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주에 화가 많다. 불덩어리 자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에너지가 샘솟는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 간 데 없이 질주한달까. 생각도 마찬가지라서 한 번 사념에 빠지면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오로지 내 세계만 천착하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열심히 땅굴을 판 건. 목표물은 살면서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었다. 맘 같아선 땅굴 파는 곡괭이로 그네들 뚝배기를 깨버리고 싶었지만 소심한지라 저주만 퍼부었다.
“나한테 화풀이했던 직장 상사, 막말했던 동기, 왕따 시켰던 썅년들…….”
그 외에도 겁나 얻어터진 기억 들을 떠올리며 300살 마녀처럼 이를 갈았다.
“내가 잊을 거라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야. 이렇게 욕하는데 니들이 멀쩡하고 배겨?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저주를 퍼붓는 내가 아프게 되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도 됐다. 복수란 한 발은 내 무덤에, 다른 한 발은 상대의 무덤에 들여놓는다고 하질 않던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겁을 먹는 나 자신이 못마땅해 더욱 쌍심지를 킬 무렵, 요상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두려워요.
유튜브 영상에 달린 구절이었다. 썸네일을 보아하니 유명 연예인이 무당처럼 분해 사연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였다. 날 힘들게 한 것들을 저주하면서도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이 두렵다니, 너도 나와 마찬가지구나. 공감 백배의 마음으로 클릭했다. 그리고 무당 2가 되어 함께 상담을 해주려는 심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그때.
“엉?”
눈이 휘둥그레 열렸다. 신당으로 꾸며진 세트장에 들어선 사연자가 낯익었다.
“쟤는…….”
알바 동료였다. 5년 전 고깃집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얼굴마저 까먹은 건 아니었다.
“쟤가 왜 저기 나와…….”
어안이 벙벙했던 난 여유롭던 포즈를 풀고 고개를 주욱 내밀었다. 그 사이, 무당 앞에 앉은 동료가 자기 소개를 했다. 나이, 이름, 직업… 그래, 확실했다. 이윽고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됐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잘 한다고 하는데,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아요. 이상한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바바리맨, 성희롱범, 추파를 던진 직장 상사.. 제 인생은 왜 이럴까요?"
대답을 요하는 표정은 마라도 낀 것 같다는 걸 원하는 듯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는 살면서 기본 아냐? 뭐, 사람에 따라 받는 충격의 강도가 다르니 잠자코 지켜봤다.
“어떤 남자는 보자마자 손을 잡았어요.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시집오라고 한 적도 있고요.”
“그랬군요.”
“전 너무 두려워서…….”
동료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정말 괴로운 모양이었다. 난 고통에서조차 우월감을 느끼려는 교만을 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쟤도 힘들었겠구나. 역시 상처 한 두 개 쯤은 있는 거였어…
그러나 더 이어져야 하는 공감은 거기까지였다. 교만해져서가 아니었다. 동료가 했던 짓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료의 어머니가 내게 저지른 무례 때문에. 아침마다 벅벅 이를 가는 원수 들 중 동료의 어머니도 있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때는 바야흐로 5년 전. 나는 고깃집에서 알바를 했다. 앞선 일기에서 말했듯 신병스러움과 우울증이 동시에 덮쳐서 뭐라도 해 정신을 흐트러뜨리려던 때.
오후 3시에서 밤 10시까지 일했고, 돌아오면 너무 힘들어 쓰러지듯 잠들었다. 상념에 빠질 틈이 없단 뜻이었다. 그러나 악재도 함께였으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종종 내뺀 거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3일 일하고 관둔 직원 때문에 혼자 종종거리는데, 사장이 말했다.
"알바생 구했어, 잠뽀 씨."
불판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50대 중반 쯤 되는 여사장이 말을 이었다.
"내 친구 딸. 대학생인데, 내일부터 나올 거야."
"친구 분 딸이요?"
"응, 내가 말했었지? 과잉보호."
과잉보호?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납득했다. 어렵게 얻은 딸이라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한다고 했던가.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사람들의 접근도 차단한 탓에 사회성이 꽝이라고. 그 사회성마저 엄마가 키워준다며 혀를 차던 사장이 떠올랐다.
"몰라, 일 한 번 시켜보는 거 같은데, 내 앞이라면 괜찮다고 여겼나봐. 하여튼 극성이라니까. 신부 입장할 때도 같이 들어갈 태세야. 어쨌든 그래서 말인데, 오늘 밤에 회식할 수 있어?"
"회식이요?"
"친구가 쏜대. 꼭 남아 있어. 도망가지 말고."
알았지, 라고 다짐을 받은 사장이 총총 사라졌다. 도망가지 마? 친구가 쏜다고? 그제야 회식의 취지를 알 것 같았다. 사장 친구가 딸을 잘 봐달라 부탁하는 거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또 납득했다. 그래, 과잉보호라 하니까. 나는 다시 불판을 닦았다. 그을음이 얼마나 심한지 팔이 빠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