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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민 Sep 23. 2024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건 임신도 출산도 아니었다.

물 밀듯 밀려와 나를 삼킨 모성애

2023년 1월 19일 새벽 4시 56분

약 10시간의 진통끝에 인우가 태어났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보던 출산의 기쁨은 내게 없었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고 의사선생님께서 “엄마 고생했어“ 하시던 그 순간, 밖에서 대기하던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내게 달려와 내 머리를 하염없이 쓰담던 그 순간, 긴장 풀린 몸이 사시나무처럼 발발 떨리던 그 순간마저도 내게는 그저 “아 드디어 끝났다” 하는 안도감뿐이었다.


여전히 그 순간에도 나는 나였다. 사회적으로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고통에만 집중하는, 그저 자기중심적인 한 인간인 ‘나’만이 존재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며 회음부의 고통이 느껴지기에 아기를 보면 고통이 경감된다는 말을 의지하며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음.. 여전히 아프다. 내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구나.. 나보다 먼저 처치가 끝난 아기를 간호사 선생님께서 돌돌 싸매어 내게 안겨주셨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아기를 안아보았다. 감동적일 줄 알았으나 그저 어색하고 묘하다.


5초 정도 안았을까.. 바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졌고 나도 후처치를 마무리한 후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이때에도 그저 내 회음부가 많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만이 가득했다. 당일 오후에 내 방으로 아기가 잠시 오긴 했지만 그 마저도 잠시였다. 손가락 발가락 확인 등 간단히 건강상태만 보여주신 후 산모님 쉬시라며 바로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출산 첫 날이 흘러갔고, 커다란 과업 하나를 달성했다는 뿌듯한 마음과 이유 모를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이 얽히고 섥힌 상태로 출산 이튿 날을 맞이했다. (이제는 안다. 그때 그 불안함은 막 태어난 아기와 떨어져서 생긴 분리불안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내 안에 모성애라는게 움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앞으로의 출산은 자연주의로 하려고 결정했다.)




다음날이 되니 회음부는 더 불편한데.. 아기는 어제보다 더 궁금하고 보고싶다. 100% ‘나 중심’에서 약 99.5% ‘나 중심’으로 옮겨간 듯 하다. 남편과 어제 찍은 아기 사진을 수백번 돌려보며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 받았다. 양가, 친척들, 친구들에게 소식도 전했다. 엄청나게 많은 축하 연락과 각종 선물을 받았고 양가에서는 꽃바구니도 보내주셨다. 그 와중에도 인우 소식이 궁금해 목이 빠질 것 같았는데.. 이런 산모의 마음을 알았는지 다행히 오전 중 신생아실 콜이 왔다.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회음부가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제대로 눕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서러움에 눈물 흘렸던 나.. 콜 받자마자 신생아실을 향해 말 그대로 달려나갔다. 바람처럼 뛰쳐나가는 내 뒷 통수에 들리는 남편 목소리…  ”조심히 가!”





다급히 신생아실 벨을 누르자 인우어머니시죠? 하시며 옆 모유수유실로 가 있으면 바로 데리고 오시겠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니 설렌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기쁨, Joy라는 그 단어가 나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 하나 하나에 물들어.. 온 몸이 축제를 벌이는 그런 상태로 모유수유실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입구를 바라보았다. 1초가 1분같이 ..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곧 이어 밝은 표정의 간호사선생님께서 아기를 안고 들어오셨는데 “산모님 도넛방석 안 필요하세요…?!“ 놀라시며 물으신다. 그제야 잠시 잊은 고통을 ‘머리로’ 깨달았다. 아 그러게.. 나 회음부 아팠는데 그 방석없이 1초도 못앉아있었는데..? 정신차려보니 바로 옆에 이미 방석이 있다. 고통을 느끼진 못하지만 혹시 모르니 얼른 엉덩이 밑에 구겨넣고(보통은 천처어어언히 조심스럽게 넣고 여러번 덜 아픈 각도를 찾아 앉는다) 아기를 달라는 손짓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모유수유 자세를 잡아주신 후 떠나셨고, 드디어 아니 이제야 나는 나의 아기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한 팔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몸, 오밀조밀 다 들어있는 신비한 얼굴, 보드라운 살결, 쌔근쌔근 숨소리, 처음 맡아보는 좋은 냄새.. 아.. 형용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그 시간을 나를 내 세상을 삼켰다. 조심히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기의 살결에서 느껴지는 그 따듯한 온기가 평생을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내가 가장 중요했던)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과거의 나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임신기간과 출산날에도 느끼지 못한 모성애가 물밀듯 몰려와 나를 덮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31년 인생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완전함’을 느꼈다.


나의 첫 마디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였다. 절로 기도가 나온다는 그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준비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은 기도가 내 입술을 통해 절로 흘러나왔다. 아이의 눈을 만지며 아이의 코를 만지며 아이의 입술을 만지며 아이의 손, 발을 만지며 나는 조용히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지금까지도 자는 인우를 붙잡고 하는 기도이다.)


“주님의 시선을 따라가는 인우의 눈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 인우의 코 되게 하시고

말씀과 찬양이 끊이지 않는 인우의 입 되게 하시고

당신이 걸어간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걷는 발 되게 하시고

이 땅의 어두운 곳에서 빛이 되는 손 되게 하시고..“


그렇게 임신도 출산도 아닌,

작은 생명을 안고 읊조리는 그 눈물의 기도가,

드디어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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