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모타 이누히코의《계엄》
2024년 12월 3일 밤이었다.
한 단어가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계엄.
1970년대를 다룬 영화나 후일담 소설, 영상 매체 등에서나 듣던 단어였다.
그 계엄을 이 땅에 선포했다. 국민이 뽑은 최고 통수권자의 선포였다.
처음에는 거짓말이나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SNS의 반응과 스마트폰에 뜨는 뉴스가 심상치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국민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내린 이유를 밝히며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동의할 수 없는 사유였다.
사람들은 비상계엄의 사유를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하기 위해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모여들었다.
늦은 시간에 선포된 뜬금없는 계엄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엄을 해제 못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하다.
정치인을 비판하고 내 의사에 의해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성취한 대가였다.
계엄선포 두 달 전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와도 연관이 있었다. 한강의 작품 중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사건의 유족들 역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감격했고, 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에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소식이 두 달 전이었다. 그런데 계엄이라니.
국회에 헬기가 착륙했다. 장갑차가 시내에 들어왔다. 유언비어도 돌았다.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들었다. 707 특수부대원들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했다.
생중계를 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계엄을 어서 해제해야 한다.
여당 대표도 계엄 해제에 합류했다.
본회의장 밖에서는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와 의원들을 끄집어낼 것 같았다.
국회의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의원들과 생중계로 지켜보는 시민들은 답답했으나 국회의장은 절차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국회의장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4일 01시 국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가 가결되었다.
4일 04시 30분 대통령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하고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6시간 만에 해제된 계엄은 45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지만 계엄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계엄》은 그 45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자전 소설이다.
‘나’, 세노 아키오는 1979년 서울에 일본어 강사로 부임하게 된다. 일본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 비친 79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순진하지만 약간은 경박한’ 캐릭터이며 〈밤 끝으로의 여행〉의 저자 셀린이 과자 이름인 줄 아는 행복하면서 무식한 학생이다. 그러나 평범한 일본인은 아니다.
비행기 창문으로 후지산이 눈에 들어왔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산은 대지에 뚫린 구멍일 뿐이었다. 만약 대지가 피부병으로 뒤덮였다고 한다면, 후지산은 고름이 차서 부풀고 열이 나서 일부가 터져 함몰한 환부처럼 보였다. 이것이 일본이다. 나는 이 그로테스크한 대지의 함몰을 성소로 여기는 사회로부터 이제 막 이탈하려는 참이다.
《계엄》 中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의 눈에 내려다보이는 일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대지의 함몰을 성소로 여기는 사회로부터 이탈한’ 젊은이가 접하는 한국은 조국을 묘사할 때와 달리 호의적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나쁜 편견이나 폄하도 없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표현은 그의 주변인만이 한다.
일본에서 미리 조사한 한국은 ‘군사 독재 정권 하에 있으며 얼마나 부조리하고 공포로 가득 찬 곳’인지 알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한국행을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한 그에게 사람들은 친절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어로 공부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 옛 시절을 그리운 듯 떠올리고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를 통해 지식욕을 채우고자 한다.
때로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보쿠짱에 의하면 내가 서울에 도착하기 바로 전, 촌상룡(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이름 독음)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화제가 되어 여러 종류 번역본이 등장했다고 한다. 당국이 외설 문서로 발매 금지하자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결과를 낳아 더 많은 해적판이 나돌았다. 무엇보다 에로티시즘을 기대한 대다수 독자는 실망해 소설을 읽다 도중에 던져 버렸다고.
같은 서적 中
일본인을 상대로 적의를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갈등을 벗어난다.
‘나’는 이토 히로부미도 ‘나쁜 놈’이라 말하고 천황 히로히토도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 단언하니 시비를 거는 사람도 할 말이 없다.
독도에 대한 그의 심드렁한 태도도 한몫한다. 한국인은 ‘독도를 빼앗기고 분해하는 일본인을 보고 싶어 한다. 나한테 도무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독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아 2년 반의 청춘을 희생한 한국인 홍기철이 오히려 독도는 시시한 영토 문제라고 말한다. 화자가 독도에 관심이 있거나 우익이라면 이러한 부분은 문제가 되겠지만 한국인이 실효 지배하며 군대도 주둔하는 이 땅에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나’는 한국인에게 우월의식을 가지지도 않고 오히려 그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국제우체국 창구담당자의 거만하고 불쾌한 응대를 상담하니 서투른 한국어를 쓰니까 기어오른다고 미국인 동료 해리가 조언했다. 검은 피부로 인종 차별은 받지만 영어 만능주의의 힘을 믿고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하지 않는 그를 따를 생각은 없다.
영어만 쓸 때의 편의를 체험하지만 ‘나’는 ‘한국에 사는 이상 일상생활에서는 가능한 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고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최인호, 전채린 등의 인물과 교류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좌우에 관심이 없다지만 일본의 학생 운동에 실망한 작가에게 한국인의 이념과 사회에 대한 관심은 뜨겁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개념까지 돌이켜보게 한다.
관찰자 역할의 화자는 기생 관광을 하며 한국을 조롱하는 일본인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 그들을 혼내기까지 한다. '한국이 모욕당한 데에 순간적으로 강한 분노'를 하는 '나'는 기생 관광을 하는 그들과 같은 언어를 쓰며 태어나고 자란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혼이 나는 일본인은 '한국인이 화를 내면 무섭다는 잠재적인 불안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 호의적인 화자가 이러한 불안 없이 마치 한국인처럼 말하는 점은 흥미롭다.
우체국 창구담당자 일화와 기생 관광 온 일본인을 한국말로 겁주는 일화야말로 화자의 한국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촌상룡에 이어 새 시대의 팝 문화를 담은 촌상춘수무라카미 하루키의 일본 독음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얘기하는 대목도 재밌다. 앞니가 부러졌던 사람이 항상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며 통금과 징병제를 비롯한 군사 문화가 있고 가족, 민족,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에서 팝 문화는 공감하기 어렵다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이 소설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일제의 잘못을 인정하며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갖는 무지를 안타까워하며 이토 히로부미나 천황도 부정적으로 본다. 독도에 대한 감정 역시 그 근저에 깔린 심리를 분석하며 남의 땅에 열을 올리는 우익도 아니다. 음식이 담긴 커다란 냄비에 숟가락을 다 같이 넣어 먹는 문화 역시 다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며 불결히 여기지도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않고 모르면 물어보며 교류한다. 조국에 비해 다소 뒤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는 문화 역시 그 나라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니 한국을 존중하는 '나'에게 한국인들이 화를 낼 일이 없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징병제, 지역 차별,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특수한 상황, ‘그곳’에 가는 특이한 경험,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나’도 놀랄 정도의 일본에 대한 그릇된 동경, 일제강점기에 대한 추억 등이 이 편견 없고 존중하는 눈에 의해 비추어진다.
우리도 모르는 그 시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알고 있는 내용마저도 색다르게 보여주기도 한다.
“선생님, 우리나라와 일본에 공통되는 영웅이 있습니다. 역도산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중략)
나도 웃었다. 세대적으로 보면 조금 뒤처지긴 했지만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리키도잔의 프로레슬링에 열광했다. 그가 특기인 ‘가라데촙’으로 백인 레슬러를 매트에 쓰러뜨릴 때 보여준 흥분을 알았다. 리키도잔은 그야말로 일본의 국민 영웅이었다. 반면 길상여자사범대학교 학생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않고 일본이라는 이국에서 활약한 한국 영웅으로 여겼다.
같은 서적 中
계엄이 벌어지는 10.26 사건의 경과를 들려주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물론 ‘나’는 일개 외국인 교사이기에 그저 보고 들은 것만 전할 뿐이다.
뜨거운 한국인과 현대사를 겪고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다.
자전 소설이지만 르포에 더 가깝다. 저자 서문에서 픽션임을 밝히고 사실과 다른 부분을 미리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소설적, 서사적 완결성을 추구했다면 한국 체류라는 강렬한 경험을 겪은 주인공의 변화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거나 계엄 또는 특정한 한국인을 중심에 두고 플롯이 변화하겠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바라보는 군사 독재 시대, 계엄 당시의 상황, 척박하지만 꽃이 피기 시작한 그 당시의 문화, 대학과 서울 생활, 일제강점기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살펴보기에 좋은 선택이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