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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바닥> : 일상의 틈새에 열린 포탈

무심히 지나친 풍경의 결들

by 무비뱅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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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보지 못했던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골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마치 꿈속에서 미끄러져 나온 듯한 이질감과 현실적인 풍경이 묘하게 뒤섞인 장면 앞에 멈춰 섰고, 결국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상의 틈새에 잠시 열리는 포탈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공간이면서도 낯선 감각이 번져 있었다.


파랑과 흰색 타일 무늬가 반복되어 바닥을 감싸고 있는 이 풍경은 내게 바다의 잔물결 같기도, 디지털 세계의 격자 같기도 했다. 그 물결은 고요했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하지 않았다. 하수구와 물자국이 남긴 얼룩, 무심히 얽힌 전선들, 닫힌 셔터의 적막까지, 모두 도시의 피로와 무관심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펼쳐진 파란 바닥은 마치 나에게 “무언가 달라질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희미한 낙관의 기미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골목이 현실의 구조물들 사이에 살짝 비틀린 감각을 흘려 넣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닫힌 상점과 천장의 거미줄 같은 전선들, 길게 드리운 그림자들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오히려 인간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재는 전혀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공간은, 내가 늘 지나치며 보지 못했던 것들. 세상의 색과 결, 그림자와 구조, 패턴과 불규칙함을 조용히 펼쳐 보이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 골목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얼마나 자주, 일상 속 풍경과 감각을 무심히 지나쳐 왔던가?

그 바닥 아래 숨겨진 감정과 기억의 결들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본 적이 있었던가?


이 사진은 단순히 ‘장소’를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현실의 껍질을 벗겨낸 채 드러난, 아주 얇고도 날카로운 감각의 층을 포착한 나의 시선이었다.

무심한 듯 감각적이고, 조용하지만 낯선, 그래서 더욱 나를 사유하게 만든 골목의 초상이었다.



#골목길 #퇴근길 #에세이 #일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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