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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민 Sep 26. 2024

엄마라는 계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이유

나는 더욱 나로 살아가고 있다.

출산한 지 600일여일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육아의 어두운 면만을 (주로 미디어로) 보고 듣고 산다. 육아는 내가 없어지는 것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 여자이기를 포기하는 것 등등..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특히, 결혼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며 경주마처럼 살아온 나는 “넌 결혼을 늦게 할거야” 혹은 “넌 육아는 못할거야 애 낳고 초스피드로 복직하거나 유학가겠지” 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내 지인들도 있을텐데 크게 공감할 것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내 남편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그러나 두돌이 되어가는 아기를 가정보육하는 지금,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다 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충만하고 찬란하다.





인생에는 여러 계절이 오고 간다.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으로 살아가는 계절, 취업하면 일에 몰두하는 직장인이 되어 살아가는 계절 등.. 나는 지금 어린 아기와 살부비며 지내는 ‘엄마’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 중/고/대학생으로 살아가던 나도 나였고, 대학원생이었던 나도 나였고, 취직하여 연구원으로 살아가던 나도 나였듯, 엄마로 살아가는 나도 ’나 자신‘이다. 엄마가 된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ㅇㅇ학생으로 불렸듯 ㅇㅇ엄마라고 불리는 시기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어떤 때보다도 ‘지금(now)’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랜 기간 학생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가버린 내 성적과 미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느라 ‘지금’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계속 공부를 이어할 생각에 GRE 성적 걱정, 유학자금 마련에 대부분의 정신이 팔려 ‘지금’에 시선을 두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엄마가 된 지금은..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Carpe diem, seize the day’를 아주 충실하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자고, 먹고, 놀고, 자고, 먹고, 놀고, 자는 일이 반복되는 하루 하루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세 식구가 건강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어디로 가면 오늘의 산책을 또 즐거이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사이 사이 틈이 생기면 또 그 대로 그 시간이 너무 너무 소중해서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한다.


특히 하루 두번 나가는 (오전 2시간 & 오후 3시간) 산책은 아이와 나의 일과 중 가장 즐겁고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뜨거운 햇살에 땀을 뻘뻘 흘려도보고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혀도 보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만져도 보고, 발로 밟아보기도 한다.


그 뿐이랴. 날아다니는 새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귀가 찢어지게 우는 매미 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들을 관찰하기도, 돌멩이와 낙엽을 모아보기도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누리고 그 자연의 섭리를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자 아이에게 100% 집중하는 시간.





이때에는 예전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보이지 않던 주변 환경들이 보인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기에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다.


또한 아이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두면 나 혼자 살아갈때에는 절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많은 것들을 새로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아.. 물방울이 이렇게 예뻤구나, 아..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새들이 있구나, 아.. 땀흘리다 만난 그늘이 이렇게 감사하구나.. 아.. 노을이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그렇게 ’내가 서있는 이 곳‘과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에 집중’하며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보낸다.




34년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현재를 살아본 적이 없다.


‘현재의 나’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내가 없어진다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의 나 자신에 집중하며 이 계절을 아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계절에는 인생에서 피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꽃인, ‘인우‘가 피어난다.


예뻐서 주는 사랑인데 귀여워서 주는 관심인데 사랑스러워서 주는 손길인데 그 사랑과 관심, 손길에 더 크고 예쁘게 피어나니 감사함만 넘쳐난다.




다른 계절에는 없는 생명의 꽃인 나의 인우.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도, 아무리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아도, 생명보다 귀할까 아니 생명과 비교할 수나 있을까. 내 인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되다니 나는 여전히 아기를 볼때마다 경이롭고 놀랍다.


인우라는 꽃은 지나온 계절에서 만난 혹은 만들어낸 그 어느 꽃보다도 완벽하다.


그러나 슬프고 애석하게도, 엄마의 사랑과 관심, 손길이 24시간 필요한 유아기 아기와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3년에서 5년이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면.. 정말 고작 3%에서 5% 정도. 이렇게 짧기에 이 시기의 어린 아기가 더욱 소중하고 짧기에 아기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더욱 애틋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보내는 엄마라는 계절을

감히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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