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쫓아서

주 샤오메이의 《강과 그 비밀》

by 백수광부



베이징의 한 주택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반짝이는 피아노는 보금자리를 새로 옮긴 소녀와 가족들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는 듯 보인다.

사실 이 주택에 사는 소녀네 식구가 가진 재산은 상하이에서 내전이 끝나고 눈이 녹듯이 사라졌다. 일자리를 주겠다는 친척을 믿고 이주한 베이징에서도 인민 해방군이 친척의 재산을 몰수했다. 대만으로 건너간 소녀의 삼촌에게 가려는 시도도 출국 금지령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소녀의 어머니만이 그녀가 받은 교육 덕분에 초등학교 음악 교사라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피아노는 지금도 중산층의 상징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50년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가끔 놀러 오는 아이들에게 소녀는 건반을 두드리며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이들도 소녀도 피아노를 칠 줄은 몰랐지만, 소리가 나는 악기는 재미있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개인보다는 집단, 가족보다는 집단. 생각은 당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교육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도 당이 알아야 한다. 당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학교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 행동을 했는지 자기비판과 고발의 시간을 가졌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교양을 가진 가족,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 집.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피아노가 필요했다.

가족에게 소득과 소녀에게 재미를 안겨준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부르주아 집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공산정권에서 소녀네 가족들은 결함투성이 집안이었다.

타계한 소녀의 조부도, 외가댁도 서양 문화에 단단히 물이 들었고, 대만으로 건너간 소녀의 삼촌 역시 문제의 씨앗이 되었다.


그래도 교양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피아노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이었고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 소녀에게도 동반자가 되었다.

어린이 음악학교에 입학한 소녀는 피아노 연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부르주아 집안이기에 죄의식을 갖고는 있었어도 세상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1960년 베이징 음악학교에 입학한 소녀, 주 샤오메이는 훌륭한 선생님과 친절한 관리 할아버지와 교류하며 평범하고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자기비판과 고발 시간은 여전히 불편했다. 그러나 주 샤오메이가 밤에 친구들과 재미 삼아 지붕에 올라가 농담하기 전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비원에게 밤 나들이를 들킨 친구가 주 샤오메이의 농담을 고발했다.

농담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고발의 공은 출신성분과 중2병의 일기가 증명하는 불온한 사상, 톨스토이와 같은 부르주아 문학 작품을 읽은 죄로 그 크기가 커지며 굴러갔다.




자기비판도 소용없이 그녀를 보는 동무들과 선생의 태도가 바뀌었다.

자기비판과 고발은 계속되고 공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열성적인 학생이 학교에서 서양 음악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 돌아왔다.



"이 편지는 아주 잘 쓴 글이다. 여기에 제기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서양 문화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강과 그 비밀》 中"


마오의 아내 장칭은 편지를 쓴 학생을 집에 초대했다.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권력을 되찾기 위한 마오에게 열성적인 학생의 편지는 훌륭한 명분이었다.

공은 멈추지 않았다.

마오쩌둥에게 찍힌 열성분자 주 샤오메이도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음악 따위는 그만두고 군대에 들어가 혁명 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베이징 음악학교에 새로운 날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 시절을 문화대혁명이라고 부른다.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라오서는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가혹한 매질과 모욕을 당한 뒤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은 홍위병들에게 학대당하다 투신자살에 실패해 장애인이 되었다.


이름난 문호도 유명 정치인의 가족도 홍위병을 피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과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전곡을 무대에서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피아니스트도 연주회 복을 입고 자살했다.


베이징 음악학교에서는 교장이 먼저 끌려가고 그 다음은 선생들이 표적이 되었다.


마오쩌둥과 장칭의 비호 아래 홍위병은 날뛰었다.


베이징의 저택에 있는 주 샤오메이의 벗 피아노도 위험한 폭탄이 되었다. 폭탄은 이불로 숨기고 만일을 위해 인민을 착취한 물건을 인민에게 돌려준다는 글귀도 붙여놓았다.


주 샤오메이는 시골의 수용소에서 5년의 세월을 보낸다.

고된 노역으로 음악에 대해 생각할 여유라고는 없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발견한 아코디언이 그녀의 세계를 다시 음악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회색의 세계가 점점 화사해졌다. 음악이 다시 그녀에게 찾아왔다. 그녀는 음악에 목말랐다.

베이징에 잠들어있는 친구를 데리고 올 생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혹독한 시기에도 수용소의 생활을 버티고 그곳으로 피아노를 옮길 생각을 하며 이를 실행했다. 보통의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생각이다.

자기비판과 고발의 시간도 그녀에게 남아있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없애지 못했다. 그녀는 공산당과 전체주의에게 정신을 완전히 내주지 않았다. 가혹한 수용소 생활도 사람들의 정신을 완전히 세뇌하지 못했다. 그녀를 비롯한 음악학교의 수용자들은 그곳에서 음악이라는 희망을 찾아 숨을 쉬었다.


마오쩌둥이 죽고 중국에 봄이 찾아오자 그녀의 용기는 한층 더 빛을 발했다.

베이징 중앙음악학교의 입학 조건 중 나이가 문제가 되자 문화부 건물 안에 들어가 연좌시위를 벌였다.



죽음 앞에 돌아온 주 샤오메이에게 이제 무서운 것은 없다. 그녀에게 무서운 것은 세월이었다. 수용소에서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음악을 하지 못하고 때를 놓쳐 그냥 늙어버리는 것.

홍콩에서의 생활은 그러한 이유로 접게 되었고 미국을 거쳐 프랑스까지 꿈을 찾아 다녔다.



나이 많은 동양인 피아니스트에게 기회의 문은 좁았다.

그러나 피아노를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두드리고 열리면 들어갔다. 나이 때문에 콩쿠르는 할 수 없지만 행운이 찾아온다.

도움은 그녀의 옆에 언제나 있었다.

문혁 시절에는 이웃이 홍위병의 대자보를 없애주고 수용소에서는 벗들과 알게 된 동료들이 그녀를 도왔다. 마오가 죽고 봄이 찾아오자 베이징 음악 학교의 선생은 그녀를 기꺼이 가르쳤다. 홍콩과 미국과, 파리에서도 벗들과 지인들이 그녀를 도왔다.

이 상황은 도움을 주는 그들에게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보여준다.

미국에서 비자 문제를 해결한 일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부르주아 집안의 상징이자 열성분자로 만들게 한 피아노가 그녀를 이끌었다.

콩쿠르 하나 도전할 수 없는 나이 많은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내주고 일자리를 만들었다.

‘어린 왕자를 닮은 듯 수려한 용모에 총명하고도 예민한 젊은이’이자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날의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 역시 그녀의 연주 음반을 듣고 자진해 공연기획자가 되었다.



파리에서 친구들은 사람들에게 그녀를 예술가, 피아니스트라 소개했다.

사실 수용소에서 아코디언을 발견할 때부터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 뒤부터 주 샤오메이는 음악만을 쫓았다. 그녀의 세계는 음악으로 물들고 솔직함과 굳건한 용기로 세상에 나아갔다.


파리국립음악원의 교수가 되고 늦은 나이에 세계 각국에서 연주회를 열고 바흐가 음악 감독으로 봉직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하기에 이른다.

고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재회하고 오랜 기간 헤어진 베이징의 벗, 피아노와도 다시 만난다.


인간성이 사라질 뻔한 시절, 음악을 믿지 않았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순간이다.

음악을 믿자 음악이 찾아왔다. 찾아온 음악을 두 번 다시 버리지 않았다.

마오는 권력을 추구해 수많은 사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죽였지만 마오에게 찍혔던 주 샤오메이는 음악을 쫓아 사람들의 정신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주 샤오메이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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