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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오줌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

by 백수광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무언가를 들고 진지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속옷을 벗었다. 성기와 음낭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성기를 보여줄 다른 사람은 없어 보인다.

설령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남자의 관심은 들고 있는 무언가에 있다.

그러니 바바리맨은 아니다.

무언가를 성기에 가져다 대는 순간 실험실에 비명이 울려 퍼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의 신음이 사그라들 즈음 다시 한번 음낭에 무언가를 갖다 대었다.

성기에 이어 음낭을 무언가로 자극한다. 특이한 자위 방법을 개발한 마조히스트일까.

가만히 보면 남자의 입술도 심상치 않다. 들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 입술이 부어있다.

그가 들고 있는 무언가의 정체는 양봉꿀벌이다.

양봉꿀벌에 대한 이상성욕이 있는 남자도 아니다. 양봉꿀벌과 키스를 나누었다면 입술이 저리 부어있지는 않을 터이다. 양봉꿀벌의 침으로 성기와 음낭을 자극할 때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린 남자는 양봉꿀벌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적는 대신 숫자를 노트에 적는다.


마이클 L. 스미스는 6주 동안 한 부위에 세 번씩, 총 75번 양봉꿀벌 침을 자신의 몸에 놓아 그 통증을 기록한 연구로 2015년 이그노벨 생리학상과 곤충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양봉꿀벌에 대한 스미스의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연구자의 애정이었다.


1Laird-300x225.png 양봉꿀벌을 애정하는 곤충 생물학자 마이클 L. 스미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이다.

‘다시 할 수도 없고 다시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운 연구자에게 시상한다. 수상이 결정되면 수상자에게 상을 받을지를 물어보고 이에 동의하면 수상이 최종 결정된다.

노벨상 시상 전에 발표되는 이그노벨상은 기기묘묘한 과학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곤충 성애자, 아니 곤충 생물학자 마이클 L. 스미스의 사례는 평범할 정도로 흥미롭고 웃긴 연구가 많다.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 는 이 이그노벨상을 다루는 책이다.

과학자들이 재미있자는 목적으로만 무모하고 웃긴 연구를 할 리 없다.

웃긴 연구를 통해 과학의 에센스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이 연구들은 ‘웃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구 내용도 놀랍다.

유체역학과 생물학의 교차점에 있는 문제를 연구하는 생체유체역학 중 대표적인 두 가지 유체를 다루는 연구, 쉽게 말해 똥과 오줌 연구를 예로 들어보겠다.

똥과 오줌 같은 지저분한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에 도달한다.

애초에 똥과 오줌을 왜 연구하는지도 의문인 독자에게 연구의 동기와 의미, 그리고 파장까지 자세히 설명한다.


데이비드 후 교수는 동물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생체역학 분야의 권위자로 신생아인 아들의 기저귀를 갈다 오줌발을 직격으로 맞는 체험을 한다.

그는 화를 참기 위해 아들이 오줌을 모두 쏟아부은 시간인 21초까지 시간을 세어보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며 자신의 소변 시간과 비교를 했다.

후 교수는 신생아와 성인의 소변량이 다른데 소변에 걸리는 시간이 2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고속촬영 카메라와 영상 자료로 각종 동물의 소변 자료를 모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의 모든 포유동물이 방광을 비우는 시간은 21±13초였다. 몸집이 큰 동물은 긴 요도를 통과하며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작은 동물은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그만큼 적게 싼다.


그래서 코끼리를 비롯한 포유동물은 그 크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요도의 길이와 지름의 비율이 일정해 방광을 비우는 시간은 21초로 비슷하다. 포유동물은 어째서 배뇨 시간이 21초가 걸리게 진화했을까. 후 교수는 그 이유를 생존에서 찾는다. 용변 시간은 가능하면 짧아야 생존에 유리하다. 그리고 이 배뇨 시간이 21초보다 짧으면 기생충이나 세균 감염의 위험이 커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21초는 포유동물이 생존과 감염의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추측이다.

후 교수와 퍼트리샤 양이 공저한 〈배뇨 시간은 신체 크기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논문은 각종 동물의 선명하고 화려한 오줌 사진과 함께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2015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퍼트리샤 양은 자연스럽게 대변 연구에 열중했다.

학회에서 청중 한명이 질문한 웜뱃의 똥이 퍼트리샤 양을 새로운 연구로 이끌었다.


t6vuve6floba1.jpg 네모난 웜뱃의 똥


웜뱃의 똥은 보다시피 네모나다. 네모난 똥은 일반적이지 않다.

웜뱃이 어째서 네모난 똥을 누는지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적해 나간다.


똥과 오줌의 연구는 단순히 웃긴 연구가 아니다. 많은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머리를 모으게 한다. 이 똥이 그 똥이 맞느냐는 확인에서부터 실용적인 해결법의 질문에 이르기까지 쓰임새는 다양하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시간이 21초에 크게 어긋난다면 건강을 의심해 보길 권한다.


똥과 오줌, 아니 품위 있게 말해 생체유체역학 연구 이외에도 책에 소개되는 다른 연구들 역시 이러한 과학자들의 호기심 발로에서 출발하고 있다. 호기심과 범상치 않은 행동이 이그노벨상 수상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었다. 연구자들은 모두 웃긴 연구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연구에 대해 이해할수록 그들의 끈기와 열정, 호기심에 감탄하게 된다. 우습게 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과학적 사고와 탐구심의 가치가 빛을 발해 과학의 의미와 방향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안그레 가임은 10년 후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의 단골 수상 국가로 알려진 일본은 17년 연속으로 이그노벨상을 배출했다.

이그노벨상의 연구들은 노벨상의 연구나 다른 거창한 연구들에 비해 별것 아닌 연구로 보인다. 양봉꿀벌 침에 대한 자극 실험이나 생체유체역학의 결과, 욕을 뱉으면 통증이 나아지는 연구, 감자칩을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이 그렇다.


안드레 가임이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메인 프로젝트와 관계없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성급한 결과를 쫓는 세상에서 느리고 엉뚱한 연구야말로 어쩌면 인류를 바꿀 연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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