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로 살펴본 1차 세계대전
요즘은 '인문계 졸업자 90%가 논다 ' 뜻으로 더 유명하지만, 유래는 다른 의미이죠.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19세기 초기, 인류 미래에 대한 맬서스의 우울한 주장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다'을 담긴 책 이름이 바로 '인구론'입니다.
둘 다 우울하기는 똑같다
지금은 100% 틀린 것을 알지만, 당시만 해도 논리적으로 빈틈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 분의 주장이 실제로 맞을 뻔했습니다. 맬서스 사후 더욱 무섭게 지구 인구가 증가했죠.
나름 참 논리적이라 한때, 전 세계적 우울증 주범이었던 멜서스의 인구론! 그 분의 핑거 스냅이 필요할 뻔했지만..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 지구에 굶주린 지역도 있지만, 대부분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입니다. 지구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식량은 여유가 있죠. 게다가 지구의 4대 거대 식량 창고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에서 미국 농업 효율성의 반만이라도 따라올 수만 있다면..
멜서스가 걱정한 우울한 미래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구론으로 표현하자면,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가 따라잡았다' 때문이죠.
자, 여기서 잠깐!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문제 삼아 볼까요?
오래, 많이 사용할수록 그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과부하 된 피시방의 PC는 중고 제품으로 절대 사면 안되죠. 또한 오랫동안 여친이 없어 보이는 남자가 파는 중고 컴은 1000기가의 엄청난 야동 다운으로 각종 바이러스 투성이니, 절대 비추입니다.
우리는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매년 식량을 생산해야 합니다. 즉, 땅은 죽도록 열일해야 하죠. 땅도 언젠가는 탈이 나는 날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밀, 쌀과 같은 곡식들은 정말 탐욕스러워서 엄청난 물과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렵 생활을 떠나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순간, 인류는 물과 영양분을 곡식에게 주기 위해 365일 내내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져야 했죠.
예상과 달리,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는 훨씬 풍족했고, 건강했으며 잠깐만 노동에 종사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식량 생산을 할 수 있어서 좋게 보였지만, 그만큼 아기를 많이 낳아서 1인당 소비량은 결코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농사를 계속 짓다 보면, 땅의 영양분이 점점 사라져서 생산량 또한 적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중세는 농토를 3등분 하여 번갈아 가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땅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죠.
그 기간 동안, 지력 회복에 좋은 콩을 심기도 했습니다. 또한 천연 비료를 사용하기도 했죠. 바로 똥!
혹은 썩은 낙엽 등을 비료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먹성 좋은 쌀과 밀의 배고픔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밀을 먹고 생긴 모든 찌꺼기(즉, 똥, 오줌)를 원래의 들판에 그대로 비료로 사용해도, 다음 생산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1헥타르당 130kg의 질소(비료의 원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즉, 마이너스 인생..
가뜩이나 이런데, 식량을 생산했던 곳에서 외부로 곡식을 수출합니다. 그럼, 벼 -> 밥 -> 똥 -> 벼로 연결되는 자연의 순환 법칙이 깨지기 때문에 땅 영양분 문제가 더 심각해지죠.
아이러니하게도, 비료의 원료인 질소는 지구에서 매우 흔한 물질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기 중에 있고, 식물에 흡수되기 좋은 상태의 질소는 흙 속에 매우 적게 있다고 합니다. 자연 비료를 필요한 양만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그 부족분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죠.
자칫하면 1840년 무렵, 주식인 감자의 흉년으로 인구의 1/3이 굶어 죽었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다시 올 수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대기근 발생 전 인구로 회복이 안되었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죠.
지금 시선으로는, 화학 비료 제조가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려울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은 문제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인구로 의해 질병, 전쟁 등이 발생하여 다시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멜서스의 우울한 인구론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07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인공 암모니아 합성을 통해 화학 비료 제조 방법을 발견합니다. 인공 비료를 통해, 인류의 식량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는 순간이죠. 그야말로 무(공기)에서 유(식량)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 비료가 없다면, 지구 인구는 20억 정도가 한계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가을철 낱알로 가득한 벼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뻔했죠. 집에서 키우는 빈약한 딸기와 시장에서 판매하는 우람한 딸기 크기만 비교해도, 비료의 위력을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유기농'이 대세이지만, 정작 모두들 유기농법을 했다가는 인류 대다수가 굶어 죽어야 하는 비극이 발생하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화학비료가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다만, 지나친 사용이 문제일 뿐..
이처럼 하버의 업적은 인류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18년 과학자 최대 영광인 노벨상을 수상하죠.
1921년 아인슈타인 역시 노벨상을 탑니다. 인류 최고의 천재라는 아인슈타인의 발견으로 인해 현대 문명이 더욱 발전했지만, 하버의 발견은 인류 생존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죠. 분명 프리츠 하버의 공헌 또한 아인슈타인 못지않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간이 문제. 더 이상 굶어 죽는 걱정을 안 하게 된 인류는 마음껏 성욕을 분출하여 인구가 급속히 증가합니다. 하지만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인구 증가를 감당할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넘치는 힘을 내부적으로 소화를 못하고 외부적으로 표출한 결과, 유럽의 많은 제국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죠. 결국 1914년 인류 최악의 전쟁 중 하나인 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합니다.
최악의 전쟁이었지만, 그 시작은 참으로 로맨틱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남자라면 전쟁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유럽을 휩쓸었죠. 여자 앞에서 영웅담을 털어 놀 절묘한 기회가 그저 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민들은 환호했죠.
2차 세계 대전 이후 긴 평화를 누리는 현대만큼이나, 당시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큰 전쟁 없이 오랜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생생한 자료가 없으므로, 전쟁의 잔혹함, 고통보다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영웅적인 이야기와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로 가득했습니다.
전쟁의 참상 따위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전쟁 역시, 독일을 통일하고자 했던 프로이센과 프랑스, 두 거인들의 전쟁이었지만, 철도를 통한 신속한 병력 이동을 통해, 불과 2달도 지나지 않아 끝났습니다. 그래서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는 대다수 병사들은 이번 전쟁이 곧 끝나고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죠.
그래서 전쟁터에 어울리는 않는 크리스마스의 기적(링크)도 있을 수 있었죠.
하지만 식량 생산의 한계가 사라진 것처럼, 전쟁 역시 과거와 달리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각종 폭탄의 주원료 또한 질소인 것도 한몫했습니다. 하버의 발명이 있기 전에는 질소가 부족했기 때문에 폭탄의 생산 또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또한 덜 치명적(?)이었죠.
자원의 한계가 있는 지구에서 그나마 풍족한 자원, 공기에서 질소를 마음껏 생산하여, 이제는 끝없이 폭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엄청난 폭탄 물량 공세로 인해, 군인들은 참호를 깊게 파서 숨기에 급급하죠.
그 결과, 1차 세계 대전을 상징하는 참호가 등장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류를 구한 프리츠 하버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독일군을 위해, 자신의 질소 공장을 개조하여 죽음의 무기를 만드는데 앞장섰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전쟁이 나면 당연한 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 철조망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전쟁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워낙 철조망이 쉽게 털리다 보니 허접하게 보이지만, 아무런 보호 장비가 없다면 살점이 그대로 뜯겨 나갈 정도로 위협적입니다.
이런 철조망으로 퇴로를 막고, 기관총을 발사하면, 사실상 개죽음 밖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없었죠. 그야말로, 인류 전쟁 역사상, 압도적으로 수비가 유리한 시기이었습니다. 그 결과, 1차 세계대전은 외관상 참호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며 적과 대치하는 것으로 보일 뿐, 영토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정적인 전쟁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무능한 사령관이 병사들을 악마의 목구멍을 향해 끊임없이 진격 명령을 내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으나,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워낙 수비가 막강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1917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뛰어다녔던 것이었죠. 작품의 주인공이 참여했지만 기억 못 한다는 솜 전투만 하더라도, 고작 10km의 땅을 얻고자 12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공격으로 얻은 땅에 전사자 매장하기도 부족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
사상자의 절규만큼은 절대 정적이지 않은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착 상태를 깨기 위해 다양한 무기가 등장했습니다.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 저장소인 탱크라고 속였던 전차도 있었죠.
2편에서 계속..