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사이, 아이 또한 고개를 숙였다. 어른 들의 기색을 느낀 거였다. 아픈 아이들은 너무 빨리 철이 든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모녀를 바라봤다. 그 동안, 간호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 또한 촉각을 곤두세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날 본 건 그때였다. 거듭 이어진 눈길을 느낀 건지,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이 날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느낌상, 아이가 내 왼쪽 눈을 보고 있다고 여겼다. 오른쪽 눈보다 조금 더 나오고 충혈이 되어 벌겋게 달아오른.
본인처럼 나 또한 왼쪽 눈이 아프다고 생각한 건지, 오가는 시선 속에서 아이가 묻는 듯했다. 아줌마도 나와 같냐고. 나처럼 아프냐고. 그 순간만큼은 삼십 년 넘게 차이나는 나이와, 처음 본 사이라는 관계를 초월해 누구보다도 가까웠다.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네 눈 예뻐. 다른 사람들은 문제라고 하겠지만 난 아냐. 너는 그 눈으로 너만이 볼 수 있는 걸 볼 거야. 아픈 게 뭔지 모르는 이들은 느낄 수 없는 진짜 아름다움을. 가을의 나무, 쨍한 빙판길, 굴러다니는 낙엽과 하얗게 바랜 연탄재. 너무 흔해서 하찮게 느껴지는 걸 사랑할 수 있을 거야. 앓음다움이 아름다움임을 증명하게 될 거야.
그건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병신 같은 눈알, 빼버리면 좋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긴 했지만 실은 아니라고, 의미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이 전해진 걸까. 아이는 한참동안 날 바라봤다. 난 그게 마음이 닿은 증거라고 믿고 싶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서로 만난 거라고.
그러는 사이, 일이 잘 해결됐는지 아이 엄마는 수술실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행이라고 여기는 표정엔 잠시만 기쁨이 스쳤을 뿐 다시 어두워졌다.
뒤이어 내 이름도 호명됐다. 다시는 보지 못할 아이를 일별하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공감을 해서였는지 처음처럼 떨리지 않았다. 워낙 바쁜 의사 선생님이라 보조 의사와 둘 만 있는 가운데 주위가 보였다. 벽 시계가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 수술을 받겠구나.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시계 중앙에 있는 GOD라는 글자도 시야에 들어왔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아이는 성경 구절을 볼 터였다. 나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을 때 그랬으니까. 종교 계열 병원이라서 수술실 천장에 이사야 구절이 적혀 있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아직 한글을 모르면 그림 같다고 생각하겠지. 그럼에도 내 눈을 보며 마음을 읽어줬던 방금처럼, 그 문구도 마음으로 느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엄마도, 친구도 함께 갈 수 없는 그곳에 그 문구만은 아이와 함께 해주길.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왔고 검사 결과를 들었다. 안병증 재발도, 염증도 아니었다. 심한 안구건조증이라고. 그러면서 안약만으론 무리니 누점 폐쇄술이란 걸 하자고 했다. 작은 실리콘 플러그를 눈물샘에 꽂는 거였다.
한 달 뒤 오라는 말과 함께 나왔을 땐 여전히 환자 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내게만 집중했는데, 그제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였다. 아이를 통해 얻었던 충만감이 이어진 걸까.
그때, 기적처럼 다시 아이와 마주쳤다. 수술 준비를 하러 갔다고 생각했는데, 가질러 올 게 있었는지 아까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못 다 전한 마음을 건넸다. 힘내라고. 너와 함께 해주실 신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왠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해후는 거기까지였다. 엄마의 발놀림에 따라 모녀는 멀어졌다. 나는 그녀들이 작아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아이의 앓음다운 눈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