다. 딸랑, 하는 차임벨 소리를 들으며 움직이자니 한숨이 나왔다. 교회도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 분쟁이 생기는 게 당연했지만 씁쓸했다.
‘에덴동산은 정녕 성경에만 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절규를 하며 음료를 만든 후, 진동벨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가져가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고갤 돌리지 않았다.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뒷정리를 하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또 봉사자인가, 또 시킬 게 있어서 다시 왔나 하며 고개를 들자, 간사였다. 내 면접을 봤던 담당자는 교회 행정을 담당하는 간사였다. 왠만하면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간사가 미소지었다.
“바쁘죠?”
“아뇨… 근데 무슨 일로…….”
“전해줄 게 있어서요. 근데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은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건가. 알 만하다는 듯 간사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