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영업이 끝난 뒤, 청소를 하고, 내일 장사 준비도 마치는 등 한숨을 돌리는데, 문이 열렸다. 중년 여인과 새초롬한 여자 아이였다. 영업 끝났어요, 라고 하려다 혹시? 하는 마음에 사장을 바라봤다. 과연 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왔어? 응, 늦었지? 늦긴... 그래, 친구 모녀인 모양이었다.
동시에 엄마 뒤에 서 있는 여자 아이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육체 노동을 하기엔, 뭐랄까... 힘이 없어 보였다. 왜 과잉보호란 말이 나왔는 알 것 같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회식을 준비했다.
잠시 뒤, 고기판이 벌어졌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갈비... 오랜만에 기름칠 좀 한다며 주방 이모 들이 히히덕거렸다. 장단을 맞춰줄 수 없었던 건 피곤해서였다. 빨리 집에나 가고 싶다며 물잔만 만지작거리는데, 맞은편에 앉은 사장 친구가 말했다.
"직원 분들이 인상이 좋으시네."
부처님처럼 곱게 접힌 눈가가 나와 주방이모 1, 2를 훑었다.
"선하실 거 같아."
내게 오래 머무는 눈길은 내가 딸과 함께 일할 사람이기 때문인 듯했다. 감사하단 뜻을 담아 묵례하자 사장 친구가 말을 이었다.
"서로 돕고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네에."
"우리 애가 아무것도 모르거든. 잘 좀 부탁해요."
"저도 마찬가진데요.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그럼 그럴까."
네, 라고 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사장 친구의 뜻에 부응하려던 찰나,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저 눈빛을. 미소는 똑같은데... 따사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뉘앙스도 마찬가진데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와닿았다. 의아해하던 난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 눈...'
눈이 이상했다. 반달로 접혀 있었지만 고양이 동공처럼 초점이 살아있다고나 할까. 뭔가 번득이는 듯도 했고, 형형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모쪼록 사이 좋게."
"아......"
"사이, 좋게."
마지막 '좋게' 라는 부분은 칼로 도마를 내려찍 듯 맹렬한 기세마저 느껴졌다. 순간, 그게 경고라는 걸 알았다. 너 내 딸 구박하면 가만 안 둬, 하는.
‘…뭐야.’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고 선방을 날리는 태도에 덜떠름해졌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벙벙한 내 표정을 알았는지, 사장 친구 딸이 급히 만류했다. 엄마, 또... 그 말에 사장 친구가 다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사장과 대화를 재개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난 찝찝했다.
왜 나한테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구박하기는 커녕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데. 내 마음도 컨트롤 못하는 주제에 남한테 훈수 둘 생각은 없었다. 사장 지인한테 텃세를 부릴 만큼 나사가 빠지지도 않았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말은 슬프게도 목구멍 안으로 수납되었다. 자리가 자리이기도 했고, 가타부타 말할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렇게 회식은 파했다.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찝찝함과 서러움에 은근슬쩍 여자 아이에게 말해볼까 했지만 그 아이는 이틀 나오고 말았다. 처음부터 별 의지가 없어 보였는데 역시나였다. 나 또한 너무 힘들어 보름 더 하고 관두었기에 에피소드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흩어졌던 기억은, 그러나 몇 달 전에 불현듯 떠올라 신경을 긁고 있었다. 아침마다 중얼거리는 원망 목록에는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도 있었다.
과거를 더듬는 사이, 동료와 무당의 대화는 무르익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싫어요. 두려워요. 제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고생이 많았죠?”
“정말 힘들어요.”
세상 모든 슬픔은 다 짊어진 듯한 표정에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앞으로 사람 가려서 잘 만나면 된다는 무당의 위로가 이어졌다. 동료 또한 눈물을 닦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미소지었다. 훌륭한 결말이었지만 왠지 씁쓸했다.
“쟤는 알까. 본인 엄마가 내게 상처를 줬다는 걸?”
모르겠지. 내가 아침마다 이를 북북 간다는 것도. 저주라고 말했지만 실은 힘이 없어 저주도 못했다. 그저 슬플 뿐이었다. 날 힘들게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럼에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했단 사실에. 내가 저주하는 건 사실 나 자신이었다.
그러자 이러고 있을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날 탓하느니 당장 그 동료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사상 최대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네가… 혹은 네 가족이 타인에게 상처 준 건 모르는구나. 그들이 너처럼 호소할 정도로 아프지 않아 참는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상처가 너무 커서 대거리 할 힘이 없거나, 사람마다 사정이 있으니까... 하면서 이해하는 척 넘어갈 수도 있는 건데. 별 그지 같은 걸로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 네가 남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5년 전.. 그것도 스쳐 지나간 인연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설사 찾아서 '네 엄마가...' 라고 말한다 해도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동료 어머니가 잘못한 거지, 동료가 잘못한 게 아니기도 했다.
모르겠다. 이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 할지. 다만 씁쓸한 생각 끝에 ‘나는?’ 이라고 자문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상처준 사람에 대해서 미안해하나? 유튜브에 나와서 상처 받았다며 눈물을 짜는 동료가 내게 상처 준 걸 모르듯이, 나 또한 의식하지 못하고 저지른 언행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했을까. 그걸 등한시한 채 내게 몹쓸짓을 한 이들만 원망하고 있던 게 아닐까. 남의 티끌을 탓하려면 내 눈에 박힌 들보부터 빼라고 하셨던 성경 말씀처럼.
그러자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것도 같았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일일이 찾아가 드잡이를 하는 것과 나 또한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줬을지 모를 상처를 떠올리며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것. 무엇이 더 옳고 바른 답인지 아직 모르지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