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적당한 긴장은 청량한 바람을 맞는것과 같다
데크바닥에 질펀하게 누워있는 여름이의 털이 가라앉아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잠을 자던 여름이의 배는 오르락 내리락하며 털 한올한올이 살랑살랑 춤을 췄었다.
비가 내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곱디 고운 물입자가 여름이의 털을 가라앉힌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여름이의 털 뿐만이 아니다.
비는 쉬지 않고 텐션을 유지하며 바짝 서 있는 내 머리와 마음을 가라앉혀주기도 한다.
약 3년이 지난 지금, 긴장은 여전히 내 머리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번 달로, 나는 퇴사 아니 직장을 다니지 않게 된지 3년이 된다.
1년정도 지났을 때 까지만 해도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고도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더니만
3년이 넘어가니 결국에는 믿겨진다.
역시 사람은 적응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이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책(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이런 말이 있었다.
회사에서 개발자를 접고 품질관리일을 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뭘 해야할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인생이 재미없다는 한 고등학생에게 하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 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
일을 해보니 너무나 공감이 되고 맞는 말이고 당연해서 '풋' 하고 실소가 터져 나오는 말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 하다. 일의 환경은 내가 일을 좋아하는 감정보다 더 우위에 있다. 일의 환경이 즐겁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이 싫어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직장을 옮겨다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니던가.
어딜가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반복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말이다.
직장인의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직업인의 흙길을 걷고 있는 이유를 저 소설책의 어떤 등장인물이 말해준다.
어쩌면 너무 웃퍼서 나온 실소일지도 모른다.
나도 직장에서 하는 일이 좋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개발자는 좋아서 개발일을 시작했을거라 감히 예상해본다. 좋아하지 않으면 개발일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발자들은 공감해주리라고 본다. 직장을 몇 번 옮겨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재밌어서 일을 열심히 하면 결과가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일이 더 온다는 것이다. 일의 무게가 한쪽으로 치우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게 쌓여간다. 개발자의 순수했던 일에 대한 호감은 알량한 자존심으로 변질되어갔고 야근으로 이어져 일과 가정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내 머릿속 긴장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으며 어느 직장을 가던 존재했던 정치꾼들의 마지막 일갈은 좋아했던 직장인 개발자의 길을 포기하는데에 적지않은 기제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살 적, 직업인의 삶을 상상하고는 했다. 가르치는 즐거움, 적당한 노동과 그에 맞는 수입, 회사안에서보다 거의 대부분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 이후, 3년 여동안 양평에서 코딩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나는 긴장속에서 살고 있다. 현재 운영중인 클래스들이 폐강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생각만큼 클래스가 늘어나지 않는 것에 고민을 한다.
일의 환경이 달라진다 한들, 직장인도 직업인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직업인으로 사는 것도, 긴장의 연속인 건 크게 다르지 않다.
긴장이 나쁜것만은 아니다. 긴장에도 정도가 있으며 임계치만 넘지 않으면 된다. 뭐든지 과한게 문제다.
여름이의 날 선 털처럼 인생에서 적당한 긴장은 머릿속에 청량한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적당히 게으르게 살다가 나태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
내게 지금의 긴장은 그러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