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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 손이 말하는 욕망과 한계

손의 감각으로 빚어진 영화, 촉감으로 감상하는 시네마틱

by 무비뱅커

<퀴어>는 단순하게 서사를 따라가면 되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특히 감독의 대표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같은 서정적인 드라마를 기대하고 본다면,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맥락보다 인물의 손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흥미로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언제 인물의 손을 보여주는가?

어째서 인물의 표정보다 손이 먼저인가?’


이 영화 속 손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반복된 발화이자, 사랑에 대한 집착의 증표이며, 동시에 그 욕망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의 상징이다. 손이 닿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덧없으며, 또 얼마나 절실한 감정인지 깨닫게 된다.


미술사나 심리학에서 손은 '소통의 언어'이자 '창조와 애착의 상징'으로 읽힌다. <퀴어> 속 손은 그러한 해석 위에서 더없이 선명한 감정의 진폭을 담아낸다. 얼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 떨림, 주저함, 갈망, 그리고 단념의 순간들이 손끝을 통해 전해진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러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윌리엄 버로스의 원작이 지닌 문학적 농도를 영화적 이미지로 번역해 낸다. 특히 멕시코의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포착된 손의 움직임들은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을 다루듯 섬세하면서도 관능적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빛,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다 머뭇거리는 손끝의 미묘한 거리감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리(다니엘 크레이그)가 유진(드류 스타키)을 바라볼 때, 그의 손은 언제나 무언가를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허공을 맴돈다. 술잔을 잡는 손, 담배를 피우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이 모든 일상적 제스처들이 사실은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의 대리 행위임을 우리는 직감한다. 반면 유진의 손은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그의 손짓은 언제나 경계를 그으며, 친밀함을 허용하는 듯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거리를 둔다.

이 영화의 손은 말한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를, 그리고 그 흔적이 남긴 상처를. 그러므로 <퀴어>에서 손의 이미지는 단지 욕망의 은유가 아니라, 소통과 친밀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인 충동 그 자체다.


영화의 3막, 야헤(텔레파시 능력을 준다는 신비의 약) 체험 시퀀스에서 손의 의미는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환각 상태에서 두 남자의 손이 마침내 맞닿는 순간, 그것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합일의 체험이자 동시에 그 합일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환상적인 것인지를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된다. 여기서 손은 더 이상 개별적 욕망의 기관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고독과 연결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상징하는 복합적 메타포로 작동한다.


영화의 마지막, 리가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 유진의 머리를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 역시 손의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윌리엄 버로스의 실제 비극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영화 속 리의 행위는 단순한 사고라기보다 어딘가 의도된 듯한 기운을 풍긴다. 이렇게 영화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 사랑과 폭력, 욕망과 파괴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결국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존재이자, 손에 닿지 않는 환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퀴어>는 그 환각이 얼마나 실재보다 더 강렬하게 삶을 파고드는지를 보여준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그 감정의 언어는, 말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우리 마음에 남는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퀴어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성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억압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소외감을 보편적 언어로 번역해 낸 것이다. 그 번역의 핵심에 '손'이라는 시각적 모티프가 자리한다.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체념적으로 움직이는 손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다층적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퀴어>가 남기는 여운은 단순히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본 후의 감상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우리 자신의 손(욕망, 사랑, 고독)을 새삼 바라보게 만드는,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뻗어온 손들과 우리에게 뻗어졌던 손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영화가 끝난 후, 누군가의 손끝에는 무언가 미묘한 감각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전달하는 촉감의 감상, 즉 시네마틱 체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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