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꿈,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었다.
마흔의 문턱에서 대책 없이 퇴사를 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 생활비로 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우리 가족은 69일 동안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네덜란드에서 한 달 그리고 스위스에서 한 달을 살았다. 이러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아내가 내게 건네준 한마디뿐이다.
"1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했잖아. 이제 좀 쉬어도 괜찮아"
최고의 오로라 스팟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인수인계가 한창이던 작년 9월의 어느 날 오후였다. 점심식사 후, 나른함 그리고 무료함에 영혼을 빼앗긴 일부 동료들은 축 늘어진 육신만이 바삐 코딩을 이어가고 있었다. '탁탁탁' 영혼 없는 키보드 소리는 사무실에 울리는 건조한 음악같았다. 집중해서 일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였다. 나 역시 그중에 한 사람으로서 인수인계 문서작성은 뒷전인 채 인터넷 서핑에 열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는 기사 제목들을 빠르게 훑고 있는 나의 눈에 섬광처럼 빛나는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최고의 오로라 스팟 TOP10'
다섯 살 아이와 가 볼만한 북극권, 스웨덴 키루나
어둠과 눈 그리고 호수와 어우러진 숨 막히는 오로라의 장관을 담은 인생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1위는 역시 캐나다의 옐로우나이프. 2위는 기억나진 않지만 3위는 노르웨이의 트롬쇠였던 것 같다. 그리고 4위가 스웨덴의 키루나 그리고 아비스코 국립공원.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이미 다녀온 몇 안 되는 한국인들의 포스팅에 의하면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이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은 아이들과 같이 가진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한 달 살이를 하는 동안 4일 정도의 시간 동안 다녀올 만한 곳이었고 10월 중에도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았으며 북극권임에도 그리 혹독하게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키루나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끝없는 서핑을 계속했다. 이미 이날의 인수인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정말 원하는 것만큼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
스톡홀름에서 하루를 보내고 로컬 비행기를 이용해서 키루나까지 갈 수 있었다. 키루나에서 3박을 하기로 했다. 세 번의 밤을 맞이하는 동안 우리에게 오로라가 다녀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용 가능한 스케줄을 확인한 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우리 오로라 보고 오자! 스웨덴 키루나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아!"
"우와!!!! 정말??!!! 근데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 괜찮겠어?"
맞다. 돈이 문제였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4박 5일간의 오로라 여행 비용이 네덜란드에서 한달살이 비용의 60% 정도에 육박했다.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하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가자, 비용은 갔다 와서 생각하자. 생각해봤는데 지금 아니면 오로라 다시는 못 보러 갈 거 같아. 정말 원했던 것들만큼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 오로라만 그런가, 뭐,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이와 같은 결정의 순간이 적잖이 올 거야.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 그때가 되면 지금의 선택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그래, 오빠 맘대로 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 후, 언제쯤 다시 오로라를 보러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못 볼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오로라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했다.
아들이 오로라를 기억할까?
이렇게 네덜란드 한달살이, 스위스 한달살이의 사이에는 오로라 여정이 살포시 자리하게 되었다. 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호기심 많은 다섯 살 아들에게 물었다.
"결아, 우리 오로라도 보러 갈 거야, 오로라는 북극에서만 볼 수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북극을 가는 거야! 꿈만 같아!"
"우와!! 아빠! 그럼 우리 북극곰도 보는 거야? 지구가 아파서 북극곰이 없으면 어떡하지?"
"아, 거긴 북극권이긴 한데 빙하가 없어서 북극곰은 볼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밤하늘에서 초록빛이 춤을 추는 오로라를 볼 수 있어!"
아들은 오로라엔 관심 없었다. 하긴 오로라를 이때 처음으로 들었으니 관심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그토록 맞이하고 싶던 순간을 다섯 살 아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에 흥분했다. 엄마, 아빠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들이 오로라를 기억할까?"
"오로라를 기억하든 못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들의 마음 어딘가엔 자리하고 있을 테니까, 엄마, 아빠가 최고로 행복해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을 말이야.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조금씩 조금씩 아들에게 선한 영향을 줄거라 생각해. 그거면 된 거야."
설렘은 마법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로라 여행의 설렘을 간직한 채 69일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을 떠났다. 네덜란드 한달살이 이틀 만에 도둑에게 집을 털리는 대형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우리의 오로라 여행은 접을 수 없었다. 한달살이가 시작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이른 새벽, 우리 가족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짧은 비행으로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북유럽 땅이 처음이 아니었던 나와는 달리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아내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은 어디에서 무엇을 보던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마법을 보여 주었다. 오로라 여정의 일부였던 스톡홀름에서 보낸 그 하루는 하루 이상의 즐거움을 우리 가족에게 선물했다.
가라앉고 있는 오로라 스팟, 키루나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키루나의 첫 느낌은 황량했다. 그렇기도 했던 것이 이곳은 노르웨이 나르비크까지 철광석을 실어다 나르는 광산이 대부분인 마을이었다. 땅속에서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캐낸 결과, 땅은 가라앉고 있다고 했고 수년 안에 마을 전체가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키루나 최고의 호텔 스칸딕 페럼
다섯 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호텔비가 많이 든다. 적당한 비용의 호텔을 고르다 보면 다섯 살 아이가 눈에 어른거리곤 해서 항상 예상보다 훨씬 웃도는 가격의 호텔을 선택하곤 했다. 키루나에서의 숙소는 '스칸딕 페럼(scandic ferrum)'이었다. 키루나에서 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좋고 무엇보다 호텔 옥상이 탁 틔여 있어 오로라를 보기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면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먹을 것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다.
"오로라 보러 왔는데, 우리가 3박을 할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을까요? 오늘, 내일 날씨는 어떤가요?"
"그건 아무도 몰라, 오로라 기상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도 있는데 정확도가 높진 않아. 설사 오로라가 일어난다고 해도 구름이 가리면 못 보니까. 이곳의 구름 이동은 굉장히 빠르거든. 하루를 묶던 한 달을 묶던 오로라를 보는 건 '그 사람의 운' 이야."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오직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못 보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다. 하늘을 보았다. 첫날 오후 5시, 하늘의 구름은 엄청난 두께로 낮게 깔려있었다.
저녁 8시쯤 되었을까,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예감이 좋았다. 우리는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반짝반짝 별이 보이는 것으로 봐선 구름이 걷힌 것이 분명했다. 까만 하늘에 하얀 점 하나가 보였다. 구름인지 무엇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구름이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특이했다. 그 점은 이제 점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져 버렸다. 마치 마른 나뭇잎에 불을 붙였을 때 자그마한 불씨가 조금씩 큰 불꽃을 만들어가듯 그 점은 커다란 불꽃과 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급기야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색에서 초록색을 약간 띈 모습으로 하늘의 한편을 점령하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에 엷게 가려진 별빛은 더욱 아름다운 빛을 선사했다. 우리 가족은 이 과정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오로라를 보는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꿈꾸던 오로라를 함께 보고 있었음에도 이 순간만큼은 고요했다. 정적을 깨뜨린 건 아내의 외침이었다.
"오빠! 오로라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어, 이쪽에도, 저 산 쪽에도!"
우리는 얼굴을 맞대었다.
우리의 시선은 하나가 되었고
그 시선은 오로라를 향해 있었다.
오로라는 한번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곳저곳에서 거침없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30초 정도면 하나의 작은 점에서 하늘을 뒤덮은 채 바람에 휘날리는 커다란 스카프를 만들어내었다. 장관이었다. 이 모습을 어찌 활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미천한 필력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아빠, 목도리 같아!"
아들도 신기한 듯 한참을 중얼거렸다. 난 이 광경을 담아보려 카메라를 세팅하고 찍어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허둥대는 내게 아내가 말을 건넸다.
"오빠, 한 두장 찍었잖아, 그걸로 됐어, 이제 카메라에 담지 말고 그냥 눈에 담아, 즐기는 거야! 지금의 오로라가 우리의 마지막 오로라 일수도 있잖아, 마음껏 담아놓는 거야!"
그랬다. 오로라는 매 순간 모습을 다르게 하며 춤을 추어대는데 나는 카메라만 매만지고 있었다. 한 순간도 내 눈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들을 번쩍 안아 올리고는 아들의 볼에 내볼을 맞대고 오로라 댄싱을 감상했다. 아들이 향한 시선과 내가 향한 시선이 같은 곳을 향할 수 있도록 얼굴을 바짝 갖다 대었다. 그러자, 아내도 옆으로 다가와 얼굴을 맞대고 우리의 시선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바짝 붙어 서서 하늘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오로라 부대의 춤사위를 함께 느꼈다.
다섯 살 아이와 오로라를 본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꿈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겪고 있는 또는 겪게 될 모든 일들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래 전의 꿈이었던 그래서 죽기 전에 이루어지기 힘들것이라 생각했던 오로라를 아내와 그리고 다섯 살 아들과 함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에든 '꿈같았다'라는 표현을 마음껏 남발하고 싶었다.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삶의 볼륨을 줄이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사소함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야겠다고 아내와 아들 앞에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내 그리고 다섯 살 아들과 그토록 꿈꾸었던 오로라를 본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꿈,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