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핫스팟〉
야마나시현 후지아사다시. 후지산의 절경이 보이는 이곳은 호수를 낀 평화로운 마을이다.
연쇄살인도 성범죄도 폭행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살인도 강도도 성범죄도 절도도 폭행도 흔히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다.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경찰도 시민도 좋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하루의 연속이다.
싱글맘 엔도 키요미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레이크호텔 아사노코 프런트에서 유미, 에리와 함께 업무를 처리한다. 손님들은 가끔 평범하거나 다소 까다로운 요구를 들고 온다.
동료들과 손님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거나 주기적으 친구인 미나미, 하즈키와 맛집에서 근황을 나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마트에 들러 딸의 저녁 거리를 사 들고 집에 온다.
이벤트라고는 후지아사다시의 시장 선거인데 큰 관심이 없다.
후지산에 얽힌 자존심 싸움도 마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후지산이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 두 곳에 걸쳐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느 현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싸움을 붙이려는 기획도 방송용 멘트를 할 뿐이다.
마을 어디서나 자태를 뽐내는 후지산은 후지아사다시에서는 일상이다.
"히가시중 출신 스즈미야 하루히.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
타니카와 나가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中"
일상은 비일상으로 균열이 일어난다. 이 마을에 균열을 낸 사건은 살인도 강도도 성범죄도 절도도 폭행도 불륜도 아니다.
외계인이다.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귀가하던 키요미는 어두운 밤길에서 부러진 나뭇가지에 의해 중심을 잃고 흔들려 화물 트럭에 치인다. 아니, 치일 뻔 했다. 평범한 싱글맘의 비극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키요미는 무언가에 의해 교통사고를 모면했다. 화물 트럭에 치이지 않았다. 화물 트럭 기사도 당황하는 이변이었다.
멀쩡한 몸에 당황하는 키요미 눈에 직장 선배 타카하시 코오스케가 들어온다. 사고를 당하기 직전 타카하시가 키요미의 자전거를 들고 빠르게 이동했다. 타카하시는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한다.
믿을 수 없이 힘세고 빠른 남자다. 타카하시는 비밀을 지켜달라며 자신이 외계인이라 고백한다
이 외계인은 평범하다. 회색 피부도 아니고 눈알은 작다. 머리도 작지는 않지만 로스웰에서나 볼 듯한 외계인 규격 이하다. 올챙이 배까지는 아니고 머리카락도 있다. 사람처럼 말하고 식사하며 목욕도 한다.
당연하다.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이 남자는 어딜 봐도 평범한 중년 남자다. 목욕탕에 들어가 있는 이 중년이 외계인이 맞는지 건담을 모으는 이 오타쿠가 우주인이 맞는지 정체를 알아달라며 동전이나 구부리는 이 직장 선배가 에일리언이 맞는지 의문이다. 믿을 수 없는 근력을 가졌는데 근육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벗겨진 머리다.
안전모나 귀도리를 착용하고 자전거로 직장에 출근하는 이 중년은 수상하지 않다.
키요미는 믿을 수 없다. 선배는 약속을 지켜달라 말했다. 목숨을 빚진 셈이니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입을 쉴 수가 없다.
우리 옆에 외계인이 있대! 절친들과 얘기하고 싶다. 수다 떨고 싶다. 이 안온한 도시에서 화제를 공유하고 싶다.
당부가 무색하게도 친구들을 만난 키요미의 입이 열린다.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직장의 미친 선배에 대해서.
〈핫스팟〉은 마을의 일상에 파고든 외계인 타카하시가 키요미와 친구들의 소소한 트러블을 해결하기 위해 숨겨진 능력을 사용하는 비일상의 이야기다.
타카하시는 슈퍼맨이 아니다. 능력은 사소하기 그지없고 사용하면 후유증이 발생해 온천에서 요양해야 한다. 벗겨진 머리도 능력을 사용한 후유증이니 짠하기까지 하다.
입이 싼 인간들에게 화를 낼 법도 하지만 결국에는 소문을 퍼뜨리길 허락하니 보살이 따로 없다.
어느새 타카하시도 키요미와 함께 맛집에서 미나미, 하즈키와 함께 수다를 떨며 자연스레 어울린다.
정체를 아는 이들은 늘어만 간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신은 이적을 보고 신뢰가 된다.
이제 머리 벗겨진 외계인에 대한 불신은 용납되지 않는다. 머-멘.
과연 타카하시는 정부에 잡혀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머리는 무슨 일로 벗겨졌을까. 키요미와 친구들은 타카하시의 정체를 누구한테까지 말할까.
〈핫스팟〉을 보면 이 답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