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선생님께
보내주신 원고 <베니스의 상인>은 잘 받았습니다.
먼저 사내에서 선생님의 원고 즉, <베니스의 상인>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이어져 회신이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원고를 검토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수정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작품의 핵심 인물인 샤일록의 캐릭터 묘사에 관해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원고에서 그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고리대금업자의 모습으로만 그려져 있어, 독자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를 암살하려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은 이해가 갑니다만, 특정 민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
포셔가 모로코 왕에 대해 가진 편견, 즉 흑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고민은 독자층의 설정이었습니다.
포셔와 바사니오의 로맨스를 내세우기에는 이전에 보내주신 연애 비극과는 달리 로맨스의 비중이 작았습니다.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포셔를 소개하며 '벨몬테의 유산 많은 한 숙녀'라 언급하고, 이어서 사방에서 유명한 구혼자가 몰려드는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재산을 우선시하는 이런 로맨스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경제적 계산에 의한 결혼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안토니오과 바사니오는 평소에도 샤일록을 모욕하고, 돈을 빌릴 때마저도 욕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상환 의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만약 상환할 수 없을 때도, 무이자 대출의 조건으로 실질적 가치가 없는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라는 상징적 담보만 요구하는 관대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원수에게까지 아량을 베푼 샤일록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사라지지 않는 베니스 사회의 경멸과 조소, 안토니오의 파산으로 인한 대금 회수 불가능,
더불어 하나뿐인 혈육인 딸의 배신입니다.
샤일록은 분노했습니다. 베니스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안토니오에게서 약속한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함으로써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공작, 안토니오, 그리고 포셔가 대표하는 베니스 주류 사회 연합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담보는 물론이고 외국인 처벌법까지 적용되어 막대한 손실을 보았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의지하려 했던 법까지도 포셔의 법리 해석-더 정확히 말하면 베니스 주류 사회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독자들은 선생님의 원고를 통해 법은 과연 공정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동시에 베니스 사회 체제에 대항한 죄로 결국 쓰러지고 마는 샤일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 회의 결과 법학도들, 특히 '법과 교양' 같은 교양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선생님께서 동의해 주신다면 저희 출판사는 <베니스의 상인>이란 제목보다 더 나은 제목을 제안합니다.
바로 <피도 눈물도 없이> 입니다.
편집자의 눈으로 보는 작품이란 포맷은
《작은 일기》의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