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플레처 지음(박미경 옮김)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기억을 걷는 시간> song by 넬
유난히 힘든 하루가 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시달리는 날이 그러하다. 퇴근 무렵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단내는 달콤한 냄새가 아니라 고단한 냄새인 것만 같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한숨 속에는 힘들었던 하루의 고단함과 그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뒤 섞여 있다.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나는 차에 올라타 잠시 눈을 감는다. 나를 위로해 줄 노래를 틀고, 시동을 건다. '기기기긱 털썩' 이런 날은 왠지 엔진 소리마저 서글프다.
이렇게 힘들고 지친 날에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 할머니가 보이는 것만 같다. 그날의 퇴근길은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는 그 노래’처럼 할머니를 추억하는 시간이 된다. 이름 그대로 ‘기억을 걷는 시간’이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그러니 아무리 그리워한들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다. 소용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언제라도 볼 수는 있다. 역설적이지만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지금, 사실상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집이나 휴대폰 속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보고 웃고 계신다. 하지만, 일방통행이다. 주소를 몰라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다. 그래도 위안은 된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씩 할머니와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할머니를 보내지 못한 것만 같다.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고 싶다. 지금도 전화를 드리면 마치 어제처럼 내 안부를 물어보실 것만 같다.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다. 원하던 목표를 이룬 것도 제법 있고, 그토록 안겨드리고 싶었던 아이도 태어났다. 할머니가 없던 지난 10년 동안 나는 그럭저럭 잘 견뎌내며 살아가는 중이다. 할머니에게 해줄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들려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다. 아니, 어디선가 이미 듣고 계신지도 모르겠지만,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할머니 덕분에 힘든 시절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그리고 할머니도 어쩌면 조금은 내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만 할머니를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즐겁고 기쁜 일, 자랑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경치에 감탄할 때도 할머니가 그리웠다. 이 좋은 걸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만 잘 사는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다.
이러한 죄책감은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지금의 이런 행복을 함께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이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이다. 장례를 치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해야만 했을 당시에는, 사실 너무 힘들었다. 무너지려는 삶을 억지로 버텨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더 오랜 기간 마음껏 슬퍼할 수 없음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조차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구멍이 뻥 뚫린 듯 외로운 삶이었고, 허전한 행복이었다.
때가 되면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틈나는 대로 납골당을 찾아갔다. 생전에 즐겨 드시던 음식을 가져갔다. 대답 없는 사진을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기쁘고 즐거운 일로 가족과 대화를 나눌 때 역시, 할머니는 늘 그 대화 속에 등장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한 자리를 할머니께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고인이 된 할머니는 나를 향해 한결같은 웃음을 보여줄 뿐, 그 어떤 위로도, 칭찬도, 농담도 건네지 않았다. 즐거운 자리를 기념하던 도중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웠다. 기억은 분명 희미해질 텐데, 언젠가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기억을 걷는 시간’이 ‘기억해 낼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뀔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기억을 담아두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다짐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할머니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있었다. 영화 <코코>에서는 죽음과 소멸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은 죽었을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라지는 것’이라고. 맞는 말 같다. 그리고 만약 그 말이 맞는다면,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었다. 할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추모해 준다면, 어쩌면 할머니는 영원히 살아계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말이 맞는다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할머니를 기억해 준다면, 지금의 미안함, 즉 내가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았다. 기억이란 놈은 마치 잔잔한 호수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같았다. 잡힐 듯 쉽게 잡히지 않았다. 기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물결 때문에 오히려 심란한 마음으로 힘들기도 했다. 기억이란 놈은 건져 올려지는 순간 이미 달라져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펄떡이는 것 같았다. 글로 표현된 기억은 더 이상 잔잔한 수면 아래의 평화로운 추억이 아니었다. 왜곡되고 미화되었다. 더구나 내가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을지, 되려 못난 글이 되지는 않을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 글로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면, 기억을 꺼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할머니의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지 않은가? 중대한 역사적 사실도 아닌데 좀 왜곡되면 어떠하고 미화되면 또 좀 어떠한가? 그리고 좀 못난 글이라 해도 무슨 상관인가? 설령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평생토록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동안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또 읽으며,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일단 써보자! 때마침 천안에서는 지역의 기억을 기록하자는 취지로, 사진과 수필을 공모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할머니와의 기억을 글로 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공모전이라는 환경설정으로 나는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두었다.
수십 번은 고쳐 쓴 것 같다. 쓰는 동안 몇 번이고 울컥해서, 쓰기를 멈추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 공모전은 천안의 역사와 추억을 담아낸 사진을 함께 제출해야 했는데, 할머니의 사진 중에는 딱히 적당한 것이 없었다. 나는 집에서 찍은 할머니 사진을 한 장 골랐다. 내 교복을 배경을 방에서 찍으신 할머니의 독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에는 덩그러니 할머니만 담겨있다. 천안의 역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내가 써낸 글의 내용과도 그다지 관련성이 없는 사진이었지만, 할머니의 옅은 웃음이 담겨 있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힘들었지만, 결국 글을 완성했다. 처음으로 써낸 할머니의 기억이었다. 처음으로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할머니의 기억이었다. 나는 공모전에 제출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덕분에 나는 온전히 할머니의 기억을 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했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 <우리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문학이라는 ‘발명품’을 다루는 책이다. 작가는 신경과학적 근거를 통해 문학의 다양한 효용성을 차분히 검증한다. 실제로 작가는 문학과 신경과학을 전공한 저명한 학자이다. 그러니 이 책은 문학과 과학이 한 데 어우러진 놀라운 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자식 ‘햄넷’을 잃을 슬픔을 문학을 통해 치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문학작품이 바로 ‘햄릿’이다. 놀라웠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처절한 슬픔을 이겨냈다. 그는 작품 속에서 가혹한 슬픔을 인정하고, 행복한 순간을 곱씹으며 슬픔을 치유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 같다. 할머니의 기억을 담는 과정을 통해 나는 처절한 그리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행복한 기억을 꺼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슬프면 울기도 하고, 그리울 때면 한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비록 내 글이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비슷했던 것 같다. 내 글은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주었다. 글을 쓰는 과정은 마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았다. 나는 글을 통해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그리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이렇게 글로 써줘서 고맙다고, 네 덕분에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더 생겨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괜히 나 때문에 너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할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는 죄책감이 아난 책임감으로 그리워하려 한다. 미안하기 때문에 슬퍼하기보다는, 고맙기 때문에 힘을 내보려 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할머니였으니, 남은 내 삶에는 내가 할머니를 존재하게 해주고 싶다. 남은 내 삶을 조금 떼어 할머니의 기억을 담아내는 데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천안 공모전 이후로도 한 편의 글을 더 쓰긴 했다. 아직은 공개할 용기가 없어서 서랍에 담아두었지만, 이제는 세상에 내놓고 싶다. 비록 내 글이 문학은 아니지만, 문학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슬픔의 해결’이라면, 내 슬픔도 글에 담아 해결하고 싶다. 그렇게 슬픔을 비워낸 자리에 희망을 가득 담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어쩌면, 문학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더 많은 문학을 접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글을 통해, 더 많은 문학을 통해 작품 속 다양한 슬픔에 공감하고, 거기에 투영된 나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조금 덜 슬퍼하기 위해, 아니, 조금 더 슬퍼하기 위해. 어쩌면 결국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할머니의 글은 공모전에 입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운이 좋았다. 할머니의 글은 여름에 썼다. 공모전의 글 역시 할머니와의 여름 추억 중 하나를 꺼내어 담았다. 아마도 그 글 덕분에 적어도 한 명, ‘편집자 양반’께서는 우리 할머니를 잠시라도 떠올려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소중한 ‘한 명’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금 이 글이 괜찮았다면, 한 번쯤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문학이라는 발명품이 어찌나 감사한지... 또 문학 덕분에 이렇게 만나게 된 당신은 또 어찌나 고마운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