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산책하는 이유
평일 오전 8시, 남편이 묻는다.
“오늘도 나랑 같이 나가?”
“아이 그럼! 당연하지!”
아기 마실 물과 간식, 손수건 여러 장, 아기 모자를 챙겨 남편의 출근길을 오늘도 동행한다. 그렇게 인우와 나의 오전 산책은 시작된다.
우리는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한 후, 버스에 탄 아빠가 사라질 때까지 연신 손을 흔든다. 어린 아기가 각종 애교를 떨며 아빠를 배웅하니 아침마다 버스에 탄 사람들 얼굴엔 웃음꽃이 핀다.
아빠가 사라지면 아기의 첫 마디는 늘 같다.
“아빠 차쟈요..”
“아빠 일하러 갔지~ 우린 이제 어디갈까?” 물으면 손가락을 들고 여기로 저기로 가자며 나를 이끈다.
최근엔 스타벅스에 가서 간식먹는 재미를 들여;;; 조그마한 두 발로 스타벅스까지 직접 걸어간다. 느릿느릿 걷는 엄마에게 빨리 오라 재촉하기도 한다. 다른 길로 가자고 하면 아니라고 아니라고 난리가 난다. 하! 스타벅스가는 길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안다.
스타벅스에 가면 나는 주로 모닝커피를 사 마시고, 인우는 집에서 싸간 간식을 간단히 먹는다. 10분도 안걸리기 때문에.. 커피가 넘실거리는 내 텀블러는.. 뭐 그대로 가지고 나온다고 보면 된다.
나와서는 보통 스타벅스 뒷길로 이어지는 천변 산책을 하는데, 그 산책로에서 이어지는 다른 아파트로 들어가 새로운 놀이터를 탐험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 그때 다르다. 산책은 (특별한 일 없으면) 인우가 주도해서 하기 때문에, 천변 산책만 주구장창 하다가 돌아올 때도 있고 어린이도서관에 가서 30-40분씩 책읽다가 집에 오는 날도 있다.
인우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일이 즐겁고 신기하다.
맑고 순수한 아기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내가 듣지 못하는 것들을 듣는다.
그래서 늘 인우를 앞장세우고 나는 조금 두어발자국 떨어져 인우를 따라 걷는다. 잘 걷다가도 내가 잘 오고 있는지 중간 중간 꼭 뒤를 돌아 확인하는데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 조차도 행복하다.
걷는 속도는 정말 .. 개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아니 개미가 더 빠를 수도 있다. 개미는 적어도 앞을 향해 가니까.. 인우는 앞으로 가다가도 되돌아오고 갑자기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고 왼쪽으로 가기도 한다. 돌다리를 수없이 왕복하기도 하고 모래가 보이면 냅다 앉아 모래놀이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우의 산책속도가 갑갑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인우의 시간에 몸과 마음을 함께 두고 있지 않을 때라는 점. 의식적으로 인우에게 온 마음을 두려고 애쓰다보면 다시 지루함은 사라지고, 온 세상이 즐거운 놀이터로 변신한다.
풀잎에서 물방울이 맺혀있는게 놀랍고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톡 치면 떨어지는게 즐겁고
맴맴 우는 매미를 찾는게 설레고
팔랑 팔랑 나비의 날개짓을 따라하는게 웃기고
후다닥 날아가는 새는 눈이 튀어나오게 신기하고
오리와의 조우에 도파민이 폭발하는
인우의 놀이터, 자연!
육아를 하는 엄마라는 계절이 내 황금기라는 아주 솔직한 글을 썼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일도 힘들고 공부도 힘들 듯이 육아도 힘들 뿐..)
남편은 인우가 잠든 이후에나 퇴근하기 때문에, 새벽 5시 인우가 일어나는 그 시간부터 저녁 7시 잠드는 그 시간까지 인우의 ‘엄마!!!!’소리를 셀 수 없이 듣게 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분명 지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해가 쨍쨍 폭염인 날에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도,
혹은 추운 날에도,
오전 산책과 오후 산책은 거르지 않는다.
이유는 자연과 함께하는 공동육아에 있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육아의 주체자는 더이상 나 혼자가 아니게 된다. 아니 오히려 나는 조금 더 소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게 된달까. 그렇다보니 숨통이 트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힘으로 지친 마음이 치유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연 속에서 웃음꽃이 피는 인우 얼굴을 보면 마음이 참 좋다.
남편과 내가 마련한 집이라는 공간은 인우에게 제한적인 놀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이용해 놀아줘야할 의무가 있는 엄마는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피곤한 날도 있고 마음이 어려워 여유가 없는 날도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다.
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무궁무진하다. 늘 새롭고 늘 즐거운 일이 넘쳐나는 곳. 어제와 오늘의 풍경이 다르고 온도가 다르고 냄새가 다른 곳. (그 어느 유명한 오감놀이 수업보다도 비교가 안되게 훌륭한, 최고의 오감놀이 놀이터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제한없이 따듯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 아니 사랑 그 자체이신 분 아닌가. 키포인트는 인우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드셨기에 엄마보다도 더 인우를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
아기와 함께 천변을 걸으면, 아기는 더이상 나를 찾지 않고 주변을 탐색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순간 만큼은 나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우를 직접 기르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인우에게 물 웅덩이에 비친 인우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뜨거운 태양에 흐르는 땀과 부는 바람에 식는 땀을 느끼도록 하시기도
지저귀는 다양한 새소리를 들려주시기도
비온 후 진해진 꽃내음 풀내음을 알려주시기도
매 순간 다르게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껴보라 하시기도
잔디 위로 초청하여 풀의 촉감을 가르치시기도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시원함을 알려주시기도
조금씩 변하는 나무의 모습으로 계절을 알려주시기도
해가 지며 달라지는 풍경의 채도를 보이시기도 하는
나의 하나님이자
너의 하나님.
또한 인우에게 보여주시는 자연은 동시에 내게 보여주시는 자연이기도 하기에, 인우의 느린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추어 걷다보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라는 시편고백이 어느 순간 나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다.
아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줄로 재면서까지 정확하게 주신, 선물같은 길이고, 이 길에서 보이는 저 아름다운 풍경도, 하나님이 정확히 나를 위해 보여주시는 선물같은 풍경이구나!
그 깨달음에서 오는 감동, 그 감동은 정말 느껴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보니, 작은 발로 앞서 걷는 인우를 따라가는 시간은 어느새 육아로 고단해진 내 영혼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어있기도 하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인우를 키우시고 나를 위로하신다.
아가야,
엄마는 너가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커가기를,
그 섭리를 온 몸으로 느끼기를,
그 속에서 너의 너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깨닫기를,
진리가 너의 온 몸에 깃들기를,
그리하여 너의 삶의 방향성이 올곧게 세워지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너를 자연으로 세상으로 데리고 나간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