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리스트 _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 지음 (김지현 옮김)
(2022. 3. 4에 썼던 글을 다시 써보았습니다.)
오전 10시. 문자 한 통으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확진입니다.” 이 짧은 문장 하나에 가족들은 말이 없어졌다. 글자의 선언적 무게가 이토록 버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미리 전자 문진표를 작성하고, 근처 보건소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남은 가족들도 PCR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설마 했지만, 어차피 확진이라면,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빨리, 온 가족이 다 함께 겪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자가 검사 키트에서 양성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쩌면 잘못된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검사결과를 마주하는 것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과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하루 만에 집 밖을 나섰는데, 가야 할 곳이 또다시 보건소라니.
온 가족이 PCR 검사를 받았다. 가장 걱정했던 다섯 살 난 둘째 아이는 오히려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반면, 첫째 아이는 시작하기 전부터 많이 무서워했다. 지난밤 내내 고열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PCR 검사에서도 울고불고, 참 많이도 두려워했다.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이는 내 마음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아프지 않을 거라고, 금방 끝날 거라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독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안했다. 콧속으로 들어가는 날카로운 막대기를 막을 수 없어서 미안했다. 고통과 두려움에 발버둥 치는 아이를 힘껏 억누르고 오히려 움직이지 말라며 다그칠 수밖에 없어서 미안했다. 그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부모라서 너무도 미안했다. 검사를 마친 뒤, 나는 울고 있는 그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시작인데, 어떡하니? 우리..'
꿈에도 그리던 제주 살이를 해보겠노라고 마음먹은 2020년 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코로나도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벌써 2년 넘게 친지를 만나지 않았다. 가족여행은 물론, 육지에도 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는 제주를 떠나 육지에 다녀오면 반드시 PCR 검사를 받도록 규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조심 또 조심했다. 나는 이따금씩 출장으로 육지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동안 제주를 떠난 적이 없었다. 말 그래도 섬에 갇혀 살았다. 하지만, 코로나는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한 순간에 우리 가족을 ‘확진자’로 만들어버렸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와 오미크론, 이를 예상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우리 가족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연일 20만 명에 달하는 감염 확진자 수를 보며,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걸리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비켜가길 바랐다. 내가 꿈꾸는 미래에는 코로나 같은 고난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백신을 맞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마스크를 잘 끼고 다니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코로나는 곧 끝날 거니까, 그때가 되면 우리 마음껏 놀러 다니자고,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자고. 그랬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차례로 아파하고 있다. 고열과 인후통, 몸살과 오한을 동반한 증상이 사람을 바꿔가며 진행 중이다. 마치 악령이 몸을 바꿔 괴롭히는 것만 같다. 우리 가족이 확진자가 되다니.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미래가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런 생각마저 든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란 말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당사자인 나는 이미 확진자라서, 가족은 검사 후 결과 대기 중이라서 격리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보호자도, 사실상 아무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말이 좋아 자가 ‘격리’지, 자가 ‘감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집은 말 그대로 격리 수용소가 되었다. 병원에 갈 수도, 약을 받아올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집에 있던 비상약으로 고열을 근근이 견뎌낼 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고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가장 먼저 증상을 보인 둘째 아이는 다행히도 이제는 별다른 증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열도 오르지 않고, 밥도 잘 먹는다. 천만다행이라며 감사할 따름이다. 반면, 다른 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앓아눕기 시작했다. 그래도 씩씩한 둘째 아이, 작은 방에서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하얀 종이와 펜을 가져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종이에 한참을 끼적거린다. 아직 글자를 쓸 줄 모르는 다섯 살 난 딸아이는 이렇게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주었다.
“뭐라고 쓴 거야?”
나는 고열에 반쯤 감긴 눈으로 소파에 누워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 아프지 마세요. 오빠 빨리 나아서 나랑 놀자. 엄마, 아빠, 오빠 사랑해요.”
펜으로 또박또박 짚어가며 설명해 주는 딸아이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고통이 사라진 듯했다. 특히, 딸아이가 한 구석에 그려놓은 ‘하트’를 가리키며,
“이건 아빠를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니까, 내가 이거 접어서 엄마 몰래 아빠한테만 줄게, 알았지?”
그러고는 이내 편지를 접는 딸아이.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일 먼저 아팠을 때에도, 그토록 막아주고 싶었던 PCR 검사를 받게 했을 때도, 자기를 뺀 나머지 식구들이 모두 아픈 상황에서도 언제나 씩씩한 딸아이였다. 누구로부터 옮겨왔는지,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 책임을 따지는 일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이미 지난 주말 한 차례 열 감기를 겪은 딸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아팠던 게 차라리 코로나였기를, 딸아이만큼은 이미 지나갔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예측은 무의미했다. 지금의 고열이 얼마나 지속될지, 또 어떤 증상이 찾아올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그저 열이 심하게 오르면 해열제를 먹었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졸리면 잠을 자며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속이 불편해 먹지 못하겠으면 밥 대신 물을 마셨다. 지금 우리 가족은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주어진 현실에 대응할 뿐이었다.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내일이 아닌 오늘에, 미래가 아닌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분명 머지않아 우리 가족은 완치가 될 것이고, 언젠가 코로나도 끝나겠지만, 그게 언제인지를 예측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비록 지금의 시련이 예측하지 못한 고난의 미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우리는 이미 며칠 째 가족끼리만 그것도 집 안에서만 붙어 지냈다. 휴가 기간에도 이렇게 온종일 붙어 있던 적은 없었다. 아내는 아픈 와중에도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정성껏 챙겼다. 아내와 나는 진통제를 먹고 잠시나마 몸 상태가 괜찮아질 때면, 누구랄 것도 없이 나서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겼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와 요리를 하고 동화책을 읽어줬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힘들어하면, 주저 없이 쉴 것을 권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다. ‘아픈 부모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뜻밖에 제법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 어린 둘째 아이는 고열로 누워 있는 오빠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자 시샘을 부리기도 했지만, 오빠가 해열제를 먹고 자는 동안, 오빠가 좋아하는 장난감 로봇을 오빠 곁에 뉘어주기도 했다. 해열제 효과로 잠시 기운을 차린 오빠와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다가도 ‘오빠는 아직 아프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자기가 대신 먹어 치워 주는 배려(?)를 보여주기도 했다.
걱정과 응원의 메시지도 이어졌다. 사무실에서는 출근하지 못한 나를 대신해 동료들이 내 업무까지 도맡아 처리해 주었다. 단톡 방에서도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짧은 몇 마디 글에서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온정의 손길도 이어졌다. 근처에 살고 있는 지인은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라며 든든한 후원군을 자처했다. 밑반찬과 식료품, 빵을 두고 가기도 하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주며, 장을 대신 바다 준 지인도 있었다. 하나같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도와줄 것이 더 없는지 수시로 물어왔다. 하긴, 그들이 곤경에 처했다면 우리 역시 그들처럼 무엇이든 도와주었을 것이다.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다. 내일 당장 코로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전염병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가 불안한 건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예측도 부질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오히려 미래를 든든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어떤 미래가 찾아온다 해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언제든 기꺼이 내 몫을 대신해 줄 동료가 있고, 위로와 응원을 전해줄 사회적 관심이 있으며, 그래도 아직은 따뜻한 손길을 보내줄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한 이웃 중 하나가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렇게 힘들 때에도 자신보다 서로를 챙기고 위로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줄 해독제 또한 늘 존재해 왔다. 바로 사람의 형태를 하고 말이다. 지금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그 어떤 암울한 미래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은, 칼 세이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코로나, 마치 태풍을 대하는 듯, 이제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전염병도 분명 끝이 있을 것이다. 지독한 감기처럼 비록 고된 과정일지언정, 언젠가 반드시 끝날 것임을 난 믿는다. 병에서 회복되고, 자가 격리가 끝나면 온 가족이 함께 산책을 하고 싶다. 바닷가를 걷고, 오름을 걸으며 그동안 답답했던 일상을 벗어던지고 싶다. 아마도 미래의 어느 날이 될 그 산책은 이전의 산책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일상이라는 소중함, 가족이라는 감사함이 더해졌을 테니 말이다. 이번 일로 우리 가족은 한 층 더 견고하게 연결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 사회 역시 조금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바이러스를 이겨내야만 생긴다는 ‘항체’는 병에 대한 저항력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든든함까지 포함하는 말인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어떤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건강한 미래만을 꿈꾸고 싶다. 먼 길을 떠나려면 짐 가방이 가벼워야지. 나는 미래로 가는 여정에 ‘믿음’ 하나만 챙겨가려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 어떤 미래에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 그 하나만을 말이다. 미래 역시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갈 것이기에, 그 ‘미래’라는 곳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멋대로이겠지만, 그럼에도 미래는 우리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미래의 모습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 불안한 모습 때문에 미래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미래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떠할까?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분명 그곳 역시 따뜻한 손길과 희망찬 용기가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당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이러하다. 내가 따뜻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기를,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그런 가족을 꾸리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를 위해 나는 오늘도 그런 삶을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그런 가족을 꾸리고, 그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말이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미래는 이미 오늘에 도착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꿈꿔야 하는 건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인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방 없이 진통제(타이레*)를 이렇게 많이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진통제는 비대면 진료를 받기 전 유일한 선택이었다. 진통제를 먹으면 잠시 나아지는 것 같지만, 그 자체로 병이 낫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약효가 사라지면 어김없이 열이 오르고, 컨디션이 나빠졌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에는 결국 병이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그 기간을 마냥 참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 몸이 스스로 이겨낼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어쩌면 진통제는 일시적인 고통의 경감을 통해 그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담당해 주는 것 같다. 하긴, 사실 그게 제일 절실하긴 하다. 아픈 사람에게 아픔을 덜어주는 것 말고 당장 필요한 게 또 뭐가 있겠는가? 너무 아프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고통이 잠시 자리를 비워줘야 음식도 먹고 싶고,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처럼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실행한 활동들이 모여 결국 병을 낫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진통제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뿐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 같기도 하다.
하루 만에 진통제 10알이 금세 바닥났다. 그렇다고 해서 병이 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쓸모는 있었다. 진통제 덕분에 잠시라도 고통이 자리를 비울 때면, 무언가를 먹기도 했고, 공부도 했다. 책도 읽었고, 이렇게 글도 썼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진통제 같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의 천진한 행동 그 자체는 사실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통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희망찬 미래를 꿈꿔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래를 꿈꾸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친 현실일수록, 잠시 현실을 떠나 미래를 생각해 보는 일은, 통증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처럼,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고된 현실일수록 진통제가 필요하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을수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밤하늘의 별빛은 그 자체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개를 숙여 진창에 빠진 발을 보고 있노라면 ‘밤하늘의 별빛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밝은 미래를 꿈꿔야 한다. 지친 오늘을 견뎌냈던 훌륭한 자신의 모습을, 이를 통해 더 나아질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훌륭한 진통제가 될 것이다. 잠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자신을 가꾸고, 주변을 정리하다 보면 밤하늘의 별빛은 어느새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삶은 ‘과정이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부질없는 이유는 ‘예측’에 있다. 예측은 맞고 틀림을 수반한다. 이와 달리 미래를 꿈꾸는 일은 고정된 정답이 없다. 자신의 이야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목표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스토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스토리에 어울리는 배우도 캐스팅하기 나름이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책 <퓨처리스트>에서는 이를 ‘퓨처캐스팅’이라 이름 지었다. 당신이 원하는 미래,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당신의 스토리에 달려있다. 미래의 당신은 오늘의 당신이 캐스팅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달리, 미래를 꿈꾸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 덧
책 <퓨처리스트>는 인텔의 수석 미래학자가 펴낸 자기 계발서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달성하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작가는 미래학자이면서, SF소설 작가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쓴다. 특히, 작가는 책의 마지막을 열린 결말로 끝맺는다. 마치 우리의 미래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글을 마무리한 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꿈꾸는 이야기부터 써봐야 한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캐스팅하고 싶은가? 당신이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그 이야기는 저 먼 미래에서 오늘의 당신 곁으로 쏜살같이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현실이 되어 당신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야기를 쓰고 오늘에 앉아 미래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다시 묻겠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
퓨처캐스팅을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이 희망하고 의지한 모습의 미래를 이룰 수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나와 당신 같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매일 새로 만들어진다. <퓨처리스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