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Feb 04. 2021

집을 짓게 된 결정적 트리거, 층간소음

마흔의 피로감과 마당있는 주택에 대한 염원이 절정에 이를때즈음이었다. 

적지 않은 회사들 속에는 반복되는 야근, 직장 내 눈 뜨고 보기 힘든 모략질과 해꼬지, 나이듦을 이용한 보이지 않는 협박이  독버섯처럼 퍼져있다. 사무실 저변에 깔려있는 저 암울한 공기를 일주일 중 5일을 들여마시다가 단비같이 찾아오는 주말이면 정말이지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주말이면 또 좋지 아니한가. 상온에서 하루동안 방치한 초록 샐러리의 풀죽은 잎파리처럼 추욱~ 늘어져있지만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유치원 아들이 '놀러가자' 조르면 초인적인 힘으로 늘어진 몸을 일으켜 초록초록한 외곽의 어느곳으로 차를 몰고 갔다. 경기도 외곽으로 들어서면 낮은 산 중턱을 깍아만든 전원주택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구경하러 근처를 어슬렁대다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집주인의 불편한 시선에 발길을 돌리고는 했다. 마흔의 피로감과 마당있는 주택에 대한 염원이 절정에 이를때즈음,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경기도 외곽 어딘가에서 주택지를 분양한다는 이메일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받은 이 이메일 한통이 결이고운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실 결이고운가 시작의 결정적인 트리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층간소음.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집을 지은 이유가 이름모를 유명(?) 전원주택 잡지의 한켠에 실린 '우리가 집을 지은 이유' 라는 글처럼 마흔의 피로, 삶의 의미를 뒤돌아보기, 마당있는 주택에 대한 오랜 염원, 등등 철학적이고 멋들어진 이유가 아닌 층간소음이라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결군의 수학공부를 지도하다가 인터넷을 열었다.(공부 시작한지 3주인데 이것도 짬밥인가, 이제 가르치는 데에 요령이 생겨 내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가수 하림의 층간소음 기사가 눈에 띄었다. 


"위 층 어딘가에서 안마의자를톱 샀나 보다. 오전에 잠을 자고 있는데, 두두두두...층간소음은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싫을 것"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라는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분노와 욕찌꺼리를 신기에 가까운 어떤 에너지를 발휘해 잠재우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글을 작성하고 업로드 버튼을 눌렀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예전에 그랬으니까.



 우리는 양평에 결이고운가를 짓기 전, 경기도 산본의 한 작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었다. 수리산과 도서관이 가까워 결군과 함께 오랜 시간을 이 아파트에서 지낼 수 있을거라는 희망찬 생각들로 가득했다. 사상 초유의(?) 리모델링비를 투입해 창호, 바닥, 욕실, 천장(서까래도 붙임) 등등 을 새로 했고 아내는 혼신의 열정을 투입하여 씽크대도 셀프제작하고 문짝도 톱질하고 샌딩하고 페인트칠하여 힘을 더했다. 완성하고 나니 정말 이 집은 우리의 마지막 집일 것만 같았다. 아내가 블로그에 올린 리모델링 과정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연일 오르고 잡지사, 방송국에서 연락도 오고 했으니 이 집에 대한 애정을 말해 무엇하랴.



 어느 때부터일까. '빡!' (그 소리를 어떻게 단어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하고 단발마같은 비명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봤다. 새벽 5시, 어떨때는 새벽 6시. 저녁형 인간인 우리들에게 아침잠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이게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덜너덜해질것이고 얼굴은 바싹마른 파뿌리처럼 푸석푸석해질 것이 분명하다.  욕실쪽으로부터 들려오는 표현 할 수 없는 그 소리는 연일 계속되었다. 예전부터 계속들려오던 소리였는데 지금까지 못들었을 수도 있다. 한 번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이어플러그도 꽂아보고 자기 최면도 걸어보고 별 짓을 다했지만 내 귓속에 그 소리는 이미 박제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새벽에 윗집 사람이 샤워를 마친 후 샤워기 헤드를 쾅하고 내려놓는 소리였다. 어이가 뺨을 때렸다.



 아파트 값은 미쳐 날뛰고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인한 끔찍한 사건들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는 괴랄한 현상이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건 옛날부터 잔인한 고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샤워기 헤드로 연일 고문을 받고 있었다. 샤워기 헤드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뺨을 후려친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아내가 윗 층으로 올라가 쪽지를 붙혔다. 샤워기만 조심스레 다루어달라고.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참 많다. 샤워기 내려치는 소리는 새벽이면 고운 심장박동소리를 내며 고이 잠들어있어야 할 우리를 매번 벌렁벌렁거리도록 만들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것이 결이고운가를 짓게 된 결정적 트리거 한방이었다. 천문학적인(?) 리모델링 비용과 수리산 절경을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 한방. 이 시기에 우리는 분양 이메일을 받게 된 것이고 뭐에 홀린 듯 차를 타고 양평에 그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분양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것이다. 그래 그렇게 된것이었다. 흠... 결군 수학공부 가르치다 본 하림님의 층간소음 기사가 이곳까지 이끌었구나.


주방 앞 벤치에 앉아 아침햇볕을 쬐는 것은 내 행복 중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섯 살의 쿠폰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