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쉰같은 눈알.”
나는 진료실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대기자 명단이 들어왔다.
“대체 왜 아픈 거야. 와이!”
맘 같아선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이까짓 눈 필요 없다며 탁구 공처럼 튕겨 내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다 정말 눈알을 뽑아야 합니다, 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을까 무서웠다. 안병증 치료 중 감압술이란 수술이 있는데, 눈알을 뽑아서 안와에 밀어 넣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나는 홧김에 한 말이 부정이라도 탈까봐 아니에요, 아닙니다, 헛소리였어요… 라며 벌벌거렸다. 두 손을 모은 모양새는 기도였지만 거의 발작에 가까웠다.
나는 갑상선 안병증이 있다. 갑상선이면 갑상선이고 안병증이면 안병증이지 갑상선 안병증이 뭐냐고 묻는다면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해 눈이 튀어나오는 증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예인 중 서유리가 그 병을 앓았다는데, 내 경우는 좀 달랐다. 난 항진증이 아니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호르몬 검사를 받다가 갑자기 수치가 흔들리면서 눈알이 나온 거였다.
특이한 케이스라고 의사도 말했었다. 이상하네. 5% 정돈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첫 번째 일기에서 외음부 통증 이후에도 이상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져 신병이 아닌가 고민했다고 적었는데, 이 안병증도 그 일 중 하나였다.
어찌됐든 그런 이유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서 같은 병원 안과까지 다니게 되었다. 대학병원을 제집처럼 나다니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이 못 된다. 내과를 안방 삼고 안과를 작은방 삼는 건 어제는 아귀지옥 오늘은 팔냉지옥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의사가 악마 새끼라는 건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무슨 벌… 아니, 선고를 들을지 모른단 공포는 긴 대기 시간은 죽음과 같은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 번만 죽을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거였다.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죽으니까.
어쨌든 그런 이유로 녹다운이 될 무렵, 호명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된 거였다. 겨우 힘을 내서 진료실로 들어가자 무시무시한 기구들이 보였다. 요상한 장치가 달린 의자, 왼편에 펼쳐진 네 대의 모니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도구들... 벌렁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의자에 앉자 의사가 물었다.
“작년 5월에 오셨었네요. 눈이 왜? 불편해요?”
그때 치료가 끝난 거 아니냔 뜻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새롭게 통증이 생겨 부랴부랴 내원한 걸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7… 7개월 전부터 통증이 시작돼서요. 외출할 때마다 아파서 눈을 뜰 수가 없어요.”
“흐음… 눈이 아프다…….”
“바늘로 찌르는 거 같아요.”
한 번 봅시다. 현미경을 가져온 의사가 렌즈를 돌렸다. 얼굴을 고정대에 밀어 넣으며 최대한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아파 피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제대로 진단 받지 못하면 다시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기에 필사적이었다. 관찰을 이어나가던 의사가 중얼거렸다.
“충혈이 심하네… 안압, 안저, 돌출은 정상 범위인데…….”
“아…….”
“보통은 괜찮아야 하는데…….”
마음에 금이 갔다. 내분비내과 의사가 했던 말이 트라우마처럼 피어올랐다. 이상하네. 왜 이러지?
끝나지 않는 신병스러움에 결국 울상을 지을 즈음, 의사가 말을 이었다.
“검사 몇 개 더 하고 오세요. 밖에 나가서 동의서 작성하고.”
안내해드리라는 뒷말에 보조(?) 의사가 날 밖으로 이끌었다. 하여 동의서는 왜 쓰냐고… 얼마나 위험하길래 수술도 아닌 검사가 서명까지 요하느냐고 묻지 못했다. 그저 하나도 이해 안 되는 문서에 1차로 놀라고 휙휙 돌아가는 검사에 두 번 놀랐을 뿐.
15년 전, 간경화와 부비동암을 진단받은 아빠가 병원만 가면 왜 그리도 버버거리는지 짜증났는데 나는 버버는커녕 백치처럼 아다다아다다거리고 있었다. 큰 병을 진단 받은 사람은 흰 가운만 보면 애기가 되는 것이다.
슬픈 어덜트 베이비는 잠시 뒤, 진료실 앞에 떨궈졌다. 끝나지 않는 진료와 검사의 굴레에 넋이라도 있고 없고 상태가 된 후였다. 관두고 싶다. 다 때려치우고 싶어… 입 밖으로 신음이 흘러나갈 무렵, 한 장면이 보였다. 너무 청량해서 환시처럼 보이는 것은 한숨과 눈물로 가득한 병원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기도 했다.
아기였다. 네 댓살 쯤 되었을까. 머리를 양쪽으로 예쁘게 묶은 여자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간호사 데스크 앞, 아이를 안은 엄마가 지친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삼십 대 초반 쯤 되었을까. 나보다 더 어린 것 같았다.
“30분 뒤가 수술이니까 병실 가셔서 옷 갈아 입히시고 준비하세요.”
“…….”
“얼음주머니 같은 준비물은 챙겨 오셨죠?”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눈에 문제가 있는 걸까. 과연 아이의 한쪽 눈이 부은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왼쪽 눈두덩이 아래로 쳐져 있었다.
‘...나도 왼쪽 눈이 나왔는데.’
작년 5월에 종료된 치료는 눈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래서 양안의 돌출도에 차이가 났지만 진행이 멈추고 정상 범위라서 종료한 거였다. 그러나 통증이 시작되었고, 다시 안병증의 공포를 안고 병원을 재방문한 나였다.
“수술은 그렇게 준비하면 되시고… 동의서에 싸인하셨죠?”
“네…….”
“세 시간 공복도요.”
데친 시금치처럼 축 늘어져 있던 아이 엄마가 각성한 건 그때였다. 잠잠했던 눈이 번듯 열렸다.
“한 시간 아니었어요?”
“네?”
“저는 한 시간이라고…….”
“공복이요? 세 시간이에요. 문자도 보내드렸는데?”
“저, 저는…….”
엄마가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문자를 찾으려는 듯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도 빠르게 물었다.
“밥 언제 먹었어요, 애기?”
“9시 쯤…….”
“지금이 12시니까 괜찮네요.”
“근데 젤리… 젤리를 먹었어요. 아까 먹고 싶다고 해서…….”
가만히 안겨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하리보 먹었어요!”
간만에 아는 내용이 나와 기쁜 듯 했지만 엄마의 표정은 더 처참해졌다.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