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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Feb 05. 2021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감수성도 적당하면 좋을 듯 하다


2019년 어느날, 아내가 말했다.

"결군에게 이제 공부 좀 시켜야겠어 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더라구"

"너 왜우니? 라고 하니까 공부 하기 싫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고 하네"

 아홉살 아들은 '공부'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막 외우는거? 막 계산해야 하는거? 뭔가 복잡해서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은데 생각해야 하는거? 결군은 과연 이런 사실들에 눈물이 나왔던 것일까.




 올해 3월이면 결군은 4학년으로서 첫 등교를 하게된다. 열한살....십대다....아침밥을 먹는데, 식탁에 널부러져 있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NEWTON 잡지를 펼쳐보더니, "아빠 십대는 몇살이야?" 라고 물어본다. "어, 열살부터 열아홉살까지"  "와~! 나도 십대다!" 이런다. 

 십대 아들과 함께 3학년 복습을 시작한지 2주가 지났다. 2019년 어느날, 공부라는 말에 대성통곡을 하던 녀석과의 수업을 말이다. 첫날의 충격파는 적지 않게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3학년 1학기과정에 있는 덧셈과 뺄셈의 서술형문제들의 풀이과정을 한문제도 쓰지 못했던 것, 글씨의 자음모음 쓰는 순서가 엉망인것, 무엇보다 맞춤법은 정말이지...말해 뭐하랴... 중요한 사실은 2주가 지난 지금,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머리속으로만 그리고 책으로만 알던 것 중 하나를  실천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결군의 초등학교 학습을 봐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회사에 출근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해야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출장에 결군의 학습을 봐준다? 가능한 부모들도 분명 있겠지만(회사시절, 내 친한 동갑내기 동료는 매일 밤 11시까지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했다. 이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대단한 것인지 난 지금 알았다)  나의 생활습관이나 정신상태를 보았을때 나는 거의 불가능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을 지금 이시간에  다시 오지 않을 결군의 초등학교 시절 학습을 봐주고 있다니... 그래... 나에게는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주말에 코딩과외를 해왔었고 퇴사를 하고 나서도 일주일에 이틀, 2개의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1시간 30분씩 파이썬을 가르치는데, 단 1분도 쉬지 않고 말을 해야한다. 왜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어떻게 이용될지를 설명해주고 나면 듣는 학생들의 이해도가 모두 달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설명을 재차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고작 1시간 30분인데, 끝나고 나면 학생들로부터 등뒤에 빨대 꽂혀 기를 쪽쪽 빨린 듯한 기분이 든다. 가르침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대단해보인다.



 결군과의 수업 중, 가장 하태하태! 가장 HOT한 시간은 수학시간이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무려 2시간을 한다. 그래 나도 안다. 이제 갓 4학년인 남자아이, 그리고 3학년까지 자신의 본분이 오직 노는 것으로만 생각하던 아이를 수학을 위해 2시간이나 책상앞에 앉혀놓는 것은 매우 잔인하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이런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 게다가 그게 부모라면 어떠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돈을 받고 다른 부모의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연히 응당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상황이 코딩과외학생이 아닌 내 아들 앞에서 펼쳐진다면 얘기가 다르다.(미안 애들아) 

 

 수학시간 2시간 중, 30분은 단순 연산(곱셈, 나눗셈) 나머지는 서술형 문제를 푼다. 서술형 문제를 통해 문제풀이과정을 확실하게 적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중시하는 나에게 단순연산은 일종의 도구일뿐이며 몸풀기이다. 어제 사건의 발단은 바로 이 몸풀기로 시작되었다.


 "508 나누기 5 는 ?    432 나누기 3은 ? 49 나누기 2 는 ? "


3학년1학기때 나누기는 두자리수를 한자리수로 나누는 것, 2학기 때는 세자리수를 한자리수로 나누는 나눗셈을 배운다. 그래서 두자리수, 세자리수를 번갈아가며 몸풀기를 한다. 세자리수 두자리수 잘 풀었다. 기본연산은 잘 푸는 듯 했다. 그런데 뭐지?... 


"17 나누기 3은 ?"

".............."


 결군이 순간 풀지를 못한다. 뭐지? 당황한 나는 빤히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는 결군을 보며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 17 나누기 3! " 아니 이건 물음이 아니라 외침이었다. 결군은 날 보더니 더 침묵했다. 외침은 짜증이 되었고 짜증은 화가 되었다.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결군은 초조한 상태로 너무나도 쉬운 저 나누기 연산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지금와서 생각하면 결군은 감수성이 매우매우 예민하여 조금이라도 상처받거나 긴장하면 잘 하던것도 못하는 것 같다. 뭐 나도 그렇지 않던가?? )  결군의 눈동자가 조금씩 조금씩 눈물로 차오르고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여기서 멈추고 잠시 쉬는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결군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 차 있었고,


"결아 기분이 안좋아?"


윽박만 지르던 아빠가 자신의 기분에 대해 물어보는 이 한마디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지는걸 보니 참.....가슴 한켠이 뜨거웠다. 나의 눈가가 촉촉했는지.. 결군이 울음을 잠시 멈추고 물었다.


"아빠, 울어?"

"아니, 안 우는데?"

"아빠, 우는 건 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빠, 잘 우는데? 영화 볼때 눈물 똑똑 떨어지는 거 본적없니?"

"응...그런데 엄마는 우는 거 본적있어...그것도 펑펑 우는 거...."

"어??? 그래??? 그게 언제지??"

"그게 ....언제....냐.....면.....할아버지...........흑.....돌...아....가셨을때.......흑......."


 아....감수성이 느무느무 풍부한 결군.....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엄마가 펑펑 우는 걸 본적있다는 말을 하려다가 본인이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당황할 정도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 아빠에게 받았던 설움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기폭제가 되어 크게 폭발해 버린 것이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순간 나도 울컥해서 잠시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결군을 번쩍 들어올려 꼬옥 안아주었다. 짜증내는 아빠로 인해 긴장을 해서인지 결군의 내복에 땀냄새가 진하게 베어있었는데 달콤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더욱 꼬옥 끌어안아주었는데 결군도 끌어안아준다고 힘을 준것이 나의 목을 졸라버리고 말았다. 켁켁.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수학문제풀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펑펑 울다가 아빠랑 껴안고 펑펑울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자" 라고 말했다. 약 5분 후, 결군은 언제 그랬냐는듯 콧노래를 부르며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나는 결군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남은 수업 접고, 영화를 한 편 보자고 했다. 톰 행크스의 캐스트 어웨이, 

"어! 윌슨이다! 쟤 우리 교과서에 나와...큭큭큭큭!"

아주 신이 나게 영화를 즐기는 결군. 

 왠지.....뭔가.....당한것 같은 이 느낌.....     

아...저 종이쪼가리는 나노단위로 쪼개져있어 정말 치우기가 힘들다..

<결이고운가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결이고운가sweetgy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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