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나라에 흐릿한 경계선이 그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치카~치카~'
화장실 앞 세면대에서 이를 닦던 결군이 슬며시 화장실 문을 닫는다. 볼일을 보러 들어간 아빠가 화장실 문을 열어둔 탓이다. 순간 아빠는 '아 차!' 하며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열 살이 넘으면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행동들이지만, 몸에 밴 습관들이 말을 듣지를 않는다. 작년 말부터인가, 결군이 열 살에서 열한 살로 거의 다 와갈 때쯤부터였을 거다. 팬티만 입고 거실을 활보하는 아빠를 보는 결군의 시선이 뭔가 달라졌음을 느낀 것과 볼일 보며 열어놓은 아빠의 화장실 문을 결군이 슬며시 닫기 시작한 것 말이다.
"엄마! 문 좀 닫고 옷 갈아입어!"
"엄마! 화장실 문 좀 닫아!"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절 난, 엄마가 문을 열고 볼일을 보고 옷을 갈아입을 때면 짜증 섞인 감정으로 소리치며 문을 '쾅' 닫고는 했다. 그러면 엄마는 별일 아닌 듯 '알았어' 하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머리에 악마 같은 빨간 뿔을 달고 씩씩대는 아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별생각 없이 해 오던 일상의 동작들이 당신의 자식으로부터 눈초리를 받기 시작할 줄은 엄마는 예상했을까. 엄마 젖 먹고 알몸으로 집안에서 활보하던 녀석이, 엄마의 몸과 생리현상을 보는 것을 불편해하는 상황을 직면한 엄마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은 은연중 알았겠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아들의 불편한 시선'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그 뭔가 설명하기 힘든 감정조차 '꿀꺽'하고 평소처럼 삼켜버렸겠지.
여전히 목욕 후 홀딱 벗고 아빠 엄마 앞에서 춤을 추고는 하는 결군이지만 나는 느낀다. 서로의 나라를 경계 없이 들락날락하며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흐릿한 경계선 하나가 그려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화장실 문을 슬며시 닫는 그 모습에서 나는 느낀다. 느낌을 주던 존재에서 그 느낌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독립된 존재이지만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싸우고 성장해가는 아이에 대한 흐뭇함과 거뭇거뭇 한 털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싸운다. '아빠,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인 거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아 왠지 서글퍼지기도 하는 좀 이상한 감정이다. 온 정신과 육체를 쏟으며 먹고 살 걱정 외에는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것 같던 울 엄마도, 그때 내가 소리치기 시작한 그 순간에 나와 같은 감정들이 요동쳤을까. 문득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한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누구도 가르쳐줄 수도 없고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