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노라> : 이야기를 빚는 기술

by 무비뱅커

아노라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까지 휩쓸며 5관왕에 올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작품인 만큼, 아카데미의 성과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편집상 수상만큼은 의외였다. 나는 후보작 중 에밀리아 페레즈를 제외한 모든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본 콘클라베의 편집상 수상을 예상했다. 그렇다면 내가 놓쳤고, 아카데미가 발견한 아노라의 편집적 성취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두드러지는 편집 기법은 아노라의 1막(신데렐라 스토리를 닮은 로맨틱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섹스 장면의 배치다. 초반에는 이반과 애니의 관계가 자유롭고 활력이 넘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둔탁해지고, 컷과 컷 사이의 리듬이 어긋나며 그녀의 감정적 피로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반복되는 동일한 행동이지만,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띤다. 이는 인물의 내면적 변화를 서사적으로 체화하는 방식이며, 현재의 감각을 조금씩 변형해 관객이 그 변화를 체감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또한, 대사보다 먼저 들리는 다음 장면의 사운드는 이러한 비연속성을 더욱 강조하며, 영화의 감각적 리듬을 형성한다.


컷팅 속도의 변화 또한 아노라의 편집에서 중요한 요소다. 초반, 애니와 이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부드러운 컷 연결과 롱테이크를 활용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도록 한다. 그러나 관계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컷의 길이가 짧아지고, 빠른 점프컷이 도입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특히 2막(블랙코미디 소동극)에서 이반이 홀로 도망간 후, 애니가 남겨진 장면에서는 빠른 컷팅, 핸드헬드 촬영, 클로즈업이 결합되면서 관객 역시 그녀의 불안과 절박함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감정의 흐름이 흔들릴 때마다 편집의 속도와 호흡이 바뀌고, 관객은 이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반의 프러포즈 장면 또한 편집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카메라는 우측으로 천천히 패닝 하며 롱테이크로 이 순간을 포착한다. 이반과 애니의 표정을 교차 편집하며 심리적 긴장을 강조하는데, 특히 이반이 무릎을 꿇는 장면은 외화면으로 배치된다. 화면에는 오직 애니만 보이며, 이반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다시 잡힌 이반의 얼굴은 진지한 듯 보이지만, 정작 애니를 응시하지 않는다. 또한, 애니의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화면 전환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그녀의 심경 변화를 더욱 부각한다. 이러한 편집적 선택은 단순한 청혼 장면을 넘어, 두 사람 관계의 불안정성과 감정적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결혼 후 저택 발코니에서 키스하는 장면에서의 줌아웃 편집 역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프레임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카메라가 점차 멀어지면서 주변 환경이 그들을 삼켜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애니가 꿈꿨던 신분 상승이 실상은 더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초래했음을 암시하며, 이후 전개될 갈등을 예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롱테이크의 활용 역시 편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반의 프러포즈 장면이나 2막에서 벌어지는 3인방과 애니의 충돌 장면에서 롱테이크가 사용되며,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게 만들고,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편집 감각적 요소는 사운드와 결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전반부에서는 강렬한 음악과 빠른 컷팅이 결합되며 감각적 과잉 상태를 연출한다. 그러나 후반부, 특히 엔딩에서는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아노라와 이고르의 대화, 그녀의 울음소리, 그리고 주변의 백색소음만 남는다. 이러한 편집적 선택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며, <아노라>가 한동안 회자될 만한 엔딩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영화의 편집은 단순한 기술적 조작이 아니다. 이는 영화의 감정을 구축하고,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하며, 궁극적으로 관객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을 조율하는 핵심적인 내러티브 장치다. 반복되는 장면과 컷의 속도 조절, 점프컷과 비연속적 편집, 다큐멘터리적 감각과 사운드 디자인의 결합은 <아노라>의 본질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기에 <아노라>의 편집은 단순한 장면 연결이 아니라, 영화의 감각적 언어를 완성하는 요소다. 아카데미 편집상 수상이 결코 우연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션 베이커와 <아노라>의 진면목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