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비밀_몬티 라이먼 지음(박선영 옮김)
유익하다. 재미있다. 그리고 따뜻하다.
책 <고통의 비밀>은 고통의 오해와 진실, 그리고 비밀을 알려주는 책이다. 작가인 ‘몬티 라이먼’ 박사는 2020년 영국 왕립의학협회 통증 분야 논문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실제 의사'다. 그렇다 보니, 작가는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메커니즘을 의학적으로 접근해서 표현한다. 전문용어가 다수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작가는 원시인이나 우리의 실생활을 빗대어 가능한 쉽게 설명해 준다.
나는 그동안 고통을 오해하고 있었다. 고통을 상처의 정도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아니었다. 고통은, 그리니까 통증은 상처에서 뇌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감지’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통증은 그냥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통증을 '만드는' 것이며, 통증이 존재하려면 우리의 의식적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즉, 뇌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이는 작가가 통증을 바라보는 대 전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는 통증이 뇌가 ‘만드는’ 것이라면, 뇌가 통증을 조금 ‘덜 만들어 낼’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작가는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최면술부터 최첨단 가상현실까지 다양하지만, 전부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이 유익했다. 통증을 배워 나가는 과정을 즐거웠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책이 그 어떤 책 보다 고통에 관해 유익하기 때문일 것이다.
통증은 우리 몸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거나 손상이 일어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다. '실제로' 위험에 처해 있는지 혹은 손상이 되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통증은 우리 몸의 보호를 촉구하는,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다. 통증은 몸을 보호하라고 의식적 자아에 요구하는 경호 팀의 명령이다.
<고통의 비밀>
#이 책은 재미있다
아무리 유익한 내용도 전공서적처럼 딱딱하다면 읽어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글을 아주 잘 쓴다. 서문부터 마지막 챕터까지 물 흐르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한 챕터를 마무리할 때, 다음 챕터의 예고편(?)을 아주 살짝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기대를 이끌어낸다. 어려운 의학용어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 다양한 논문의 사례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빼놓지 않는다. 일상의 평범한 경험에서 놀라울 정도의 통찰을 이끌어 내는 작가의 글솜씨를 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너무 고통을 잘 느끼는 사람처럼 고통에 관한 극단의 환자의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평소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실제 사례를 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가는 분명 훌륭한 의사이겠지만, 실력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글솜씨를 엿볼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해 본다. 고통을 사랑과 연결 짓어 설명한 이 문장에서 나는 실제로 기립박수를 쳤다!
통증은 안전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가라앉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심해진다. 우리는 통증에 대한 이 같은 현대적 이해를 바탕으로 약자와 소외 계층을 보살피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통증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친다. <고통의 비밀>
만약 내가 이 책을 추천한다면, 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책 자체의 재미 때문일 것이다. 멋진 문장만큼 내 손을 책에 묶어 두는 것도 없으니까.
# 이 책은 따뜻하다.
왠지 ‘몬티 라이먼’ 박사는 따뜻한 의사일 것 같다는 생각에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 봤는데, 세상에 생각보다 너무 젊은 분이어서 깜짝 놀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쩐지 저자는 하얀 턱수염이 멋들어진 백발의 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이 조금이나마 통증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기를 바란다. 이 책을 계기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진실을 퍼뜨려주기를,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고통의 비밀>
위문장은 통증으로 고통받는, 특히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고통의 오해와 진실에서 출발한 이 책은 우리가 왜 통증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책 중반부쯤에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불필요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불안한 감정, 때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불필요하게 아프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은 정말이지 불필요한 통증이다. 하지만, 이런 가짜 통증도 지속되면, 뇌는 그러한 통증을 진짜처럼 느끼게 된다. 실제로는 신체기능에 별다른 문제가 없음에도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없는 통증을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저, 통증을 덜 느끼도록 해주는 약을 처방해 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진통제다. 진통제는 거대 제약회사의 과도한 영업과 일부 양심 없는 의사들에 의해 과하게 처방이 남용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만성통증 환자들은 진통제에 중독되어 버린다.
불필요한 통증을 줄이는 일은, 우리 인류 전체의 통증을 줄이는 일이며, 인류 전체의 행복을 늘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만약, 이 책이 통증을 알리고, 통증을 줄이고, 그래서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행복을 채울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진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저자는 이러한 희망을 잃지 말자고 얘기하는 것 같다. 즐거움이 넘치는 곳도 더 나은 세상이겠지만, 덜 아픈 곳 역시 분명 더 나은 세상일 것이다.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이 책으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분명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희망은 단순히 희망적인 생각이 아니다. 지금은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고통의 비밀>
이 책 <고통의 비밀>은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따뜻하다. 지식인으로서 책을 써야 한다면, 이런 이유였으면 좋겠다. 혹은, 그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야 한다면, 이 또한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따뜻한 책일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무엇을 망설이는가? 아주 높은 확률로 당신은 이 책에 만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