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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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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Dec 02. 2023

그래, 추억하나 건졌으면 됐지 뭐.

한겨울에 차박이라니!

차박이라고?

12월에 차박이라니. 호텔도 펜션도 아니고, 심지어 글램핑도 아닌 차박이라니. 캠핑도 해본 적 없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냥 차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유명 렌터카 회사에서 이벤트로 진행하는 차박이라서 그냥 몸만 가면 된다고 했다. 텐트를 포함한, 캠핑장비, 이불과 전기장판까지 구비되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 둘과 함께 하는 차박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챙길 짐이 많았다. 아이들이 행여나 춥지는 않을까? 괜히 감기 몸살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집에서 덮던 두꺼운 이불과 전기장판도 챙겼다. 그 밖에도 하룻밤 동안 먹을 음식과 갈아입을 옷, 두터운 겨울 패딩도 여벌로 챙겼다. 분명 몸만 오라 했는데, 짐은 걱정이 커질수록 몸집이 불어났다. 어느새 트렁크가 한가득이다. 나는 레고를 조립하듯 짐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내가 준비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데.. 밖에서 밥은 잘 먹으려나? 깨끗하기는 할까?' 나는 캠핑의 즐거움보다는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었다.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차박으로 빌린 새 차가 넓고 좋아서 신난다고 가는 내내 즐거워했다. 차박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나는 걱정 한가득 안고 출발했다. "그래, 일단 가 보고, 정 안 되겠으면 중간에 다시 집에 오자!"


다행히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내내 따뜻했던 날씨가 하필 우리가 도착하는 오후부터 급격하게 추워졌다. 나는 아이들을 유심히 챙겼다. 춥지 않으냐고 수시로 물었다. 캠핑장 바로 옆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해맑게 대답했다. "아니요! 너무 재밌어요!" 차박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텐트에서도 충분히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이었다. 개별 침낭까지 준비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침구 상태도 청결했다. 캠핑이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나는 아이들과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라인을 밀어주고 당겨주었다. 함께 뛰고, 소리 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즐거웠던 모양이다. 웃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다. 아마도 아이가 바라본 내 모습 역시 예뻤을 것이다. 나 역시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


산속에서 낮은 쫓기듯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텐트에서 먹는 저녁은 생각보다 아늑한 맛이 있었다. 물론, 집보다 춥고 불편하지만, 집이나 식당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내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저녁도 잘 먹었다. 행여나 추운 곳에서 먹다가 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음 날까지도 괜찮았다. 부모의 걱정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저녁을 정리하고 나는 텐트 밖에서 화롯불을 피웠다. 텐트 안에서 놀던 아이들도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마시멜로와 고구마를 구웠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빨강 덩어리가 될 때까지 아이들은 자리를 지켰다.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아빠 때문에 이런 화롯불도 낯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마시멜로를 굽다가 까맣게 태웠을 때도 까르륵 웃으며 즐거워했다. 잘 익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너무 뜨거워 땅에 떨어뜨렸을 때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었다. 산속 어둠은 입김을 길게 뽑아낼 정도로 추웠지만, 그날 우리는 빨갛고 따뜻했다. 아이는 빨간 불 곁에 한참 동안 같이 있었다. 아마도 아빠 무릎에 앉아서 쬐는 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내 사랑이 아이의 등을 따뜻하게 덥혀주기를 바랐다. 아이는 불멍이라도 하는 듯 가만히 화롯불을 바라봤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분명 추운 겨울이데, 따스했다.


나는 차박이라 했을 때 너무 걱정했다. 날도 추운데, 그냥 낮에만 밖에서 놀고, 잠은 집에 와서 자면 안 되느냐고 얘기할 정도였다. 반면, 아이들은 차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가고 싶어 했다. 마시멜로를 꼭 구워 먹어보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하기까지 했다. 이미 다 차려진 차박이었지만, 은근히 신경 쓸게 많았다. 옷과 이불은 물론, 물과 밥도 챙겨야 했다. 씻는 것도 불편했고, 잠자리도 낯설었다. 하지만, 함께 하니 할만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나 역시 마냥 행복했다. 조금 귀찮고, 번거롭고, 돈이 들면 좀 어떠랴.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나 역시 이렇게 행복했는데 말이다.


새로운 놀이터에서 집라인을 타며 까르륵 웃던 그 모습은 그날 차박을 떠났기 때문에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던 빨간 장작 곁에서 '여기 와서 너무 행복하다' 말하던 아이의 눈빛을 어찌 거실에서 볼 수 있겠는가? 그래, 그거면 됐지 뭐. 좀 힘들었으면 어떠한가? 행복한 추억 하나 건졌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충분한 정도가 아니다. 나는 생각했다. 더 많이 떠나야겠다고. 더 많이 경험하게 해 줘야겠다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줘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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