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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Mar 13. 2020

지휘자와 연주자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 _에드 켓멀

당신은 지휘자인가요? 연주자인가요?

  오전 8시. 매월 첫 번째 월요일은 실적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각부서의 팀장이상 중역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중역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벌써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도 역시나 사장은 지각입니다. 모처럼 한자리에 보인 팀장이상 임원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옆 부서의 다음번 분기 계획부터 이번 주말에 예약한 골프 약속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웅성거리는 가운데, 간혹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때, 사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이 앉고 나서 조용히 따라 앉습니다. 짙은 밤색의 테이블. 그 가운데 사장이 앉고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 30명은 족히 되는 직원들이 자세를 바로 세우고 긴장한 듯 앉아 자신의 발표 순서를 기다립니다. 이번에 사장의 지시로 교체한 회의 테이블은 중압감이 들 정도로 긴 테이블 입니다. 사장과 가장 멀리 앉은 직원은 마이크가 없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거리입니다. 개발팀이 제일 먼저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팀장은 다음 분기에 내 놓을 예정인 제품의 몇 가지 아이디어를 보고하며 사장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잠깐!” 사장이 갑자기 말을 끊었습니다. 못마땅한 표정입니다. 회의실은 정적이 흐릅니다. 긴장한 개발팀장이 긴장한 듯 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꼴깍’ 물마시는 소리가 마치 스피커로 들리는 듯 합니다. 다들 긴장한 채 화면을 보던 몸을 돌려 사장을 바라봅니다. 사장은 직원들이 창의적이지 못하다며, 내가 특별히 창의성에 대해 교육을 해 줄 테니 잘 들으라고 합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말이지......”


  회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를 자동차에 달린 ‘끄덕이 인형’처럼 연신 고개만 끄덕입니다. 도대체 뭘 적는지, 열심히 필기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아무 말이나 적는 척 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저 높으신 분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아.. 회의가 싫다. 회사가 싫다. 사장이 싫다.’


  그저 빨리 퇴근해서 어제부터 새로 읽기 시작한 에드 캣멀의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읽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얘기하고 계신 저분도 진심으로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장님말씀이 제겐 빛인걸요. 무조건 옳으신 말씀이십니다요. (끄덕끄덕)


  회의시간에 말 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그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침묵하고 동조할 뿐입니다. 이게 회의인지, 훈계인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대체 이런 회의를 왜 하는 건지. 차라리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새로 입사한 팀장이 당차게 소신 있는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사장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를 호되게 다그칩니다.


 “이번에 새로 와서 아직 뭘 잘 모르나본데, 내가 이 바닥에서 수 십 년 동안 안 해본 게 없어요. 다 해봤어요, 다. 내가 그래서 얘기하는데,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몇 번 면박을 당하고 나면 호기롭던 새로운 팀장도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눈치만봅니다. 다들 한마음 한뜻입니다. 회의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장은 아이디어를 내보라며 다그치지만, 다들 고개를 숙입니다.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조직의 조직원들은 이미 의욕을 잃었습니다. 사장의 눈치만 볼뿐입니다. 조직문화는 살아 숨 쉬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도, 경직된 조직문화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바로 경영진의 철학에 의해서 말이죠. 경영자가 과거의 성공을 ‘운’이 아닌 자신의 ‘실력’이라 맹신할 때, 자신은 항상 옳고 남은 틀리며, 직원은 믿을 수 없으니 철저히 감시해야하고, 직원들이 무능하니 내 지시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믿고 행동할 때 조직문화는 경직됩니다.


   반대로 경영자가 자신의 성공에 겸손하고, 이는 직원의 덕분이라 생각는 조직은 상황이 다릅니다.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게 대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조직은 직원들과 경영자간의 소통이 원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인정할수록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문화에서 직원들은 서로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려 합니다.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즐거워서 일합니다. 자신 뿐 아니라 회사가 더 큰 성과를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일하게 됩니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창의적인 조직문화는 비록 쉽지 않은 여건에서도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는 직원들 간 활발한 소통과 연결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조직문화는 아무리 공개해도 해당 기업에 해가 될 것이 없습니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는 알려질수록 오히려 우수한 인재를 불러오는 선순환을 일으킵니다. 기능과 기술은 얼마든지 복제하고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쉽게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창의적인 조직문화는 해당기업이 가진 유일하고 훌륭한 자산이 됩니다.


  에드 캣멀은 자신의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에서 그가 갖고 있는 창의성에 관한 거의 모든 자산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대학원, 연구소, 루카스 필름, 컴퓨터 판매상으로 시작한 픽사를 거쳐 잡스를 만나고, 디즈니의 사장으로 지내면서 겪었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어떻게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갔는지 친절히 얘기합니다. 디즈니의 변화와 성공에 이르는 방대한 스토리는 한편의 영화처럼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까지 모두 공개해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유용한 내용이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이 책은 반드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같은 창의적인 산업이 아니더라도 제조업과 같은 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 적용이 가능한 ‘실전 경영서 지침서’ 입니다.


  캣멀은 창의성이 ‘자유로운 토론’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합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유능하며, 그들은 기본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 할 거라는 순수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회의라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누구라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밑 바침 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자신과 직원모두 그 역할이 다를 뿐, 수평적인 관계라는 캣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에드 캣멀의 “장의성을 지휘하라”는 경영인이라면 모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밑줄도 쫙쫙 그으면서 여러 번 읽기를 권합니다. 이왕이면 직원들에게도 나눠주고 함께 더 나은, 더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라 강요하지 마십시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내지 마십시오. 창의성을 개발하지 마십시오. 그저 ‘창의성을 지휘’하시기 바랍니다. 기업을 이끄는 당신은 ‘지휘자’ 입니다. ‘연주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모든 악기를 연주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연주는 직원들의 몫입니다. 바로 당신이 채용한 유능한 직원들이 훌륭하게 해낼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믿고, 그들이 더 잘할 수 있게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나아갈 원대한 목표를 알려주고, 서로의 연주가 엉키지 않도록 가끔씩 조율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저 당신은 지휘자로서 조언하고, 지원하면 됩니다. 캣멀의 말처럼 ‘창의성을 지휘’하는 경영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발 창의성을 "지휘"하세요. "연주"하려 하지말구요.



덧.


1.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이제 서야 알게 되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제라도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에드 켓멀과 디즈니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2.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캣멀과 잡스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감동적인 스토리 덕분에 잡스가 더욱 그리웠습니다. 캣멀이 진심으로 잡스를 좋아하고, 존경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는 캣멀처럼, 잡스처럼, 존 래스터처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서평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책을 써 주신 에드 캣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책의 내용을 발췌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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