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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로쿠요샤에 어서 오세요

가바야마 사토루의《커피 일가》

by 백수광부



교토는 차茶뿐 아니라 커피로도 유명한 도시다.

응 커피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도 진출한 아라비카 커피 외에

이노다 커피, 오가와 커피, 마에다 커피를 비롯해 많은 카페가 있다.

1912년 카페 파울리스타의 지점이 생겼다는 기록이 있는 교토에는 오랜 전통의 카페도 많다.

1930년에 문을 연 신신도 교토북문앞점, 1932년에 창업한 스마트커피점, 1934년에 시작한 쓰키지와 프랑수아 찻집 등이 지금까지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중에는 75년 된 독특한 카페가 있다.

분점을 내거나 위치를 옮기지도 않고 75년을 버틴 이 카페의 이름은 로쿠요샤다.


로쿠요샤는 특이한 카페다.

일층점은 킷사텐이다. 아침에 들려 신문을 읽으며 간단한 요기를 해결하는 직장인이나 머리가 하얀 단골들, 가게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는 레트로한 분위기의 공간을 창업주 오쿠노 미노루의 장손인 군페이가 책임지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사뭇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오가 돼서야 문을 여는 어둡고 좁은 지하점은 커피를 위한 곳이다. 오쿠노의 셋째 아들인 오사무가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한 블렌드 원두나 산지별 커피로 맛볼 수 있으니 커피 맛에 관심 있는 손님들에게 걸맞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다면 오사무 부부가 직접 만든 도넛을 주문하면 좋다.

지하점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분위기는 다시 변한다. 오사무의 맏형 다카시가 주인이 되어 위스키를 마시고 재즈가 흐르는 바가 된다.

무슨 가게가 이런지 처음 오는 손님은 신기할 따름이다.


로쿠요샤는 창업주인 오쿠노 미노루와 그 반려 야에코가 시작한 카페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만주에서 탈출하지 못한 두 사람은 커피 덕분에 만났다. 만주에서 간이로 만든 포장마차 커피집의 주인이 오쿠노였고 그 손님이 야에코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만주에서도 융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마셨다. 속옷으로 드리퍼를 만들기도 했다. 속옷으로 만든 커피 맛이 좋기도 했다니 정말 커피에 미친 인간들이었다. 두 사람은 커피가 이어준 인연으로 마음이 맞아 결혼 약속을 한다.

야에코가 먼저 교토로 돌아가고 오쿠노는 귀국하지 않았다. 야에코가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3개월이 지나서야 지하의 카페에서 오쿠노와 만날 수 있었다.

커피에 미친 인간들은 만주에서 커피를 팔던 열정으로 가게를 열었다.

온 가족이 출동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가게는 건물주의 횡포로 2년 만에 이전하게 되었다. 건물주가 기존 가게의 이름을 써 이름 역시 바꾸게 되었다. 만주에서 돌아온 두 사람이 다시 만났던 찻집이자 이전한 가게의 이름이 로쿠요샤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쓰기로 해 지금에 이른다.


《커피 일가》는 로쿠요샤라는 가게의 75년 역사를 담은 책이다. 앞서 소개한 책인 와타나베 미야코의 책인 《차의 맛》과도 닮아있다.

노포를 다룬 책이라는 점은 같으나 그 소재가 달라 흥미를 끈다.

3대에 걸친 이야기는 일본의 커피 문화가 자연스레 발전하는 모습을 다룬다. 그 커피 문화는 우리나라와 닮으면서도 다르기에 그 부분도 재미있다.


오랜 역사의 카페에서 후계자가 성장하는 과정은 마치 무협지나 무술계에서 제자가 크는 것과 비슷하다.

이웃 문파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고 우리 문파의 후계자와 같이 커 나간다.

후계자는 큰 기대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로쿠요샤는 단순히 인근 가게가 아니라 교토 카페라는 무림의 동료다.

커피에 미친 인간들은 로쿠요샤에만 있지 않았다. 창업주 오쿠노는 커피에 미친 교토인들과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 미치광이들이 카페를 세우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끌었다.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토인에게는 시골인 도쿄에도 미치광이들이 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지만 사람은 미치광이로 만든다. 커피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길을 터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준다.


거세게 몰아치는 커피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낸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제2의 물결과 고품질의 원두와 생산과정을 중시하는 제3의 물결에서 커피 무림은 하나가 되어 도왔다.

그렇게 미숙함과 갈등을 해결하고 이겨내어 로쿠요샤의 독특한 세 공간을 낳았다.


원서가 출간된 시기가 2020년이지만 팬데믹 이야기는 없다. 팬데믹의 해니 편집 과정에서 이야기를 다 담기도 어려웠으리라.


언젠가 도쿄의 카페 바흐나 교토의 로쿠요샤, 오가와, 이노다, 마에다, 스마트 커피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커피를 내리는 젊은 얼굴에 주목해 보길 권한다. 카페라는 무림의 새로운 후계자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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