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

사랑(Love)으로 시작되는 스포츠

by 무비뱅커

[인간관계의 금기와 역학]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 질문은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관계적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미묘한 관계의 역학을 배워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감정과 선택이라는 복잡한 관계의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더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미워하고, 다시 관계 맺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억눌렸던 욕망과 자아를 발견하고, 금기된 삶의 규칙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기도 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전작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금기를 넘나드는 인간의 욕망과 그 파장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번 영화 <챌린저스>(2024) 역시 이런 궤적을 이어간다. 영화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 두 친구가 펼치는 우정과 질투, 사랑과 욕망이 얽힌 삼각관계를 다루며, 서로의 격렬한 감정을 스크린 속 테니스 코트위 에 올려놓는다.

[사랑(Love)으로 시작되는 테니스 게임]

테니스의 점수 체계는 특이하게도 무득점을 '러브(Love)'라 부른다. 그렇다면 테니스는 사랑에서 시작된 스포츠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주인공 타시(젠데이아 콜먼)는 한때 촉망받는 테니스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선구이다. 타시에게 테니스는 관계 그 자체다. 그녀에게 테니스는 한 사람이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육체적 행위이자 강렬한 심리 탐색의 과정이다. 그녀는 패트릭(조쉬 오코너)과의 은밀한 순간에서도 끊임없이 테니스 이야기를 꺼내며, 모든 순간을 테니스의 연장선으로 삼는다.

타시에게 두 남자, 패트릭과 아트(마이크 파이스트)는 ‘사파리에 갇힌 (위험하지 않은) 맹수’ 처럼 보인다. 그녀의 조련과 통제 아래서만, 동물원 최고의 스타가 될 호랑이 같은 존재들 말이다. 타시가 그들에게 보이는 감정은 전형적인 남녀 간의 사랑과는 다르지만,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이 얽혀있다. 그러니까 테니스가 ‘러브(0점)’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타시와 두 남자의 관계도 0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패트릭은 즉흥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의 테니스 선수로, 친구 아트를 사랑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사랑이란 단순히 남녀 간의 로맨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 속에서 관계의 역학 속에서 붙여진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여성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핫도그와 추로스를 기꺼이 내어 주며, 주니어 대회 결승전 따위는 일부러 져줄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관계다. 그렇게 형제 또는 연인 같던 그들의 관계는 타시와 패트릭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패트릭은 아트보다 먼저 타시와 사귀지만, 관계를 장악하려는 타시와 불같은 패트릭의 성격은 그들의 관계를 파괴한다. 훗날, 친구의 아내가 된 타시와의 육체적 관계는 그에게는 윤리적 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충실한 욕구일 뿐이다. 하지만 타시가 챌린저 결승전에서 아트에게 져달라는 요청에는 친구의 자존심을 걱정하는 복잡한 감정의 인물이다.


반면 아트는 '중요한 점수만 따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계산적이고 확률을 따지는 얼음 같은 사람이다. 그는 타시와 결혼해 그녀의 코칭 아래 정상급 테니스 선수로 성장했으나, 타시의 통제적인 성향에 지친 듯하다. 결국, 그는 슬럼프에 빠진 상태다.


영화는 13년 만에 챌린저 경기 결승전에서 재회한 세 사람이 과거의 굴레를 회상하며 관계를 재정립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감독은 빠른 비트의 음악과 슬로 모션의 대비를 통해, 이들의 복잡한 심리가 주변과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한 독특한 감각을 자아낸다. 플래시백과 교차 편집을 활용한 연출은 얽힌 삼각관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내며, 각 인물이 서로에게 품은 욕망과 감정의 깊이를 한층 풍성하게 표현해낸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이 복잡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잡아내며 관객을 인물들의 내면 속으로 깊이 끌어들인다.

부상당한 타시의 곁은 지켜주는 것은 패트릭이 아닌 아트다

[윤리와 도덕적 규칙을 넘어서는 것은 악인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윤리적 보편성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복잡한 욕망을 탐구하며, 금기된 관계의 다면성을 그려낸다. 누군가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른 채 우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거나, 집착을 애정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인간 마음의 복잡한 관계와 그 감정의 역학은 전혀 단순하지 않으며, 불안정하고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하는 환각과도 같다. 영화 속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 욕망은 그들을 망가뜨리는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해방감을 찾게 한다.


마지막 랠리에서 그들은 서로가 갈망하던 관계의 역학과 진정한 해방을 마주한다. 13년 전처럼 테니스 코트에서 포옹하고, 승리의 오르가슴에 포효한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금기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완전해지는 이 삼각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다리던 고도(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가‘끝내주는 테니스 랠리’이든, 폴리아모리(Polyamory)적 관계의 역학이든 간에 말이다.


인간관계는 때때로 예측 불가능한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아들의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 동성의 미소년에게 느끼는 사랑은 인간 감정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때로는 이러한 감정 앞에서 인간의 이성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 삶의 진정한 해방은 이러한 금기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며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위험하고 불확실하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영화 속 인물들이 마지막 랠리에서 마침내 서로를 받아들이며 해방감을 느끼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갈망하는 진정한 연대와 자기 수용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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