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온전하게 우리 집이 되는 날, 아내는 마이크를 잡았다.
"39만원을 상환하시겠습니까?"
"전액상환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 잔금을 나타내는 '영원'이라는 글자가(한글로 영원이라고 적혀있다) 마치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남은 대출잔금을 상환하자 주택금융공사로부터 근저당 설정권을 말소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지금까지 근저당 설정만 해봤지 말소는 해본적이 없었다. 말소라는 침침한 단어가 이리 반가울 수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눈물이 나올거 같다고 했다. 엄마의 그 맘을 잘 알것 같다. 양평의 변두리 시골 마을에 지은 내 집이 온전하게 내 집이 되었다.
2004년 분당 야탑의 원룸빌라 반지하에서부터 시작된 아내와의 대출인생, 바로 오늘 18년여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 나이 마흔 다섯살이다. 원룸에서 월세를 살아도,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아도, 내 아파트를 가져도, 내 집을 지어도, 이놈의 대출은 항상 따라다녔다. 이 놈은 회사가 죽을만큼 싫어도 연체라는 칼을 들이밀며 꾸역꾸역 나를 그곳으로 밀어넣었었다. 두려움의 칼날 앞에서 자유로운 생각들은 날개를 펴기 힘들었다. 두려움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퇴사를 하고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상상속에서만 그렸던 대출없는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맘이 주체없이 솟구친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jigupin)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었다. '적당함' 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내와 나의 '적당함'의 크기는 아마도 평균이하일 거라 생각했다. 적당함으로 잘 살아보려는 우리에게 대출은 참 걸리적거리는 놈이었다. 대출이 없는 온전한 내 집 한채만 있으면 적당히 벌며 욕심내지 않고 잘 살수 있을것만 같았다. 영끌이 유행처럼 퍼지고 슬기로운대출로 부자되라는 유튜버들이 득세하지만 아내와 내게 대출은 지금 현재의 삶을 옥죄이는 족쇄일뿐이었다.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에 족쇄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다.
대출이 없는 삶은 어떨까?
족쇄에서 풀린 우리의 몸과 마음은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집걱정없고 다달이 원리금이 빠져나가지 않는 일상은 어떨까?
아내와 나는 그때 그때 모은 돈으로 대출 일부상환을 할때면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마흔 다섯에 그 느낌을 만끽하는 중이다.
바로 오늘,
대출 없는 삶,
저당잡히지 않은 내집에서 사는 1일차다.
대출없는 내집이 있다면
생각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벌며 잘 살 수 있을까.
아둥바둥 살며 다시 저당잡히게 될까.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알수없는 인생이다.
눈 앞에 당장 뭔가 일어나진 않지만
잔잔하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