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출근길, 터져 나오는 하품을 쩍쩍댐으로 뇌에 부족한 산소를 채워주며 바라보는 낯익은 풍경. 한강, 그리고 그 위를 잇는 대교와 건너편 빼곡하게 채워진 빌딩 숲의 모습이다. 나는 늘 그렇게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출근한다.
두 눈에 담기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강에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들이 부서지고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빌딩들의 새파란 창에는 반짝이는 한강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면 그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 또한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있지 않았다.
처음 전쟁터에 발을 들인 취업 이후, 회사 적응기를 거치고 다양한 일들을 접하며 업무를 배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여유롭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노하우도 나름 생겼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해보지도 않고 겁먹었던 일들도 언제부턴가 잘 해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 그랬지'하며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언제나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신입시절 갑작스러운 동기의 퇴사로 업무량이 배가 된 적이 있다. 같은 업무라지만 데일리로 작업하던 업무들이 증가하면서 하루하루가 벅차고 야근하는 날은 늘어만 갔다. 매달 빼곡하게 적혀진 스케줄표를 보며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때는 혼자서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일이지만 상사의 눈치와 시간의 채찍질을 맞으며 결국엔 어떻게든 업무를 수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정에 익숙해지자 이번엔 사수가 퇴사하게 되었다. 업무대행자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사수의 일이 나에게 넘어오게 되었는데, 그것들은 전혀 해보지 않았던 낯선 업무였다. 무엇보다 사원급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필요했다. 사수가 없어지니 부담감과 불안감이 커져만 갔고, 매일이 겁에 질린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일들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그 이상의 업무들을 맡아서 할 정도로 나름 주변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 경력에 이런 업무는 너무 부당한 거 아닌가' 생각하며 불만이 피워지고 있지만, 모든 회사원이 그렇듯 그런 개인의 의견에 회사는 들어주는 척은 해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원의 부당함 같은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 다가올 때 덜컥 겁부터 먹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분명 경험이 없는 백지 같은 존재라면 주어지는 책임감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성공과 만족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실패, 무력감,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나를 옥죄어 오고, 이내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만드는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확정 지을 수 없는 '만약'의 일이다. 내게 놓여진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길을 걸어야지만 그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경험이 쌓인 지금도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겁이 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보다 힘차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길렀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용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