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일렁인다.
퇴근길에 차를 몰아 보문호수로 갔다. 나는 가는 동안 울었다. 아빠와 헤어짐을 애써 참던 아들의 모습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가끔씩 만나는 아빠와 헤어지는 아픔. 그것은 9살 아이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무거운 슬픔일 것이다. 그럼에도 애써 참아내는 모습이 나는 너무 가슴 아팠다. 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이별을 참고 있는 녀석에게 벌겋게 달아오른 아빠의 슬픔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제 겨우 9살인데.. 녀석은 애써 웃으며 “아빠 잘 가~ 다음에 또 만나~”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나는 목구멍이 좁혀진 것처럼 그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얼마 전 제주에서 경주로 직장을 옮겼다. 그 때문에 가족과는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자주 갈 수는 없기에, 한 달에 두어 번 아이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갈 때마다 어찌나 쑥쑥 자라 있는지. 아이들의 시간에 아빠가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공항으로 이동해서 비행기를 타고 금요일에 도착하면, 토요일은 너무 피곤하다. 이제 좀 놀아볼까 싶으면 떠날 시간이다. 만나는 순간부터 이별을 준비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이미 슬프다. 만나면 예정된 이별 때문에 슬프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이미 그립기만 하다. 그 기간에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잠든 아이들 곁에서 소리 없이 베개를 적셨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면 월요일은 너무 힘들다. 또다시 시작된 회사생활도 힘들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다. 헤어진 지 고작 하루뿐인데, 하루가 몇 달처럼 느껴진다. 나는 관짝 같은 원룸대신 호수를 찾았다. 경주에는 보문호수가 있다. 호수 위를 지나는 바람은 자유롭다. 막힘도, 방해도 없다. 나는 숨이 쉬고 싶었다. 책임과 의무로 점철된 삶 속에 바람 한점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는 일상이었다.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호수에 가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수에 가는 동안 아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이미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힘들 때면 나는 여전히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언제나 내편이었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나는 아직 어른이 덜되었나 보다. 아이들과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슬픔을 억누르지 않았다. 흘러넘치는 그리움을 막지 않았다. 억지로 참는다고 해도 기어이 넘쳐흐를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호숫가에 앉아 울다가, 다시 걷다가, 숨이 찰 때까지 달리기도 했다. 답답한 가슴은 숨이 가득 찼기 때문이리라. 호수에 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답답한 가슴을 어디 시원하게 말할 곳도 없었다. 이 넓은 호수, 그보다 더 넓은 세상에 내 편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덩그러니 툭 떨어진 기분. 호숫가의 비친 야경이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라 눈물 때문인 것 같았다. 가득 찬 숨을 토해낸 자리에 그리움이 쌓인다. 월요일 밤 보문호수에 그리움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