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슬 May 15. 2020

날씨로 기억한다는 것

얼마나 낭만적인지

코로나 영향으로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게 익숙해진 참이었다. 게을러졌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끊어 놓았던 운동은 안 간 지 오래되었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뜸해진 것이다. 퇴근길을 지나 집에 오고 나면 밥을 먹고 넷플릭스를 시청하기 바빴다. 이제 볼 것은 다 본 상황이라 시즌10개가 넘는 시트콤을 재탕하곤 했다.


지난주 즈음이었다. 두께감이 있는 노란 맨투맨 하나를 걸쳐 입었다. 늦게 퇴근한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걷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아진 게 보였다. 날씨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이었다. 갑자기 과거의 밤이 스치듯이 머물렀다 가버린 것은.





저녁까지 런던 중심가를 구경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 당시 숙소는 해머스미스 역 근처에 있었는데 시내에서 정말 가깝다고  할 수는 없는 거리였다. 덜컹거리는 빨간 노선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내가 여행하는 타입은 배고플 때까지 돌아다니고 식사를 하고 다시 배고플 때까지 돌아다닌다. 많이 걷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도 꽤 늦은 시간이었다. 런던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최초로 지어진 지하철이니만큼 연륜이 엄청난 지하철이다. 처음엔 좀 무서웠기도 했다. 여행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도 편하게 이어폰을 끼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도 갖고 다녔다. 며칠 지나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런던의 해머스미스 역은 서울의 고속터미널 역을 생각나게 한다. 환승할 수 있는 다양한 노선이 존재하며 버스 터미널도 있다. 항상 역에 가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역사 안에 있는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여행으로도, 살기에도 머물기 좋은 괜찮은 곳이었다.


숙소는 역에서 나와 3분 정도 걸어야 했다. 개찰구를 찍고 애용했던 마트를 지나 출구로 향한다. 고가도로 밑으로 복잡한 횡단보도에 멈춰 선다. 거기서는 머물렀던 숙소가 보이곤 했는데, 큰길 바로 옆에 있고 꽤나 허름했다. 열쇠 키 두 개로 내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안전하지는 않았다. 옆에 카페나 음식점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자 이동할 때면 이어폰을 거의 끼고 다녔다. 파란 불을 기다리며 노래를 듣는 그 상황은 꽤 좋았다. 적당히 빠른 비트에 발랄한 멜로디는 여행 자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숙소에 가면 편안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고 마음 편하게 여행할 다음날을 생각했다. 얇은 티셔츠에 청자켓 하나를 걸치고 있었는데 약간 시원한 밤바람이 함께했다. 가로등 밑 불빛과 함께하는 멋진 밤이었다.





엄마를 마중 나가러 가는 길에 에어팟을 끼고 Weezer의 Island in the sun를 틀었다.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과 결합해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스쳐 지나간 그 날을 조금 더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역시 멋진 밤이라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한 서사의 조화 그리고 아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