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홍콩이 아직 영국 도시일 때 이야기다.
홍콩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가던 할머니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었다.
프라이드 반 양념 반도 아닌데 당시 데려가려던 반려묘와 할머니가 합쳐져 반은 고양이 반은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이 귀신을 홍콩할매귀신이라고 한다.
고양이 귀신은 귀엽기라도 하겠지만 반인반묘니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으로 돌아온 홍콩할매귀신은 하교하는 아이를 골라 죽인다.
100미터를 10초 안에 달릴 수 있으며 목격자를 죽여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귀신을 아이들은 두려워했다.
홍콩할매귀신이란 이름은 홍콩인들은 듣도 보도 못했다.
당연하다. 한국의 도시전설이니까.
한국이 낳은 귀신은 종말의 예언이 빗나가고 21세기를 맞이하자 세월의 흐름에 쓸려 사라졌다.
지금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홍콩할매귀신 얘기를 한다면 무서워하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리라 확신한다. 반인반묘 귀신은 쓸쓸히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어 중국령이 된 홍콩으로 다시 갈 수밖에 없다.
항공 사고는 줄어들었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납치당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홍콩도 시대도 변했다.
괴담은 영원하지 않다. 시대에 발맞추어야 한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새 시대에 발을 맞춘 따끈따끈한 괴담이다. 모큐멘터리 형식의 소설로 실종된 편집장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긴키 지방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으스스한 사건들을 조사한다.
모큐멘터리란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게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르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빚어진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수도였던 교토를 중심으로 한 기나이畿內 지역을 통틀어 관습적으로 긴키 지방이라 부르고 이는 곧 간사이 지방을 뜻한다.
화자는 작가 세스지다.
실종된 편집자 오자와가 남긴 자료를 다양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인터뷰, 발췌한 각종 괴담 기사, 기이한 사건을 다룬 르포,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타래 글, 스트리밍 사이트의 영상, 각종 메모, 독자 투고 등의 형식으로 긴키 지방의 미스터리에 서서히 접근한다.
이 미스터리의 중심지는 긴키 지방의 ●●●●●다. 지명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으며 ●●●●●로만 나온다.
성인 사이트의 영상에 달린 ‘우리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라는 기이한 댓글에 대한 제보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자 제보는 또 다른 기사로 이어지며 기사가 끝나면 다른 형태의 자료들로 이어진다.
긴키 지방의 ●●●●●에 얽힌 미스터리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화자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에피소드 역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궤도에 오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독자는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다.
홍콩할매귀신은 옛 시기의 괴담이지만 소설에서 다루는 괴담은 21세기의 있을법한 괴담이다.
한국과 일본인이라면 한번은 가보았을지도 모를 간사이. 그리고 그곳의 현실적 장소 ●●●●●, 누구나 보았을 스트리밍 영상과 댓글, 인터넷 게시판의 게시글 타래, 그 외 각종 텍스트.
인터넷 어딘가에서 비슷한 사건을 목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적인 괴담이다.
훌륭한 모큐멘터리 소설이다.
충분히 몰입시키며 독자를 결말까지 잘 유인한다.
상관없어 보이는 괴담의 파편들은 읽어 나갈수록 덧붙여지며 무서운 그림을 그려나간다.
마지막에 이르면 이 파편이 무엇을 위한 파편인지 깨닫게 되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텍스트와 책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림이나 사진, 폰트, 종이 등 책과 소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이용해 디자인적으로 모큐멘터리를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21세기의 귀신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랜선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단행본으로 엮은 글이 아닌 창작 사이트 가쿠요무의 연재물을 실시간으로 읽었다면 더 무서웠으리라.
살인마나 귀신, 요괴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달아나야 한다면 독자는 무서운 소설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꿈속이 아닌 한 그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안전한 공간에서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괴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금기를 넘어 호기심을 채운다. 안전한 정신적 살해 체험. 그것이 무서운 이야기를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정체가 아닐까.
여름밤, 모기가 피부를 스치고 귀신 하나가 괴담을 읽는 독자 뒤에 서 있다.
무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독자가 느끼는 서늘함의 정체는 그를 내려다보는 귀신의 시선일 수 있다.
귀신은 바다를 건널 수 없지만 랜선과 와이파이로 찾아올 수 있으니 이를 조심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