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로 돌아가 본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90년대 집, 여기저기 레이스가 있고 큰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그중 유일하게 카펫이 없는 곳에 앉아 파스텔로 나만의 동화책을 쓰고 그리는 중이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을 동화책, 주인공은 토마토 공주였다. 그 당시에는 물론 여성에게 강요되는 미의 기준에 대한 저항으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선택이었다. 아마도 내가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그것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종이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순간은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고, 물론 주인공인 토마토 공주도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는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었다. 말하는 나와 글을 쓰는 나는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말을 시작하면 단어들이 혀끝에 오르지 않으려고 버티고, 손은 떨리며 나를 배신하는 단어들을 따라간다. 그래서 나는 결국 듣는 데 집중하게 된다. 맞다, 나는 훌륭한 청자다. 단어들이 나를 배신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이다.
긴 메시지나 편지를 쓰는 것처럼. 나는 사랑하는 이들의 생일마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편지를 쓰곤 했다. 글을 쓸 때는 단어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펜과 종이를 집어 드는 순간, 마치 내 안의 작가 영혼이 나를 사로잡은 듯 단어들이 서로를 따라 흐른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우주가 춤을 춘다. 나는 관찰하고, 듣고, 그 모든 영감의 순간들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리고 결국 그것들은 하나의 인물, 하나의 이야기로 태어난다.
많은 이야기와 수필을 썼지만, 그 어떤 것도 공유할 용기가 없었다. 내 편지는 상대를 크게 웃게 하거나 눈물짓게 했지만, 그것이 내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를 글로 표현했을 때의 박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늘 도전하고 싶었다. 결국 아주 작은 용기 하나를 품고 브런치에 지원했다. 내가 읽던 작가들은 영감을 주었고, 그곳에는 고유한 언어가 있었다. 한국어는 내가 사랑에 빠진 언어였다. 문학적인 울림은 황홀했다. 그래서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브런치 작가 지원은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었으니,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도전에서 합격했던 순간, 그러니까 약 세 달 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드디어 나처럼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조금은 벌거벗은 듯한 순간이었다. 이곳만의 멜로디 속에 내가 어울릴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글을 공유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단 “한 사람이라도 좋아해 준다면”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이상이 좋아해 주었다. 가끔씩 달리는 댓글은 내가 내딛은 발걸음에 더 큰 용기를 주었다. 브런치, 나에게 공유할 용기를 주었다. 이곳에서 나처럼 머릿속에 단어들과 춤추고, 수많은 우주와 인물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꿈 이상으로 느껴진다.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열정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나 스스로 증명한 듯하다.
물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내 안의 한 부분이 있다. 글을 쓰고 반응을 얻을수록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요즘 더 요란하다.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글감이 떨어질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세 번째 목소리를 따른다. 그 목소리는 지금 브런치 작가로서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말한다.
브런치와 특히 이곳의 작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은밀히 꿈꾸던 작가라는 길에 나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었다. 나 자신과 모든 작가들을 위해, 우리 안의 노래가 결코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