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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개를 끄덕였는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

by 백수광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 는 주인공인 '나'가 이즈반도에서 만난 유랑 가무단의 무희와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소설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즈의 무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작은따옴표를 한 문장이 주목할 부분이다.


はしけはひどく揺れた。踊子はやはり唇をきつと閉ぢたまま一方を見つめてゐた。'私が縄梯子に捉まらうとして振り返つた時、さよならを言はうとしたが、それも止して、もう一ぺんただうなづいて見せた。' はしけが帰つて行つた。
栄吉はさつき私がやつたばかりの鳥打帽をしきりに振つてゐた。ずつと遠ざかつてから踊子が白いものを振り始めた。


을유문화사 판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작은따옴표로 표시했다.


무희는 고개를 끄떡였다.
에이키치가 배표와 거룻배 표를 사러 간 동안에 나는 여러 가지로 말을 붙여 봤지만 무희는 배수로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지그시 내려다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몇 번인지 모르게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여 보일 뿐이었다.

(중략)

거룻배는 몹시 흔들렸다. 무희는 역시 입술을 꾹 다문 채 한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줄사다리를 붙잡으려고 돌아보았을 때 '잘 있으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다시 한 번 그저 '고개를 끄떡여 보았다'. 거룻배는 돌아갔다. 에이키치가 방금 전에 내가 준 사냥모를 자꾸만 흔들고 있었다. 꽤 멀어진 뒤에 무희가 하얀 것을 흔들기 시작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신인섭 역, 〈이즈의 무희〉, 《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 호수》, 을유문화사, 2010, 전자책


"私が縄梯子に捉まらうとして振り返つた時、さよならを言はうとしたが、それも止して、もう一ぺんただうなづいて見せた。

나는 줄사다리를 붙잡으려고 돌아보았을 때 '잘 있으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다시 한 번 그저 '고개를 끄떡여 보았다'."


이 문장의 주어는 '나'일까? '무희'일까? 을유문화사의 문장을 보면 주어는 나로 보인다. 이번엔 다른 번역을 보겠다.


무희는 끄덕였다.
에이키치가 배표와 거룻배표를 사러 간 사이 나는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았지만, 무희는 수로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날 때마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중략)

거룻배는 심하게 흔들렸다. 무희는 계속 입술을 꾹 다문 채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줄사다리를 잡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안녕이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것도 그만두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떡여 보았다'.
거룻배가 돌아갔다. 에이키치는 방금 전 내가 준 사냥 모자를 자꾸 흔들고 있었다.
훨씬 멀어지고 나서야 무희가 하얀 것을 흔들기 시작했다.

히라노 게이치로, 김효순 역, 〈제3부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읽다-슬로 리딩 실전 편〉, 《책을 읽는 방법》, 문학동네, 2008, 169p


〈이즈의 무희〉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채택되고 이 문장의 주어가 대체 누구인지 큰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가와바타에게 문의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처음에는 나는 이 질문이 의아했다. 당연히 무희 아닌가? 이 항구의 이별의 정감으로 봐도 고개를 끄떡인 것은 무희여야 한다. 이 장면의 '나'와 무희의 모습으로만 봐도 무희임이 명백하지 않은가? '나'인지 무희인지 헷갈리는 것은 독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떡였다"에서 굳이 "다시 한번"이라고 쓴 것은, 그 앞에서 무희가 고개를 끄떡였다고 썼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독자의 편지를 계기로, 의문이 드는 곳을 찾아 그 문장만 잘 읽어보니 '나'인지 '무희'인지 헷갈리는 것도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중략)

그러나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나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의 '가'는 '인사를 하려 한 것'이 나와는 다른 무희라는 사실, 무희라는 주격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느끼게 해주지 않는가? '(무희)는 안녕이라는 말을 하려 했다'의 무희라는 주격을 생략했기 때문에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애매한 문장이 된 것이다. 영역자인 사이덴스티커도 '나'라고 쓰고 있다.

"As I started up the rope ladder to the ship I looked back, I wanted to say good-by, but I only nodded again."

가와바타 야스나리의〈나의 문학〉(《일초일화》, 고단샤 문예문고,300~302쪽),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170–171쪽에서 재인용.


주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작품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알고 있다.

사이덴스티커의 영역은 매우 오래된 번역이고 영미권과 달리 우리말은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잦다.

그렇다면 주어가 누구인지가 논쟁이 된 문장에서 격조사를 '는'이라고 번역한다면 가와바타가 작품을 쓴 의도와 다른 번역이 아닐까?

가와바타는 왜 〈이즈의 무희〉를 수정하지 않았을까?


《이즈의 무희》는 모두 '나'가 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무희의 심리나 감정도 '나'가 보고 들은 무희의 몸짓이나 표정, 대화만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 실상 무희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기술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무희는) 안녕이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것도 그만두고'처럼, 이곳만 무희 입장에서 기술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균형을 깨는 표현이다.
무희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긴 했지만, 그것이 '안녕'이라는 말이었는지 어쩐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안녕'이 단순한 인삿말의 의미라고 해도 , '말을 하려 했지만'은 '나'가 본 것을 기술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것도 그만두고'도 좋지 않다. 영역판에서는 주어가 무희가 아니라 '나'로 되어 있는데 '그것도 그만두고'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무희는 계속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의 '한쪽'이란 무엇인가? 여기서는 막연한 방향을 나타내는 '한쪽'일 리가 없다. 이런 식이므로 주어 한 단어를 보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구작(舊作) 3, 4행을 다시 써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는 갑갑한 혐오감에 사로잡혀버렸다. 만약 자세히 보면 작품 전체가 엉성해질 것만 같았다.

같은 책 302-303쪽,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에서 재인용


문장을 수정하려고 작품을 들여다보니 한 문장만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3, 4행 나아가 작품 전체를 수정해야 하기에 내버려두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을 수정하지도, 번역본의 문제를 수정 요청하지도 않았으니 결국 저자인 가와바타로 인해 생긴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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